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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연재] 기본권 보장의 전제조건, 신체의 자유

인권단체연석회의 '헌법 기본권' 연속 세미나 ③ 신체의 자유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로 시작하는 헌법 제12조의 7개 항은 모든 기본권 보장의 전제조건이 된다. △법률에 의하지 않는 체포·구속·압수수색·심문을 받지 않을 권리 △고문과 불리한 진술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 △법관이 발부한 영장 없이는 체포·구속·압수·수색을 받지 않을 권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체포·구속의 이유 등을 고지받을 권리와 가족 등이 그 사실을 통지받을 권리 △체포·구속을 당했을 때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 △자의로 진술되지 않은 자백을 이유로 처벌받지 않을 권리 등 1987년 헌법에서 정비된 신체의 자유 관련 규정은 덧붙이거나 뺄 것이 없어 보인다.

1일 열린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오동석 교수

▲ 1일 열린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오동석 교수



하지만 문제는 헌법이 아니라 현실에서 '신체의 자유'가 얼마나 구현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1일 인권단체연석회의 '헌법 기본권' 연속 세미나에서 오동석 교수(아주대 법학)는 "신체의 자유를 충실하게 보장하기 위해 헌법에 구체적인 규정을 추가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판례와 해석을 통해 확장되어 있다"며 "헌법은 추상적인 언어로 규정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제도화시키는 의회·법원·헌법재판소의 구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적법절차·죄형법정주의 그물 빠져나가는 현실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는 원칙으로는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되는 지와 그에 대한 형벌이 미리 법률로 정해져 있어야 처벌할 수 있다', '입법·행정·사법 등 모든 국가작용은 정당한 법률을 근거로 하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발동되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적법절차의 원칙이 대표적이다. 헌법은 "누구든지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는 제12조 제1항과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는 제13조 제1항에서 이를 선언하고 있다.

또 법관의 자의적 법적용을 막기 위해 '누구나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게끔' 그 내용이 명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원칙은 형사절차 영역뿐만 아니라 입법·행정 등 국가의 모든 공권력의 작용에도 적용된다는 것이 헌재의 입장이다. 오 교수는 "처벌·보안처분·강제노역뿐만 아니라 신체적·정신적 그리고 재산상 불이익이 되는 일체의 제재를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률 없으면 범죄 없고, 법률 없으면 형벌 없다'는 죄형법정주의가 무시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오 교수의 설명이다. 오 교수는 "일반 국민과는 달리 학생·군인 등은 법률에 추상적 규정만 있으면 권리제한이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군인이 '정당한 명령 또는 규칙'을 위반하거나 준수하지 않을 때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군형법 제47조에 대해 "'정당한 명령 또는 규칙'은 군의 특성상 그 내용을 일일이 법률로 정할 수 없어…군통수작용상 필요한 중요하고도 구체성 있는 특정한 사항에 관한 것을 의미한다"는 논리로 1995년 합헌을 선언했다. 오 교수는 "필요하다면 조직 내 징계로 충분한데도 추상적인 법률규정만으로도 징역이라는 처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 초중등교육법 제8조 제1항은 "학교의 장은 법령의 범위안에서 지도·감독기관의 인가를 받아 학교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법 제18조 제1항은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때에는 법령 및 학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고 선언해 학교장에게 교칙제정·학생징계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처럼 추상적인 법률에 근거해 개별학교에서 '마음대로' 정하는 교칙에는 △선도규정 △용의복장 △학생회규정 등 학생생활 전반에서 학생이 지켜야할 규칙과 함께 퇴학 등 형벌 성격의 처분까지 규정되어 있다. 게다가 학생은 교칙제정 과정에 주체로 참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은 학교의 규칙을 준수하여야 하며…학내의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교육기본법에 따라 교칙을 준수할 의무만 지고 있다.

세미나에서는 일부 지역교육청과 일선 학교에서 소변검사로 학생들의 흡연여부를 확인하는 관행도 문제로 지적됐다. 학교 안에서는 물론 밖에서 담배를 피우더라도 흡연여부를 확인할 수 있어 결과에 따라 벌점을 매기고 흡연 학생을 추적관리할 수 있는 강제 소변검사는 신체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고 있지만 법령에서 근거를 찾을 수는 없다. 교육인적자원부령인 학교신체검사규칙은 "질병 또는 건강상 결함의 예방·발견 및 간이치료와 건강증진 및 체력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신체검사를 실시하도록 할 뿐이다. 게다가 이 규칙은 강제적인 신체검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등 학생의 '신체의 자유'에는 침묵하고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 스스로 훼손한 헌재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는 또하나의 원칙은 무죄추정의 원칙. 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해 형사 피의자는 물론 공소가 제기된 피고인까지도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원칙적으로 '죄가 없는 자'로 간주한다. 또 범죄사실의 입증책임은 기소자에게 있고 '의심스러운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헌재는 이런 원칙을 스스로 저버렸다. 사립학교 교원이 형사사건으로 기소되면 '반드시' 직위를 해제하도록 하는 사립학교법 제58조의2 제1항 단서에 대해 1994년 헌재는 "아직 유무죄가 가려지지 아니한 상태에서 유죄로 추정하는 것이 되며 이를 전제로 한 불이익한 처분"이라며 위헌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같은 경우를 '직위를 해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포함시킨 조항에 대해서는 "입법취지에 맞게 합헌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규정"이라며 합헌결정을 내려 '무죄추정의 원칙'을 바래게 했다.


소수자의 '신체의 자유'는 어디에?

한편 이번 세미나에서는 장애인, 성 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가 형사절차에서 겪는 어려움도 제기됐다. 한 활동가는 "장애인의 경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더해 '신뢰관계에 있는 보조인'이 형사절차에 동석할 권리도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또 한 참가자는 "체포·구속시 가족 등에게 알리도록 하는 통지제도가 (범죄관련 사실이 알려지면 안 되는) 성 소수자에게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가족이 해체된 경우 등 다양한 가족형태를 고려하는 통지제도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한 장애운동 활동가는 "체포 후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진술하지 못한 장애인이 부당하게 구속되거나 어이없이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장애에 대한 이해가 없는 법원이 문제라면 장애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를 가진 판사로 구성된 전문법원을 두는 것도 해결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오 교수는 "별도의 법원을 두는 것도 좋겠지만 차별과 관련된 행정기관 형태의 심의위원회를 따로 두면 민간의 참여가 가능해진다"며 "법관 문제는 어떤 법조인을 양성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