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균 교수(서울대 법학)는 지난해 10월 29일 열린 세미나에서 권리를 약한 의미의 권리와 강한 의미의 권리로 나누고 전자의 예로 자유권을 들었다. 자유권을 가진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는데 있어서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 즉 나는 무엇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뜻이다. 반면 강한 의미의 권리는 청구권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요구하는대로 행할 의무나 금지하는 대로 하지 않아야 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뜻한다. 김 교수는 "권리주장이라는 언어행위를 할 때 우리는 정당성을 확언하고, 주장하며, 무엇인가를 요구할 마땅한 자격을 가지고 있음을, 그리고 타인은 이를 수용하고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동시에 표출하고 있는 것"이라며 "도덕적 권리의 언어는 다른 도덕언어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특수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률이 보장하는 청구권
청구권적 기본권의 법적 개념은 '기본권이 침해된 경우에 국가에 대하여 그 권리구제를 요구할 수 있는 기본권'으로 '헌법상의 규정에서 직접적으로 국가에 대하여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에 다라 국가는 △권리보유자의 권리를 박탈하지 않을 의무(권리박탈금지의무) △다른 사람들이 권리를 박탈하지 않도록 권리보유자를 보호할 의무(권리보호의무) △권리를 부당하게 침탈당한 권리보유자를 구조할 의무(권리피해구조의무)를 가진다.
청구권에는 △법률의 제정·개폐, 공무원의 파면 등을 국가기관에 요구할 수 있는 청원권 △법관에 의해 법률에 따른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재판청구권 △형사 피의자·피고인으로 구금됐던 시민이 불기소 처분이나 무죄 선고를 받을 경우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형사보상청구권 △공무원이 저지른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을 경우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국가배상청구권 △타인의 범죄로 피해를 입은 국민이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는 범죄피해자의 국가구조청구권 등이 포함된다.
생존권적 기본권 유보시키는 헌재와 대법원
생활에 필요한 제반조건을 국가권력이 적극적으로 관여하여 확보해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인 생존권적 기본권은 청구권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가? 헌법은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제34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어 △교육을 받을 권리 △근로의 권리 △근로자의 노동3권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환경권 및 주거생활에 관한 권리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양성평등, 모성, 건강에 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 등을 보장하고 있다.
헌재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여타 사회적 기본권에 관한 헌법규범들의 이념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 동시에 국민이 인간적 생존의 최소한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최소한의 재화를 국가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라며 생존권의 청구권적 성격을 인정했다. 따라서 '최소한의 물질적인 생활'의 유지에 필요한 급부를 요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권리는 도출된다는 것이 헌재의 입장이다.
하지만 헌재는 '그 이상의 급부를 내용으로 하는 구체적인 청구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회보장에 대한 수급권의 경우 얼마나 어느 정도로 구체적으로 부여할 것인가, 권리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등은 국가의 경제수준과 재정능력에 따른 재원확보의 가능성이라는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 헌재의 주장이다.
대법원도 "환경권에 관한 헌법상의 규정만으로는 그 보호대상인 환경의 내용과 범위, 권리의 주체가 되는 권리자의 범위 등이 명확하지 못"하다며 재판청구권을 부정한 바 있다. 사법상의 권리로 환경권이 인정되려면 관계법령에 의해 권리의 주체·대상·내용·행사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
권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흔히 권리를 법적 권리에 한정해서 이해하고 법제도에 의해서 보장되지 않는 권리는 권리로 이해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르면 권리는 입법과 판결에 의해서 보장되며 침해될 경우 국가의 강제력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것에 한정된다. 하지만 기존 법규범이나 관습으로는 인정되지 않는, 때로는 반하는 근거를 가지는 권리도 있다. 김 교수는 이를 '도덕적 권리'라고 이름붙여 눈길을 끌었다. 김 교수는 "'도덕적 권리'는 법으로 인정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 또는 국가에게 의무를 부과할 것을 주장할 수 있는 정당한 권한"이라며 "내가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곧 내가 남 또는 국가에게 그에 상응하는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떳떳하게 주장할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의무를 부과할 수 있을 정도의 타당한 근거'의 기준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실정법이나 사회적 관행윤리와 독립해서 존재하는 일종의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도덕원리"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도덕적 관점'으로 △타인에 대한 존중의 요청, 즉 각 개인은 다르면서도 동등한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 △자기 이익만을 최대한 만족하는 태도를 제한하고 남의 이익이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는 상호성의 요청 △동시에 각 개인들이 각자가 판단하건대 좋다고 생각하는 욕구들을 충족하거나 또는 행복을 달성하는 데 목표를 두는 것 등을 김 교수는 제시했다.
김 교수가 설명하는 도덕적 권리에는 실정법적으로 인정되기 이전에도 실제로 은밀하게라도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반면 실정법으로 되지 않으면 도저히 실제로 행사할 수 없는 도덕적인 권리가 있다. 여성의 선거권과 동성애자의 혼인권이 후자의 예. 1900년대 초반의 미국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승인되지 않았던 도덕적 권리에 근거해 선거권을 법적인 권리로 제정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김 교수는 "당시 미국의 여성들은 '가지면 자신들에게 또는 사회적으로 유익할 것'으로서 여성의 선거권을 법적인 권리로서 제도화하기를 요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그랬다면) 권리의 언어에 포함되어 있기 마련인 '긴요함'과 '정당함'이라는 요소를 담아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덕적 권리 가운데서도 '기본적인 도덕적 권리'는 실정법에 의해서만 근거가 생기는 권리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실정법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김 교수는 '다른 모든 권리들을 향유하고 행사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들'로서 △신체불가침 권리 △최저의 경제적 생활의 보장에 대한 권리 △제도와 결사체를 조직할 자유 △활동의 자유 △중요한 공공적 사항들에 대한 결정 및 집행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권리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등을 꼽았다. 김 교수는 "이러한 기본적인 도덕적 권리들은 헌법이 반드시 보장해야 할 종류로서, 만일 어떤 법체계가 이들을 의도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경우 법체계 자체의 법적 효력이 의문시되는 '극도로 부정의한 법체계'에 해당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리언어의 힘
한편 김 교수는 "현실에서 권리의 역할은 무엇을 할 권한이 있다는 도덕적 정당성을 강력하게 표현한다는데 있다"며 "정당한 몫을 빼앗기거나 보장받지 못하는 당사자들은 분노를 느끼고, 여러 가지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에 항의하거나 저항하고, 어느 정도 공정한 제3자는 이에 대해 공감을 가지게 되는 도덕적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인간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고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가장 분명한 길은 인간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것.
또 김 교수는 "권리언어의 특징에는 무엇보다도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간존엄성의 규범적 명제와 '사회는 각 개인들의 창의성을 가능한 한 많이 계발할 수 있을 때 번영한다'는 사회학적 명제가 놓여 있다"며 "어떤 사회의 법체계나 도덕규범의 체계가, 이러한 권리들을 박탈당했거나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공감하는 법률적 공간이 없고, 권리를 빼앗긴 이들이 저항할 수 있는 법률적 신축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규율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그 사회는 변화에 무감각해지고 각 개인들의 창의력을 흡수하지 못하게 되어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