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9조에서 제22조까지 선언된 정신적 자유권은 양심·종교·학문·예술의 자유 등 생각을 형성하는 내심의 자유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 표현의 자유를 모두 포괄한다. 15일 송석윤 교수(서울대 법학)는 "내심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자료를 습득하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내면적 자유도 불가능하다"고 말을 꺼냈다. 이어 "자신의 사상과 양심을 외부에 표명하지 않을 수 있는 '침묵의 자유'와 함께 이를 적극적으로 외부에 표출하고 실천하는 표현의 자유 양자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상의 자유 제약하는 '방어적 민주주의'
독일공산당을 강제해산시키면서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동원한 논리에서 유래한 '방어적 민주주의' 개념은 자유의 적에 대해서는 자위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의 보호의무를 모든 국민과 기관에 부여하고 이를 위반하거나 침해하는 개인과 조직 그리고 정당은 헌법상의 보호로부터 배제시킨다는 원리이다. 우리 헌법도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는 정당을 강제해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고 있다. 집시법도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는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는 집회·시위의 가부를 경찰의 재량 판단에 맡겨, 허가제를 금지하는 헌법에 위반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보안법도 마찬가지.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어적 민주주의에 대해 송 교수는 "모든 기본권은 경우에 따라 제한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권 제한 필요성을 과도하게 주장하며 기본권 보장 자체를 부정하려는 위험한 이론"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송 교수는 "'양심의 자유'보다는 '사상의 자유'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며 "양심의 자유로 표현한 것은 기본권의 정치적 차원을 배제하고 사상의 자유를 개인적·도덕적 측면으로 한정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고 분석했다.
끊임없이 제약 당하는 표현의 자유
송 교수는 "정신적 자유는 다른 기본권보다 우월하고 두텁게 보장되어야 한다"며 정신적 자유를 제약하는 법률의 위헌성 심사는 △재산권 등 경제적 기본권에 비해 더 엄격해야 하고 △일단 위헌이라고 전제하고 심사해야 하며 △내용이 명확하지 않으면 '막연하므로 무효'라는 원칙에 따라야 하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표현의 자유는 끊임없이 제약 당하고 있다. 최근 한국전쟁 당시 연합군총사령관 맥아더를 다시 보자는 취지의 글을 썼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될 위기에 처한 강정구 교수(동국대 사회학) 사건에 대해 송 교수는 "그의 글과 맥아더 동상 철거운동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처벌하려는 쪽에서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문제가 된 표현과 그 해악 사이의 인과관계는 단지 우연의 일치나 시간적 동시성만으로는 부족하고 강 교수와 맥아더 동상 철거운동 사이에 조직적 연결이 있는지도 증명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근본적으로 맥아더 동상 철거가 사회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주는 지도 의심스럽다"며 어이없어 했다.
이른바 음란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헌법 제21조 제4항은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고 선을 그으며 피해자의 배상 청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1998년 헌재는 '음란'에 대해 △인간존엄 내지 인간성을 왜곡하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표현으로서 △오로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할 뿐 전체적으로 보아 하등의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또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으로서 △사회의 건전한 성도덕을 크게 해치고 △사상의 경쟁메커니즘에 의해서도 그 해악이 해소되기 어려운 것으로 정의하고 이에 대해서는 언론·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헌재는 이어 "'저속'은 이러한 정도에 이르지 않는 성표현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헌법적인 보호영역안에 있다"고 덧붙여 자의적인 '고무줄 잣대'를 스스로 드러냈다.
정신적 자유권 위해 '사상의 독점시장'을 깨야
송 교수는 "신문·방송의 독과점 등 현대의 독재는 개인이 사상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제약한다"며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도 독과점을 규제하고 자유시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언론·출판의 자유'의 고전적 의미는 '사상 또는 의견을 언어·문자 등으로 불특정다수인에게 발표하는 자유'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담화·토론·연설·방송 등 구두에 의한 것과 문서·도화·사진·조각 등 문자와 형상에 의한 것을 포함한다. 현대에는 사상이나 의견을 발표하는 자유 이외에도 언론접근권, 반론권, 언론기관 설립권까지 확대됐다. 또 언론기관의 취재의 자유와 편집·편성권, 내부적 자유까지 포괄한다.
송 교수는 "언론의 독과점 현상이 심해져 사상과 의견의 독과점으로 이어진 것이 현실"이라며 "언론기관이 정보를 독점함에 따라 개개인이 알권리를 요구하게 되었고 이제 언론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봉사할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또 "과거에는 언론기관이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언론사의 소유권과 편집권의 분리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사이버공간과 표현의 자유
최근 인터넷과 방송이 융합되는 등 새로운 매체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기준도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전통적인 매체인 인쇄매체의 경우 표현의 자유가 엄격하게 보장되는 반면 방송매체는 공익성과 공공성을 따져 상대적으로 좁게 보장된다. 송 교수는 "새로운 매체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서 (표현의 자유의) 제한 기준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헌재는 2002년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인터넷은 공중파방송과 달리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촉진적인 매체'"라며 "오늘날 가장 거대하고, 주요한 표현매체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율적 규제방식을 취해야 할 인터넷 공간에도 '인터넷 내용등급제' 등 기술적 규제라는 새로운 규제가 도입돼 있다. 이른바 '청소년 유해매체물'에 '차단 소프트웨어가 인식할 수 있는 차단용 부호'인 전자적 표시를 하도록 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해 지난해 1월 헌재는 합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청소년에게 유해한 인터넷 정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공익적 목적의 중요성이 인정된다"고 밝혀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기본권 주체는 '모든 국민'일 뿐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는 주체를 '모든 국민'으로 한정하고 있는 헌법 조문도 도마에 올랐다. '모든 국민은…자유를 가진다'의 형식으로 기본권 주체를 국민으로 한정한 조문에 외국인이 끼여들 틈은 없다. 다만 헌법은 제6조 제2항에서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덧붙일 뿐이다. 현행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체류 외국인이 정치활동을 할 경우 법무부장관은 서면으로 활동중지 명령을 할 수 있고 강제퇴거시킬 수도 있다.
민중의 정치진출 막는 방파제, 사전선거운동 제한
송 교수는 선거법의 사전선거운동 제한 문제를 표현의 자유와 연관시켜 눈길을 끌었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59조는 선거운동 기간을 "후보자등록마감일의 다음날부터 선거일전일까지"로 한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밖에도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제60조), 호별방문의 제한(제106조) 등 다양한 제한규정을 두고 있다.
사전선거운동 금지는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조봉암 후보의 약진을 본 이승만 대통령이 진보당의 진출을 막기 위해 1958년 민의원선거법을 고치면서 포함됐다는 것이 송 교수의 설명이다. 이때 선거운동원 등록규정도 포함됐다. 이런 선거운동의 제한은 1925년 일본에서 치안유지법과 함께 제정된 보통선거법에 기원을 두고 있다. 송 교수는 "이는 보통선거권 도입에 따른 사회주의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라며 "일본은 패전 후 미군정 하에서 이런 조항들을 폐기했지만 한국에서는 선거운동 제한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선거운동기간이 아니면 누가 대통령이 될지, 누가 국회의원이 될지 의견을 말하지 말라는 셈"이라며 "국가보안법과 사전선거운동 제한은 표리의 관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