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어디까지인가?
(편집자주) 인권선언일 특집으로 기획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글을 오늘부터 3회에 걸쳐 분재합니다. 이 글이 인권 A규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예정보다 늦게 게재하게 된 점을 독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차가운 바람이 차가 꽉 메인 답답한 거리에서 춤을 추는 겨울, 우리 삶의 기본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따뜻한 국물, 두툼한 외투, 적당한 난방이 이루어지는 학교와 직장과 집, 아프면 달려갈 수 있는 병원 등이 떠오른다. 이런 것들이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것들을 누리기 위한 권리를 주장하게 되면, 그것이 누구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이며 왜 그런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하는가가 당장에 차가운 바람만큼 매서운 논쟁의 대상이 된다.
가까운 예를 들어보자. 올해 초 생활보호대상자로서 월 6만5천 원의 보조금을 받아 생활하던 노인부부가 그런 급여수준으로는 도저히 인간다운 기본적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고 호소하며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생활보호급여의 적정기준문제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낸 일이 있었다. 이 헌법소원청구에 대하여 주무부서인 보건사회부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국가의 재정사정에 따라 점진적으로 향상될 수 있는 것으로 그 실현도 국민이 국가에 직접 청구할 수 없는 ‘추상적’ 권리이고 그 내용은 물질적인 최저생활의 보장으로 충분하지 문화적인 최저생활까지의 보장은 아니다”는 주장으로 헌법소원청구각하를 요구하였다.
여기에서 확인된 것은, 구체적인 입법이 없는 한 생존권을 현실로서 청구할 수 없다는 프로그램규정 설이나 추상적 권리 설의 주장이 우리 나라에서 여전히 큰 목소리라는 것이었고, 따라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침해받은 개인을 구제하는 구체적인 제도의 마련은 꿈같이 멀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ILO조약으로 대표되는 국제적 기준과 동떨어진 노동기본권의 제한, 학교를 폐쇄 당할 위기에 처한 두메산골의 아이들, 경제수준에 걸맞지 않는 사회보장제도의 미흡함 등 줄줄이 사탕처럼 엮어져 나오는 문제들에 대한 답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국제화, 세계화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기본적 인권을 규정하고 있는 국제인권규약으로 눈을 돌려보는 것이 먼 나라 얘기타령은 아니라고 본다. 국경을 넘어선 ‘보편적 인권’에 대한 이해가 무한 경쟁으로 몰아대는 국제화 속에서 하나의 무게중심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왜소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 나라는 지난 90년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에 가입하였고 그에 대한 공적의무로서 작년 10월에 규약의 우리 나라의 실시상황과 진전정도에 관한 최초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 보고서에서 정부는 “현재 사회보장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국민은 없으며, 국민의 복지를 보장하는 성숙하고 민주적인 국가로 발전”하였음을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국민에게 거의 알려진 바 없이 제출된 정부보고서가 문제점을 은폐하고 장점만을 부각시켰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1) 국제인권규약에서 보장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둘러싼 논의와 2) 그 실행을 위한 국제기구의 노력, 3) 규약하의 공적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제출된 정부보고서에서 나타난 우리 나라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보장의 문제점들을 앞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류은숙(참여연대 인권운동사랑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