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시설 요구가 협박이라니
지난해 9월과 10월에 걸쳐서 검찰은 지역 건설노조가 건설 원청(본사)업체와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산업안전 미비점 등을 빌미로 협박해 노조 전임비를 갈취했다며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대전, 천안, 경기서부 지역 노조 간부들을 구속?수배했다. 2월 16일, 대전지역에서 기소된 건설노조 조합원 6명의 선고재판에서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 중 ‘상습’적이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정했다. 즉, 노조가 회사를 협박해서 금품을 갈취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검찰이 주장한 노조의 ‘협박’은 ‘산업안전시설 요구’였고, ‘금품갈취’는 회사관리자와 맺은 ‘단체협상에서 합의한 노조 전임비’이다. 노조가 안전시설을 요구하고 회사가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을 때 고소고발 하는 것을 협박이라고 본다면, 회사가 건설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이러한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막을 수 있다는 말인가. 노조가 회사를 고소고발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법에서 규정한 최소한의 안전시설조차도 하지 않은 명백한 불법의 경우일진대, 회사가 져야 할 책임과 의무를 요구한 것을 협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주장이다.
전임비는 노사합의사항?
인권운동사랑방을 포함해서 민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다산인권센터 등 7개 단체들이 이 사건과 관련해 지방 건설 현장을 방문, 현장 관계자를 면담하고 수사자료 등을 조사한 후 밝힌 결과보고에서도 검찰의 ‘기획 수사’의 의혹은 제기된다. 단체들이 조사를 벌인 사업장의 관리자들은 한결같이 노조의 협박은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이들을 검찰에 고소고발한 것을 부인하고 있다. 더욱이 관리자 측에서는 단체협약을 통해 노조 전임비를 지급하게 됐고, 단체협약 과정에 본사와 협의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노조의 협박 때문에 전임비를 지급했다는 곳은 없었고, 노조의 전임비 지급은 노사합의를 통해 이뤄진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계획된 노조 말살 공작
상황이 이러한데, 검찰이 멀쩡한 노동조합 활동 금품갈취라는 어처구니없는 혐의를 씌어 발목 잡는 것은 계획된 ‘노동조합 파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90년대 건설노조의 지속적인 투쟁으로 2000년 이후 사업장에서는 책임질 수 있는 원청회사와 노조간의 단체협약이 이뤄지고 있었고, 이러한 단체협약이 다른 여타 현장의 단체협약의 본보기가 되었다. 인권단체의 현장 조사에서 드러났지만, 관리자 측에서는 노조와 단체협약을 맺으면서 전반적인 건설현장 분위기를 의식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때 검찰의 기획 수사와 법원의 유죄 판결은 바로 노조의 활동의 맥을 끊어 놓는 일인 것이다. 대전을 시작으로 천안, 경기서부지역으로 이어지는 검찰의 수사가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과 현장의 목소리 때문이다. 단체들의 조사과정에서 관리자 측은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맺고 노조가 산업안전에 역할이 크다’ 밝히고 있다. 사측에서도 관리에 신경을 쓰게 되니, 실제로 사고도 그만큼 줄었다는 것이 노동자와 관리자 측의 설명. 그러나 검찰과 법원의 논리대로라면 건설노동자가 죽어나가는 현장의 안전은 대체 누구보고 책임지라고 요구해야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