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획을 시작하며
2. 초장기수들
3. 재일교포 관련 사건
4. 일본 관련 사건
5. 납북어부 사건
6. 행방불명되었던 가족
7. 민주·통일 운동 관련
8. 기획을 마치며
80년대의 변혁운동은 광주민중항쟁으로부터 새로운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한다. 이런 운동주체들의 고민을 공안당국은 언제나 불온시하여 날이 갈수록 각계각층으로 확산되는 운동세력을 제압하기 위한 각종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좌경운동세력 뒤에 북괴의 붉은 마수’가 있다는 식의 조직사건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85,6년도는 특히나 이런 조직사건이 한달에도 몇건씩 발표되었다.
특히 80년대 중반, 미국에 대한 문제제기는 82년의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과 85년의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사건 등을 거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던 시기였다.
85년 새학기 개강이 되자마자 각 대학의 총학생회실, 단과대 학생회실, 학과 학생회와 과대표 앞으로 두툼한 우편물이 도착하게 된다. 이 우편물은 ꡔ예속과 함성ꡕ이란 제목의 미국 문제를 체계화시킨 문건이었다. 그 내용은 미군정 3년의 역사적 의의, 예속의 현실, 주한미군과 매판정권, 핵과 한반도 등 5개의 장과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문건에서 집필자는 예속과 분단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독재타도가 아니라 미제국주의 세력을 축출해야 한다는 논리를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었다. 이 문건을 집필한 이들은 85년 9월 안기부에 의해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김성만, 양동화, 황대권, 강용주 씨 등 15명이 관련된 대규모 학원간첩단사건이었다. 이들은 이미 6월에 불법연행 되어 2달여를 고문을 당한 끝이었다. 김성만, 양동화 씨 등은 미국 유학중 북한 공작원이라는 서정균(안기부 주장)씨를 만나 포섭되어 북한인사를 만나 지령과 공작금을 받고 귀국, 간첩활동을 하였고, 다른 이들은 이들의 간첩활동을 방조하였고, 또 북한을 고무찬양 했다는 혐의였다.
하지만, 이들은 북한의 인사를 만난 것은 인정하나 어떤 간첩활동이나 지령을 받은 적이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김성만 씨와 양동화 씨는 사형을 선고받았고, 황대권 씨와 양동화 씨의 후배였던 강용주 씨는 무기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하여 간첩으로 발표되었던 이창신 씨의 경우 89년에 미국 고등법원에서 구체적인 증거가 없고 사건이 과장되었다는 이유로 무죄판결 했다(89년2월6일자 세계일보). 이들중 현재 구속되어 있는 이들은 김성만, 양동화, 황대권, 강용주 씨 등 4명이며, 나머지 관련자들은 모두 만기 전에 가석방되었다.
또, 89년 평민당 국회의원이었던 서경원 씨가 밀입북 하였다는 이유로 하여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았으며,
그의 입북을 도왔다는 방양균 씨가 구속되어 7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당시 김대중 총재(현재 가칭 새정치국민회의 상임고문)가 소환되어 조사 받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밖에 개인적인 호기심이나 동기에서 또는 통일에 대한 나름대로의 실천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입북을 기도했던 이들이 있다. 이들의 행위나 동기는 매우 단순했지만, 그러나, 국가보안법의 마수에 걸린 이들의 형량은 가혹한 것이었다. 민주․통일운동과 관련된 사건들은 92년 대선 직전 터진 ‘남한조선노동당사건’등과 같이 계속 이어져왔고, 공안조직사건들과 연관된 이들은 장기형을 선고받고 아직도 복역중이다.
표 10) 민주․통일운동 관련 장기수 명단
이름 / 연령 / 교도소 / 수번 / 형기 / 연행일 / 구속일 / 복역연수
김용태 37 광주 1997 14년 85. 11년
황대권 41 대구 3164 20년 85.8.5 11년
양동화 38 〃 3265 무기 85.8.5 11년
김성만 40 〃 3180 무기 85.8.5 11년
박찬우 36 〃 3205 15년 84.7.15 12년
강용주 34 안동 1313 20년 85.8.5 11년
방양균 41 전주 2125 7 년 89.6.28 6년
최수열 31 〃 2073 15년 87.6.22 9년
박영희 33 〃 2001 15년 92.1.6 4년
서경원 59 진주 2001 15년 89.6.28 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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