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욱 교수(영남대 법학)는 "자유민주주의에서 국민들의 정치적 자유는 본질적인 기본권"이라며 "정치적 자유는 기본적으로 참정권, 즉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보편적으로 향유됨을 뜻한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참정권 뿐만 아니라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활동의 자유까지 포함된다. 정 교수는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질서는 단지 선거에 의한 대의제적 정치질서만이 아니라 전 국민적 의사소통의 질서를 뜻한다"며 "자유민주주의라면 사상과 양심의 자유, 정치적 언론과 집회 결사의 자유는 철저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정 교수는 "사회경제적 수준의 향상이 개개인의 정치적 능력을 위한 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교육, 의료, 주거 등 사회적 기본권이 민주주의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심지어 소유권도…'자본'이 아니라 기본적 소유권의 보장은 개인의 자유와 존엄이라는 차원에서 정치적 의사소통의 질서를 위한 조건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유민주주의는 이상 체제를 지향하지 않는다"
정 교수는 자유민주주의와 고전적 공화주의의 차이를 강조했다. 고전적 공화주의는 개인의 정체성을 공동체의 정치적 구성부분을 이루는 데에서 찾는다. 따라서 정치적 참여의 권한과 의무가 개인의 존재이유가 된다. 여기서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최고의 가치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의 중요성을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의 관점, 즉 개인의 존엄과 행복추구라는 차원에서 이해한다"며 "정치적 자유만이 아니라 다른 사적인 자유도 그와 똑같이 중요하게 된다"고 정 교수는 밝혔다.
이런 점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어떤 사회적 목적과 이상을 설정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의 목적은 개인의 자유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자유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자유권적 기본권과 사회권적 기본권은 개인의 자유의 보장과 실현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것으로부터 어떤 사회 체제와 이상을 달성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에서 기본권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정 교수는 "기본권은 자유민주주의의 과정이자 목적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에 한계를 부여한다"고 지적했다. "민주집중제 인민민주주의나 공동체적 민주주의에서 개인의 기본권은 전체를 위하여 언제든지 양보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자유민주주의는 오히려 전체적 필요와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인권이 부당하게 희생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계한다"는 것이 정 교수의 주장이다. 즉 자유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의지의 총화라는 권력형성의 민주적 원리 못지않게, 그 권력의 오용과 남용의 위험성을 경계한다는 것. 정 교수는 "아무리 민주적으로 형성된 권력이라도 그 권력의 위험성은 배제할 수 없다"며 "모든 권력에 대한 경계와 통제 그리고 감시가 자유민주주의의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양심에 대한 존중"
이런 맥락에서 최근 강정구 교수(동국대 사회학)에 대한 처벌 움직임이나 병역거부에 대한 처벌에 대해 정 교수는 "설사 실정법에 반하고 다수의 의사에 맞지 않고 공동체의 일체성을 위협하는 일일지라도 그에 대한 형벌권 행사는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자유민주주의의 자유주의적 성격은 오히려 국가의 권위에 주눅들지 않는 진실된 개인을 존중한다"며 "개개인의 양심이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것이 어떤 국가의 목적이나 국익에 반하거나 혹은 윤리적으로 저열하다는 이유만으로 억누를 수 없다는 것이 자유주의 헌정질서의 기초"라고 강조했다.
"민주주의는 법치주의보다 우월"
법치주의는 여러 체제에 적용될 수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그중에서도 자유민주적 법치주의는 국가권력을 필요최소한도로 제한하고 국가권력의 오남용의 위험성을 최대한 막기 위해 △권력분립 △사법권 독립 △죄형법정주의 △인신구속의 제한과 통제 △법치행정의 원리 △사법권의 독립 등을 그 특성으로 한다. 한편 자유민주주의는 국민 자신의 의사라고도 할 수 있는 법률에 의해 기본권이 침해당할 수 있는 위험성도 경계한다.
정 교수는 "자유민주주의는 의회를 존중하지만 그 절대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설사 인민 자체의 의지라고 하여도 그것은 무오류의 것이 아니며 따라서 절대적 권위를 주장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물론 그에 대한 판단을 헌법재판소라는 소수의 선출되지 않는 엘리트들이 맡는 것이 민주주의에 얼마나 부합할지는 알 수 없지만, 헌법재판은 민주주의의 구현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판단이라는 점에서 법치주의에 정통한 이들에게 맡기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정 교수는 주장했다.
그렇다고 정 교수가 헌재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정 교수는 "헌법재판은 민주주의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국민들의 기본권이 침해당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감시하는 것일 뿐, 헌재가 민주주의적 권력행사의 주인공은 아니"라고 못박았다. 정 교수는 헌재가 사회보호법에 합헌을 선언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의 자유에 대한 보호는 소흘한 반면 "구체적인 기본권 침해와는 무관한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국가정책적 사안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며 "본말이 전도된 행태"라고 비판했다.
오히려 민주주의는 주권의 적극적 구현 형식이라는 점에서 법치주의보다 우월한 개념이다. 정 교수는 "인민민주주의에서는 권력의 분립보다 권력의 집중을 중요시할 수 있고 그럴 경우 사법부의 독립은 생각하기 어렵고, 그만큼 법치주의의 독자성은 미미해진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자유민주주의는 법치주의의 가치를 크게 인정한다. 정 교수는 "민주주의의 열정과 기대의 과잉을 스스로 경계하며 법치주의라는 성찰의 척도를 마련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또 하나의 덕목"이라고까지 설명했다.
하지만 정 교수는 법관은 법률에 붙어 있는 '법률의 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사법부는 민주적 권력의 적극적인 행사자가 아니라 민주적 권력의 위임에 따른 충실한 이행자가 되어야 한다"며 "이런 원리는 법을 '법복귀족'의 수중에서 모든 시민들의 것으로 돌려놓은 프랑스혁명의 산물"이라는 것.
정 교수는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이전에 인권을 생각하는 체제"라며 "그 인권보장이 물론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데에 얼마나 기여할지 알 수는 없지만, 자유민주주의는 국가권력보다 시민들 개개인의 진실을 존중하고 양심을 믿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평가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가한 강곤 <월간 사람> 기자는 "자유민주주의가 이상적인 체제를 지향하지 않는다고 표방하지만 실제로 이상적인 체제를 지향하지 않는 '주의'가 가능할까"라며 "실은 자유민주주의는 가진 사람들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보수적 이데올로기로 현실에서 사용되고 있고, 그것이 자유민주주의가 대놓고 표방하지는 않지만 자유민주주의가 실제로 지향하는 체제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강 기자는 "자유민주주의 이론이 어떠했든간에 한국의 현실에서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보수 쪽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는 현실을 떠올려 보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라는 것이 대단히 정치적인 용어이고 행동일 수 밖에 없어 조심스럽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