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계속된다
정부가 특조위 해산 시한으로 선전포고한 9월 30일까지 2주 동안 집중실천이 이어졌습니다. 광화문과 국회 앞, 그리고 서울 시내 여기저기에서 상황을 알리고 900일 문화제 참여를 독려하는 홍보활동을 펼쳤습니다. 광화문에서부터 국회 앞까지 행진을 하기도 했고, 온라인에서는 ‘진실 알리기 공유캠페인’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국회가 서둘러 특별법 개정에 나서기를 촉구했으나 새누리당은 모든 개정안을 안건조정위로 회부해 90일 동안 논의가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결국 정부의 잘못된 법 해석에 따라 특조위는 법이 부여한 권한을 모두 빼앗겼습니다. 정부는 지난 4일 출근하는 특조위 위원과 조사관들의 출입을 막지는 않았으나 정부 전산망을 폐쇄함으로써 아무런 업무도 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했다네요.
그러나 특조위는 법에 따른 임기가 내년 2월(보고서 작성기간까지 포함하면 5월)이므로 앞으로도 전체회의를 계속 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부가 권한을 빼앗아간다면 국민과 함께 진상조사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고요.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 역시 범국민적 진상조사활동을 벌일 것이며, 새로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장을 지키는 세월호 유가족들
9월 25일 백남기 님이 끝내 숨을 거두셨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작년 11월 14일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후 317일의 시간이 흘러, 고인의 칠순 생일을 하루 넘겨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셨다는 소식만으로도 서글프고 참담한데 동시에 들려온 소식은 경찰이 부검을 하겠다며 시신을 탈취하기 위해 병원으로 병력을 배치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임종을 함께 맞는 마음으로 하루 전부터 병원 중환자실 인근에 있었답니다. 그리고 장례조차 평안히 치를 수 없는 현실에 분노하며 장례식장을 함께 지켰습니다. 국가가 사람을 죽이고, 또 유족을 어떻게 죽이려드는지 누구보다도 세월호 유가족들이 온몸으로 겪어왔기에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장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또다른 참사의 현장으로 여겨졌을 듯합니다. 장례식장을 찾아온 많은 시민들에게도 세월호 유가족들이 큰 감동과 든든함을 주었는데요, 앞으로도 함께 굳건히 연대한다고 하니 우리의 품이 훨씬 넓어질 것 같습니다.
백남기 청문회 대응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지키기에 바쁜 나날 보내
9월 12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백남기 청문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청문회가 개최되기까지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청문회에서 경찰이 어떤 행위를 하였는지 밝혀내기 위해 국가폭력조사단에서 조사한 내용들을 국회의원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청문회에서 경찰이 백남기 농민에게 자행한 국가폭력의 실체가 일부 드러나기도 하였으나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끝내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추석이 지나고 백남기 농민이 결국 9월 25일 운명하셨습니다. 25일 전후로 경찰은 부검을 하겠다며 들어올 기세를 보였습니다. 경찰은 서울대 병원과 장례식장으로 경찰력을 배치하면서 긴장감을 높였습니다. 망자에 대한 예의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인간으로서 갖추어야할 것을 저버린 검경은 결국 법원의 1차 부검영장 기각에도 2차 부검영장을 신청하였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 힘이 될 수 있도록 백남기 유가족, 세월호 유가족, 시민들과 함께 서울대병원 장례식을 지켰습니다. 또한 인권단체들의 성명을 조직하였습니다.
월담에서 '노동자 권리 찾기' 뱃지를 제작하였습니다!
월담은 지난 7월 사무실을 이전했었는데요. 사실 어려운 형편 속에서 이사가 진행되었거든요. 그 이전까지 사용했던 컨테이너 사무실도 2년 동안 월담에게 고마운 공간이었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를 안정적인 공간에서 만나자는 결정과 더불어 실행한 과감한 이사였습니다. 덕분에 어려운 재정 상황은 더욱 어렵게 되었는데요. 그래서 월담에서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월담을 알리고 재정도 확보하는 방안으로 뱃지를 제작, 판매하기로 한 것이지요. 문구로 넣은 노동자 권리 찾기는 월담의 풀네임인 ‘노동자 권리 찾기 모임 월담’에서 따오기도 했지만 실제로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스스로 목소리를 외치자는 의미로 넣고 월담이 그 외침의 우산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았답니다. 이 뱃지는 지난 10월 1일 범국민대회와 세월호 900일 집회 때 처음으로 선보였는데요. 사실 저희도 집회에 참여하는 입장에서 ‘뱃지를 들고 나가도 될까?’ ‘사람들이 관심은 있을까?’ 걱정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관심 갖고 ‘이 뱃지는 어떤 의미냐’고 물어봐 주시고 구매도 해주셔서 그날 들고 나간 뱃지는 전부 판매할 수 있었답니다. 이 자신감으로 앞으로 한동안은 월담에서 뱃지를 계속 판매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월담의 노동자 권리 찾기 뱃지를 구매 희망하시면 월담 이메일인 goover@gmail.com으로 구매 신청 메일을 보내주시거나 각종 집회현장에서 구매할 수 있답니다.
유성기업 노동자 괴롭힘 심층면접 조사 마무리
지난 3월 17일 돌아가신 유성기업 노동자 고 한광호 님이 겪은 직장 내 괴롭힘의 영향을 파악하고자 심층면접을 했습니다. 이번 작업은 1월부터 진행된 조사와 집단면접에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아직 유성기업과 현대차 경영진은 개인적 죽음이라며 책임이 없다고 하지만 심층면접 과정에서 동료들이 한 얘기는 경영진의 주장과는 달랐습니다.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매일 겪는 괴롭힘, 징계 등을 경험하고 있고 심지어는 회사에 오기 싫을 정도로 심리적 압박이 많습니다. 또한 말도 안 되는 사유로 징계를 받고 어용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동료관계가 파괴되기도 했습니다. 관리자들이 멋대로 임금삭감을 해서 노동자들의 생계가 안 돼 부채가 많았습니다. <유성기업 괴롭힘 및 인권침해 사회적 진상조사단>은 심층면접을 토대로 보고서를 완료하고 10월에 외화작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유족인 국석호 단식 중단, 국정감사 유시영 증인채택 등 국회 역할 촉구
한광호 열사의 형인 국석호 님이 단식을 한지 23일 만에 건강의 문제로 주변에서 단식을 중단했어요. 야당 국회의원들과 시민들이 설득하여 단식을 풀었습니다. 이날 국석호 님은 “배고픔은 참을 수 있지만, 6년째 진행 중인 노조파괴는 참을 수 없다”며 광호의 한을 풀기 위해 노조파괴는 끝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유성범대위와 유성지회는 20대 국회 앞에서 유시영 회장을 증인으로 세울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유성기업만이 아니라 갑을오토텍 등 노조파괴 문제가 심각할 뿐 아니라 괴롭힘을 수단으로 한 가학적 노무관리를 방치하는 고용노동부의 문제를 국회가 국정감사 때 질타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국회는 새누리당의 반대로 유시영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유성범대위와 유성지회는 국정감사 때 유성기업 문제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 구속촉구 서명운동
노조법을 비롯한 각종 불법으로 노동자들을 괴롭힘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에 대한 재판이 9월 30일 열렸습니다. 유시영 회장에 대한 재판은 4년이나 걸렸습니다. 검찰의 친기업적 태도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에 유성범대위와 금속노조 유성지회는 유시영 회장이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천안지원 앞 집회 및 1인 시위 등으로 공정한 재판과 유시영 회장에 대한 구속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유시영 회장 구속촉구 서명운동도 열심히 해서 재판부에 보내고 있습니다. 11월 4일 검찰 구형 예정이라 그때까지 시민들의 서명을 많이 모아서 재판부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추석 연휴에도 시민들에게 유성 상황을 알리는 선전전을 했습니다. 후원인 여러분들도 서명 아직 안했으면 이곳에서 (http://chumo317.com/sign/) 서명을 해주세요^^
한광호 열사 200일 문화제, 아산공장 앞에서 열려
10월 2일 한광호 열사가 돌아가신 지 200일을 앞두고 한광호 열사를 추모하고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긴 시간 싸우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격려하는 문화제가 10월 30일 저녁에 아산공장 앞에서 열렸습니다. 금속노조 유성지회 투쟁에 함께 힘모아 준 연대자들의 인사와 유족인 국석호님을 비롯한 참여자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들은 후 함께 술과 음식을 먹는 자리를 가졌답니다. 공연은 같은 노조파괴 목적으로 회사가 탄압하고 있는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이 율동을 해주었고 가수 이수진님이 힘을 모으는 노래도 해주었습니다. 이 날은 즐겁게 노래도 부르며 투쟁의 힘을 모았으니 이길 때까지 싸워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