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사회는 특별한가?
지난 8일 열린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한상희 교수(건국대 법학)는 이 질문에 대해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정보화 사회와 아날로그 사회가 별반 다르지 않으며 정보화 사회를 위한 특별한 설명이나 법규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정보화는 인간생활의 한 방식일 뿐이며 오프라인에서 적용되는 법률이 사이버공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 정보기본권과 관련해서 "새롭게 헌법조항을 만들 것이 아니라 기존 법 조항에 대한 해석투쟁의 과정 속에서 그 정당성을 획득해야 가야한다"고 한 교수는 주장했다.
"하고 싶은 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그는 헌법에서 정보기본권의 자리를 세 가지로 나눠 제시했다. 첫 번째는 의사소통의 문제로 헌법 제21조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다. 두 번째는 감시의 문제이다. 이것은 헌법 제17조 '사생활의 보호'와 맞물린다. 세 번째는 헌법 제11조 '평등의 문제'인데 크게는 사회간접자본과 사회적 약자들의 보편적 정보접근권의 문제가 지적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보는 여러 접근 방식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다양한 표현이 서로 경쟁하면서 진리를 발견해 간다는 '사상의 자유시장론'이다. 이것은 크게 문학·예술·정치 등의 영역에서 논의될 수 있는데 특히 정치적 표현인 경우가 자주 문제된다. 예를 들어, 정치적으로 미국이 좋은 나라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소련도 좋은 나라라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또 민주주의가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도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반국가적'이고 '내란의 음모가 있는' 표현은 허용되지 않는다.
한편으로 표현의 자유의 목적을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여기에 따르면 모든 사람에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때 민주주의도 가능하다. 따라서 특별히 정치적 영역에서의 표현은 그것이 '반국가적'인지 여부를 묻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보장된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표현을 인격의 발현으로 보고 최대한 관용해야 한다는 접근방식이 있다. 이는 표현물이 '허상'이라 하더라도 표현주체의 욕망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한 교수는 "인터넷 공간은 이런 관점이 적용되어야 하는 곳이 아닐까"라며 "네티즌에 대한 규제는 없어지거나 최소한 완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이버 공간의 욕망 그리고 관용
한 교수는 "인터넷이 왜 엉망인가, 그리고 그것이 과연 익명성 때문인가?"라고 물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인터넷 고유의 비대면성 때문인데 그것이 실명제를 한다고 해결되겠는가?"라고 정부의 실명제 방안을 비판했다. 그는 "실명제는 게시판에서의 욕설과 비방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욕설만큼 분명한 개인의 의견표현이 어디 있는가"라며 "사이버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그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표현의 자유는 윤리의 문제와 타인의 권리 문제로도 접근할 수 있다. 얼마 전 김인규 교사의 판결의 경우, 음란성이나 도덕성을 문제 삼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음란'에 대한 시각차를 보여준다. 대법은 '성적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유발할 때' 그것을 음란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헌재는 음란에 대해 '인간의 존엄을 해치지 않을 때'는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즉 인간을 수단으로 사용하느냐 목적으로 사용하느냐를 판단기준으로 보는 것. 따라서 "김인규 교사의 작품은 헌재의 시각에서는 음란물이 아니다"라고 한 교수는 지적했다.
감시와 훈육
현대의 감시는 정보수집, 억지효과, 훈육 등을 그 목적으로 한다. 한 교수는 감시의 영역을 크게 △국가에 의한 감시 △작업장 감시 △소비자 감시 등으로 구분했다. 작업장에서의 감시는 노동자를 놀지 못하게 한다. 그는 "작업장은 기본적으로 노조와 사용자간의 권력관계가 작용하는 곳으로 단순 임노동의 현장만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작업은 인간생활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작업장은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이 이루어지는 생활의 공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강남구에서 설치한 길거리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의 경우 그것은 카메라를 보는 사람들에게 '이 동네에서는 도둑질 하지 마세요'라는 억지효과와 '이 동네는 부자들이 사는 동네'라는 심리적 판단기준을 제공하는 훈육의 기능을 한다. 이런 CCTV를 둘러싸고 현실에서는 두 가지 평가가 충돌한다. 하나는 'CCTV가 당신의 밤길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다'라는 안전의 논리와 '감시에서 자유롭고 싶은 우리의 권리를 보호하라'는 프라이버시 보호의 논리가 그것이다. 한 교수는 "근본적으로 CCTV는 경찰의 구멍난 수사력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지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안전의 논리와 프라이버시 보호의 논리가 상충될 때 우리는 보다 덜 제한적인 논리를 채택해야 한다는 것.
감시를 통해 인간을 훈육시키는 대표적 사례가 '인터넷 내용등급제'이다. 이것은 성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필터링 프로그램'의 도덕적 기준, 다시 말해 프로그래머의 도덕기준을 학부모들에게 전달하여 그들을 학습시키고 그 기준을 내면화시킨다는데 문제가 있다.
한편 소비자 감시는 기업이 소비자의 정보를 수집하여 판매량을 늘리거나 혹은 소비자를 훈육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피자헛의 경우 개인의 주문정보를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어 주문시 과거 주문사항을 회상시켜 욕구를 추가시키는 방식으로 주문량을 늘려간다. "항상 주문하시던 ○○○스파게티는 안 드세요?"라고 말이다.
패션쇼의 경우도 아직 오지 않은 계절에 대한 '트렌드'를 소비자에게 각인시켜 불필요한 소비를 촉진시키는 수단이다. "이번 겨울에는 이 색깔, 이 디자인이 유행입니다. 이 옷을 입으세요!" 이렇게 개인의 정보는 기업의 심장에 차곡차곡 쌓여 분석되고 있다. 수없이 많은 개인의 정보는 제공자의 동의도 없이 사이버공간을 떠돌아다니며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교수는 렉 휘태커(Reg Whitaker)의 『개인의 죽음(The End of Privacy)』을 인용하며 "DB와 DB가 만나는 그 지점(nod), 그 순간만을 통제할 수 있어도 프라이버시는 충분히 보호 가능하다"는 말로 세미나를 정리했다.
덧붙임
임정애 님은 진보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