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란 검사 나으리를 영감님이라 부르는 사회, 거리에서 경찰이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사회, 법대를 가면 으례 고시원에 입소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회, 여기에서 법은 인간의 권리를 규정하고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으로 인식되기보다는 지배하는 법이고, 높은 가격을 주고 사야 접근 가능한 것이고 반민주악법이니 개악이니 하는 구설수에 오르기가 다반사이다.
이런 우울한 생각과는 대조되는 화창하다 못해 하늘이 함박웃음을 터트린 것 같은 날에 민주주의 법학연구회(이하 민주법연) 회장인 곽노현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얼마 전에 열렸던 민주법연 주최 심포지엄 “한국 사회의 법과 민주주의”의 포스터가 큼지막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내려다보는 가운데 민주법연의 지나온 5년간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87년 민주항쟁 이후 조직화의 길을 걷게 된 민중진영에 합류하여 88년부터 여러 분야의 학술단체들이 결성되기 시작했다. 이때 전문연구역량을 갖추고 시작한 다른 학술단체들과 비교할 때 가장 적은 인원이 그리고 학생을 대부분의 구성원으로 하여 출발한 것이 민주법연이다. 89년 1월 5일 창립당시 민주법연의 구성원은 교수 1인과 박사과정 초년생, 석사과정 학생들이 대부분인 12인에 불과했다. 고시법학, 지배법학이 지배적인 현실에서 이들이 택한 길은 실천법학, 과학적 법학, 민중지향성을 띤 법학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이것 자체가 법학계에 있어서 충격이었고 허약하게만 보였던 소수로써 세상에 띄운 첫배는 「민주법학」 창간호였다. 반민주악법에 대한 해부와 노태우 정권에 대한 규범적 평가를 내린 창간호에는 최하 84학번을 포함한 창립회원 전원이 논문을 게재했다. 그리고 89년 공안정국 하에서 공안합수부의 불법성을 주제로 한 「민주법학」 2호와 심포지엄 2회의 결실을 모아 연말에는 35명으로 회원도 늘어나고 「민주법학」이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판된다. 「민주법학」 1,2호는 당시 초대회장이던 강경선 교수의 연구실에서 10여명이 두달여를 북적거린 끝에 처음부터 끝까지 회원들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이 과정 자체를 회원들은 ‘환희’로 표현한다. 나이나 학문의 차이를 넘어선 조직내의 민주적 권리와 참여에 대한 신념이 상호존중과 배려를 안은 조직내부의 민주적 질서를 창조하려는 노력으로 모아졌다. 약자, 소수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우선시하면서 저마다의 창조성을 최대화하려는 노력, 말 그대로의 ‘환희’의 체험 속에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채워져 갔다. 이때의 경험이 민주법연을 지금껏 지탱케 하고 발전케 한 가장 큰 힘이었음이 분명하다.
곽 회장은 민주법연의 회원들 하나 하나가 민주법연에 속한 일인의 회원이 아니라 각자의 직장과 학교에서 법학운동조직을 책임지고 있는 지도자이므로 민주법연을 하나의 지도자 훈련학교로 생각한다. 과거 국보법에 대해 쓰여진 글 등이 빨간 줄이 쳐져 지도교수의 책상에 올라가는 일이나 민주법연의 이름을 내건 활동이 구설수에 오르거나 조국 교수의 사건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회원들이 겪어온 어려움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인간과 조직과 규범에 대한 충실, 법학에 대한 신념은 강하기만 하다. 법학은 인식에 머물거나 형식적인 것이 아니고 다른 어느 부문보다도 실용적이고 삶과 항상 함께 있는 제도를 연구하는 것이므로 법학의 발전이 진보진영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여긴다. 법학자 자신이 제도전문가로서 정의로운 제도를 만들 수 있으며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법과 인권에 대해서는 법의 이면이 권리이고, 그중 도덕적, 보편적 권리들만을 인권으로 본다. 그래도 인권의 영역이 넓기만 하므로 자기 전공영역에서의 법제가 인권영역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항상 고려하는 관점을 필요로 한다. 기본적으로는 국내외 인권법의 체계적 연구 및 정리가 필요하다. 그 범위가 넓은 만큼 이를 관통하는 원칙을 세우고 분야별 연구와 관련 제도 및 기구에 대해서 정보제공을 하는 것이 인권운동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여기고 있다. 민주법연의 회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어떤 형식으로든 국가보안법에 대한 연구를 남겼다. 그래서 민주법연이 국가보안법의 전공자로 인식돼 왔고 이 부분이 인권운동에 제일 기여한 바가 있지만 앞으로는 관심을 다양화하여 민주법연 내에서 인권법(주로 국제인권법에 대해)을 연구하는 층이 두터워 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50여인으로 늘어난 회원들간에는 15-18년의 연령차와 조건의 차이가 있다. 이에 나타나는 동료 동지의식의 갈등을 극복하고 민주법연의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민주적 질서 속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참여를 강화하는 것이 항상 주된 고민이다. 조직 내 민주주의를 근거로 하여 최근 ‘한국사회의 법과 민주주의’심포지엄이 보여준 가능성, 성과들을 결실 맺을 것이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16개대 학생회와 20개대 교수들이 참가하였는데 일반 법대생 대학원생 중심으로 순회심포지엄 등을 개최하면서 법학교육운용과 사범시험제도 개혁문제를 내걸 것이다. 고시법학의 틀을 깨고 법학의 영역은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한 대중사업을 기반으로 민주법연도 자신들만의 틀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보폭을 넓혀 진보적, 민주적 법학 운동진영을 확대해 나가고자 한다.
- 149호
- 류은숙
- 1994-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