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때문에 우울합니다>
<인권하루소식>은 태어날 때부터 숙명적으로 양면성을 지녔지요. 많은 분들이 창간을 축하하면서 한편으론 이 소식지가 빨리 망했으면 좋겠다는 말들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소식지가 망하기는커녕 얼마 전에는 숨가쁘게 ‘호외’까지 찍어 가며 창간 때보다 더 절망적인 사실들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인권하루소식> 때문에 아침마다 우울합니다. 예컨대 도시빈민을 울리는 적준개발은 갈수록 철거수법이 악랄해지고 있더군요. 그런데도 공권력은 침묵하고 있고, 위정자는 ‘세계 속의 한국’을 떠벌립니다. 제 백성 가슴을 도려내는 나라가 내 조국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절망스럽습니다.
그래도 <인권하루소식>이 없었다면 사는 낙을 잃어 버렸을 겁니다. <인권하루소식>을 만들거나 아껴 주시는 분들을 저는 사랑합니다.
(한효석 부천정보산업고 교사)
<희망키우기에 감사드리며>
우리 사회 민주주의 척도로 인식되는 인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기존 언론이 보지 못하거나 보기를 거부하는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발, 증언하는 인권소식지가 지령 1천호를 맞은 이때 때아닌 양심수 논란이 제기되는 것을 보면서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팩스신문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사회 인권문제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비슷한 사안들이 연례적으로 반복됩니다. 불법구금과 체포, 고문과 처벌의 문제부터 시작해서 조작사건, 철거민사건 힘없고 돈 없다고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지면이 채워집니다.
비록 멀리 보이는 희망일지라도 한걸음 한걸음 성실하게 인권지기를 자청하는 인권운동사랑방 관계자 여러분들의 ‘희망 키우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준석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프로듀서)
<동성애자 인권과의 짧은 인연>
양심수는 한 명도 없다는 짜증스런 소식이 가뜩이나 신산스런 마음을 더 어지럽힙니다. 하지만 <인권하루소식>이 무려 1천번의 소식지를 냈다는 소식은 어깨를 으쓱하게 합니다. 그건 장하고 아름다운 일을 해서가 아니라 고단하고 억척같은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인권하루소식>이 한국사회의 동성애자 인권과 맺은 짧은 인연은 더없이 마음 든든한 일이었습니다. 줄곧 주눅들고 모멸받아온 동성애자들에게 인권이란 말은 세상에서 자신의 불행을 뉘여볼 단 한뼘의 터전이었다해도 크게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동성애자의 인권을 소수집단의 인권으로 받아들이길 반신반의하는 터에, <인권하루소식>은 서슴없이 그들의 인권을 옹호하여 주었습니다. 저는 그것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그 어떤 차이도 넘어서 무조건적으로 삶의 권리를 옹호한 <인권하루소식>의 지혜와 열정이 계속하길 바랍니다.
(서동진 제1회 서울퀴어영화제 준비위원회 집행위원)
<'아직도'를 상기시켜주는 신문>
아침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읽어보게 되는 인권하루소식이 어느새 지령 1천호가 되었다는 것에 대하여 놀라움을 느끼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늘 나에게 아직도 우리 사회에 그늘진 곳과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인권하루소식>에 대하여 애정과 신뢰를 보냅니다. <인권하루소식>이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뼈를 깎는 수고의 결실임을 잘 알고 있기에.
그리고 인권영화제를 통하여 함께 일하면서 인권운동사랑방 식구들이 인간의 권리와 올바른 사회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기에 지령 1천호 소식은 제게도 남다른 기쁨입니다. 재정적인 곤란, 어려운 사회 여건에도 불구하고 한없는 노력과 용기를 기울여 차곡차곡 쌓여가는 인권의 파수꾼, 인권하루소식의 계속적인 발전을 기원하며…
(조광희 변호사)
<바램이 이뤄져 기쁩니다>
94년 2월 <인권하루소식> 1백호 합본 발행 때, 제가 격려사를 쓰면서 ‘5천호 또는 1천호 발행시 다시 한 번 축하의 말씀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빈다’라고 적었던 바램이 이렇게 이뤄졌음을 기뻐합니다.
1백호 발행 격려사를 쓸 당시엔 ‘과연 5백호 또는 1천호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없이 않았다는 사실도 아울러 고백합니다. 이제, 1천호 발행 소식을 접하고, 인권운동사랑방 가족 여러분의 집념과 열정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숭고한 가치를 향한 집념과 열정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습니다.
(김창국 변호사)
<내 도리부터 다한다면…>
<인권하루소식>을 접하면서 힘차게 활동하시는 예수님을 눈으로 목격하고 가슴 벅차게 살아있는 생명력을 느끼기도 합니다. 또한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의 투쟁, 보금자리를 지키려는 처절한 철거민들의 몸부림을 떠올리며 이 사회에 꺼져가는 양심불을 지키려고 온몸으로 불사르는 정의의 사실들, 그 분들 앞에 참으로 부끄러움만 가득 합니다.
어느 시대이건 마찬가지이지만 이 시대인은 거창한 정의운동이 아닌 나의 생활 속에서부터 내가 해야할 도리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정의를 행하며 산다면 인권유린, 착취, 소외당함과 갖가지 불의의 어둠이 사라지리라 봅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훈훈함이 멀리멀리 천리향처럼 퍼지길
(안현숙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아침마다 <하루소식> 쟁탈전을>
<인권하루소식>이 벌써 지령 1천호를 맞는다니 세월이 빠르긴 빠르다.
처음엔 <인권하루소식>이 민족민주진영의 모든 사건을 전달하는 매체처럼 보이더니 이제는 인권분야의 전문적인 식견과 내용을 담아내는 인권정론지로써의 지위를 확보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과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고 있는 <인권하루소식>을 보면 매체를 만들어내는 같은 입장에서 경외감이 앞선다.
아뭏든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하며, 정통을 세워나가고 있는 <인권하루소식>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이 함께하길 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인권하루소식을 먼저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사무실에서 벌어지길 바란다.
(김성회 전국연합 교육선전국장)
<운동본부의 역사가 이곳에>
제가 일하고 있는 ‘주한미군범죄 근절을 위한 운동본부’의 발족식 소식이 93년 10월 27일 <인권하루소식> 제33호에 처음 실렸었습니다. 그리고 주한미군이 한국인에게 참혹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미군기지 앞에서 처음을 치른 미군범죄 희생자 장례식, 1백회를 맞이했던 금요집회, 주한미군범죄 희생자 추모제 때 등 운동본부의 중요한 순간순간의 역사가 <인권하루소식>에 고스란히 기록되었습니다.
하루빨리 이 땅에서 고통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그날이 올 때까지 <인권하루소식>이 이런 소식을 보도할 필요가 없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김동심 주한미군범죄근절을 위한 운동본부)
<2천호에는…>
마감날 밤을 샐 때 새벽5시쯤 울리는 팩스 소리.
?아! 인권하루소식이구나!?하고 새벽이 왔음을 실감합니다. 그 안에 담겨있는 인권관련 소식들. 우리 사회가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느끼며 더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묻혀있는 소식들 전하는 <인권하루소식>에 감사하게 됩니다. 2천호에는 인권이 제대로 지켜지는 사회만 담게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김희연 이대학보사 편집국장)
<끝> 독자여러분의 성원 감사드립니다.
<어머니가 정성스레 모아둔 소식지>
제게 인권하루소식은 '하루'소식이 아니라 '주간' 혹은 '격주간' 소식지랍니다. 지방에서 군복무를 하다보니까, 가끔씩 집에 올라올 때마다 어머니께서 정성스레 모아둔 소식지를 한꺼번에 읽기 때문이죠. 그때마다 소식지는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 인권현실의 척박함을 깨닫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적당히 사회물을 먹고 안주하려는 제 자신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령 1천호를 맞이한 소식지 편집진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뜻을 전하면서, 짧은 글이나마 평소 개인독자로서 느꼈던 아쉬운 점들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선 편집에서 아마츄어리즘을 극복했으면 합니다. 활자체와 크기의 일관성,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기사배치, 다소 상투적이고 반복적인 제목편집 등의 문제에 대한 고려가 있었으면 합니다.
또한 '하루'소식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인권개념에 대한 재정립의 문제보다는 '생소한(?)' 인권개념 자체를 만들어가고 이를 알려나가는 문제가 더 시급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선 매일매일의 인권동향도 중요하지만 긴호흡의 교육성 기사의 비중을 더 높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윤명섭(현역군인)
<관심사를 넓혀라>
1천호를 맞는다는 것이 놀랍다. 양심수가 뭔지 잘 모르는 정부 밑에서 말이다. 창간 초기에는 마치 일부 노동운동, 학생운동 구속자 소식지 같았다. 그럴 통로도 없던 당시로는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깊었다.
그러나 세계인권대회를 전후해서 "인권"에 대해 모두가 더 깊이 성찰하게 되었고 이는 인권하루소식의 지면에도 반영되었다. 동성애자의 "인권"이 좋은 예이다.
지난 번 포르노 논쟁 때에도, 서준식 발행인이 포르노 그 자체가 바로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는 시각을 제공한 것도, 찬반을 떠나 매우 인상깊었다. 단지 관심의 폭만 넓어진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인권논의를 앞장서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좁은 지면만으로도.
그러나 여전히 아쉬운 점도 있다. 한국사회의 인권논의는 국제사회의 인권과 동떨어질 수가 없다. 적어도 중국, 일본, 동남아, 북한 등의 인권문제에 중요한 진전이 있을 때에는 국내소식처럼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특히 북한의 국군포로 등은 남한 내 장기수 문제와도 관련이 있는데, 별 진지한 노력이 없어 보인다. 설사 "인권" 자체에는 별로 관심없는 보수우익의 정략적 문제제기라 할 지라도, 그 도전을 받아 안을 때 인권이란 나무는 더욱 뿌리가 깊고 튼튼해 질 것이다. 그곳에 인권을 침해당하는 이들이 있는 한.
박준영(아시아가톨릭연합통신 한국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