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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뜨거운’ 양심만큼은 영원히 바꿀 수 없다

8․15 출소자 두 명, 준법서약제 철폐 농성


“그렇게 살 순 없다”

준법서약서를 쓰고 나온 정선(26․96년 서총련 조통위원장, 덕성여대 수학과 92학번), 김태환(27․97년 서총련 집행위원장, 홍익대 경영학과 90학번) 씨는 지금 준법서약서 철폐운동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들은 지난 8․15 사면 때 준법서약서를 쓰고 가석방된 뒤 재구속 위험에도 불구하고, 9월 24일부터 준법서약제도 폐지를 주장하며 명동성당에서 무기한 농성 중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12․12, 5․18사건 관련자와 각종 비리사범들은 아무런 조건없이 석방되는데, 양심수와 공안사범들에게만 준법서약서를 요구하는 모순을 참을 수 없다”면서 “우리가 써낸 준법서약은 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것이므로 이를 철회한다”고 말했다. 또 비전향장기수․양심수 완전 석방, 국가보안법 철폐, 범민련과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의 무기한 농성은 가시밭길이다. 25일 오전에만도 명동성당 측의 항의로 천막이 철거가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가 다행히 함께 있는 만도기계, 조흥 시스템 노동자들의 항의로 다시 농성을 진행할 수 있었다. 현재는 식사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어려움을 해결하고 있다.

여기에다 법무부는 “서약서를 쓴 것이 위장인 것으로 드러나면 가석방을 취소해 재수감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고, 검찰청도 25일 관할경찰들을 보내 1차 경고하면서 농성을 풀라고 위협했다. 25일 내려던 농성단의 한겨레 신문광고도 한총련 광고라는 이유로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다. 가시밭길은 이 뿐만이 아니다. 오후에는 부모님이 다녀가셨다. 출소 뒤 몸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한 채 농성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정선 씨는 “준법서약서를 쓰고 나왔어도 주변동료들은 따뜻하게 대해줬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어딘가 허탈했다. 그 허탈함은 따뜻하게 대우받는 것으로 풀리는 게 아니었다”며, “준법서약서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거부’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내가 직접 그것을 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농성을 시작하게 된 심경을 털어놨다. 농성을 들어오기 전, 긴장도 많이 했다는 정선 씨는 “그러나 나의 과오를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농성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옥중 동지들을 생각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며 출소 뒤 40여일 동안의 고민을 뒤로 하고 힘차게 얘기했다.

차가운 농성장 마루바닥 위로 이불과 베개를 옮기고, 밥 지을 코펠과 반찬, 간장을 챙기던 김태환 씨는 “국가권력이 양심을 가진 사람의 내면을 잠시 바꿀 수는 있어도 다시 제자리를 찾아오는 ‘뜨거운’ 양심만큼은 영원히 바꿀 수 없다”며 농성장을 찾아온 어머니 이명자(58) 씨의 손을 꽉 잡았다. 어머니 이 씨는 아침저녁 쌀쌀한 추위로 옥살이 때 상한 아들의 몸이 더욱 더 상하지 않을까 염려하며 눈은 성당 철탑만을 바라본 채, 안경 사이로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