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교문을 여는 경기여상 학생들
24일 경기여상의 교실문은 자물쇠로 굳게 채워져 있었다. 학생들의 수업거부 사태가 발생한지 14일만에 학교측은 임시휴업을 공고했으며, 교장(김정남)은 고향에 내려간다며 학교에도 나오지 않았다. 학생회실의 조그만 난로가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학생들은 연신 추위에 떠는 모습이었다. 바깥은 완연한 봄날이지만, 경기여상 2천4백 학생들의 가슴은 여전히 추운 겨울이었다.
경기여상의 교육환경은 '열악하다'는 말만으로는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교문을 들어서면 농구장만한 운동장이 눈에 들어온다. 학생들이 '앞마당'이라고 부르는 이 운동장이 2천4백명의 '종합운동장'인 것이다. 전교생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고, 학년별로도 운동장에 함께 모여 본 일이 없다고 한다. 체육대회를 하려면 인근 손기정 공원을 이용해야 한다는 말에 실소가 나오기까지 한다.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1백미터 달리기 원없이 해보는 게 소원이에요"
추위에 못 이겨 집단 하교
이 학교의 난방문제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각 교실마다 라디에이터(난방기)가 설치되어 있긴 하지만, 한 번도 가동된 적이 없다. 장작 난로를 수년 간 사용해 오다 지난해엔 난로마저 철거해 버려 학생들이 추위 앞에 무방비 상태로 놓일 뻔했다. 그나마 학생들 스스로 청계천의 난로 대여점 연락처를 알아와 서무과장 앞에 제시하자, 학교측은 그제서야 난로를 임대해 들여놓았다고 한다.
지난 7일 학생들은 참아왔던 분노를 일시에 터뜨리게 되었다. 깨진 창문을 보수해 달라고 4일간을 요청했지만, 학교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추위에 견디다 못한 학생들은 집단적으로 하교해 버린 것이었다. 한 학부모는 "우리 애는 학교만 갖다 오면 감기에 걸린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교육환경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흔들리는 건물, 어두운 교실조명, 그러나, 이젠 학교를 보수하는 것만으로 해결되기는 어렵다는 게 학생들의 주장이다. 윤미옥 학생회장은 "고치는 것보다 이사가는 게 더 싸게 먹힐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지원금 1억원 횡령 의혹
경기여상은 지난해 환경특수기금이라는 명목으로 교육청으로부터 6억5천만원을 지원받았다. 양철원 씨 등 39명의 교사들은 "학교측이 6억5천만원 가운데 1억여 원을 유용한 의혹이 짙다"며 지난 3일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공사업체를 선정하면서 무면허 업자에게 도급을 주고 그 차액을 유용했다는 것이다. 교사들에 따르면, 경기여상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한다. 교사들은 "95년엔 학교운영비의 일부가 비자금으로 빠져나간 사실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이 학교의 설립자이자 실세인 김일윤 씨는 국회의원 가운데 부동산 재산순위 5위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어두운 교실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어린 여학생들의 모습위로,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김 씨의 얼굴이 교차된다. 관련기사 <인권하루소식> 3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