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정보화"는 김영삼 정권이 제작해서 보수언론이 유포했던 정치구호 중 가장 잘 팔린 것들이었다. "세계화"는 그 단어를 만든 사람이나 사용하는 사람들 모두 그 뜻도 정확히 모른 채 사용되던 정치구호였다. 그래서인지 "세계화"는 찬바람 불자 사라진 파리떼들처럼 어느새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비해 "정보화" 구호는 아직도 잘 나가고 있다. 정보화는 비교적 확실하게 그 윤곽이 잡히는 구호였다. 컴퓨터를 사용하여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보다 편리하고 윤택하게 사는 세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화 구호가 아직도 잘 팔리는 것은 단지 그것이 세계화에 비해 실체가 분명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보화는 한 정권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역사발전의 한 단계이기 때문이다. 정보화는 인간사회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경제적 구조를 바꾸어주는 커다란 변혁이다. 즉 산업사회의 지배구조도 정보화사회에서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보화사회의 지배계급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만들어 유통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가진 계층들이다. 그래서 정보화사회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쟁탈전이 전세계적으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간파한 현 정권과 보수언론도 정보화 이데올로기를 적극 전파하면서 자신들이 정보화사회에서도 지배세력으로 군림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정보통신부가 가장 강력한 정부부처로 부상했고, 신문마다 방송마다 컴퓨터 통신과 인터넷에 대해 요란하게 떠들어대고 있다. 실제로 컴퓨터 통신을 사용하는 숫자는 전인구의 10퍼센트도 안되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구는 더욱 적은데도 불구하고 연일 신문지면과 방송화면에는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당연히 대다수 국민들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정보화에 대한 무지와 불안 속에서 그들은 정부가 하자는 대로, 보수언론이 하자는 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정보화사회에서는 산업사회의 지배도구였던 미디어가 더 이상 소수의 집권계층이나 자본가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현 보수언론은 조선총독부, 미군정청, 이승만 정권, 군부독재정권과 돈독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여론을 독점해 왔고 이 과정에서 진보와 변화를 갈구하는 여론들을 외면하고 차단해왔다. 그러나 정보화사회에서는 이러한 미디어 독점이 불가능해진다. 컴퓨터 통신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동안 침묵을 강요당했던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통신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었다. 더불어 보수 기득권 층에 의해 조작되는 여론을 견제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수단도 생겼다.
따라서 정부와 보수언론은 정보화 사회를 새로운 지배이데올로기로 부상시키면서도, 컴퓨터 통신공간에 대한 감시와 통제의 고삐를 죄는 이중성을 보여왔다. 물론 그들의 진정한 목적은 은폐되었다. 이를 위해 컴퓨터 통신이 가져온 사소한 부작용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은 음란하고 불순한 내용들이 컴퓨터 통신공간에서 유통됨에 따라 미풍양속과 사회질서가 위협받기 때문에 선량한 청소년과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컴퓨터 통신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재빨리 만들어 사전검열을 실시하고, 국가보안법 등을 동원해 협박을 했다. 물론 보수언론은 이러한 정부의 규제행위를 적극 권장하고 독려했다.
컴퓨터 통신 사용자들은 표현의 자유의 보장을 요구하면서 강하게 반발해왔다. 그들은 특히 컴퓨터 통신은 그 특성이 다른 매체와 다르기 때문에 보다 폭넓은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미디어가 의견교환이나 주장에 대한 반박이 이루어지지 않는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공론장인 반면, 컴퓨터 통신공간은 누구나 즉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개된 공론장이라는 이유였다. 컴퓨터 통신은 진실과 오류에 대한 비교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진정한 "사상의 자유시장"이라는 논리였다. 따라서 판단력이 부족한 국민들을 대신해 정부가 미디어의 내용을 통제하던 기존의 권위주의적 규제방법이 통신공간에서는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를 정부나 보수언론이 받아들일 리 없다. 현 정권과 보수언론은 바로 그러한 이유, 즉 국민들이 진실과 오류를 구별하는 것이 두려워 컴퓨터 통신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예를 들면서 컴퓨터 통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우이독경이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의 사법부가 위헌판결을 내린 통신품위법(Communiations Decency Act)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이념적, 계급적 갈등이 아니라 컴퓨터 통신의 규제방법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컴퓨터 통신공간의 규제는 자신들의 집권을 연장하려는 수구세력들의 필사적인 시도이다. 보수언론과 정부는 컴퓨터통신이 그들의 아킬레스의 건이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완강하게 통신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려고 드는 것이다. 따라서 통신의 자유를 쟁취하지 않고서는 결코 진정한 변화와 개혁, 참된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한편 통신의 자유를 쟁취하는 것은 민주화를 앞당기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것이다.
장호순(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999호
- 장호순
- 1997-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