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안 노동운동 탄압 뚫고 전․노를 감옥으로
삼풍백화점이 붕괴되고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사건은 해방 50주년이었던 1995년에 일어났다. 이 둘의 구속은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 항의한 전 국민적 분노가 저항운동으로 이어져 5.18특별법을 제정토록 강제하면서 이뤄낸 성과였다.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 석방
해방 50주년을 맞아 정부가 단행한 특별사면복권 조치로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씨를 비롯한 초장기수 3명이 풀려났다. 이는 이후 초장기수를 비롯해 장기수의 전면적인 석방을 끌어내는 인권단체들의 1990년대 집요한 투쟁의 최초의 승리였다. 그러나, 해방 50주년 기념 특별사면에서 양심수는 거의 제외되고, 비리 정치인과 경제인, 공무원 등이 다수 포함돼 비난을 샀다. <인권하루소식>은 8회에 걸쳐 ‘분단의 고통을 나누자’는 장기수 캠페인를 전개하여 그들의 석방을 촉구했다.
부여간첩 사건과 ‘불고지 정국’
1994년 대오를 다시 형성한 공안당국은 이른바 ‘부여간첩 김동식’과 관련된 ‘불고지 정국’을 조성, 이인영씨등 청년운동가들을 불고지 혐의로 연행했다. 안기부는 전국연합의 간부 박충렬, 김태년씨가 ‘간첩’혐의를 연행하여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안기부는 이들의 간첩 혐의를 입증해내지 못했으며, 법정에서 이들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게 된다. 이 해에 국가보안법 구속자는 270명을 훌쩍 넘겨 ‘신공안정국’이 지속됨을 보여주게 된다.
극심한 노동탄압, 민주노총 건설
정권의 노동탄압은 어느 해보다 극심했지만, 노동운동은 11월 11일 민주노총이라는 법외노조를 탄생시켰다. 한국통신노조는 정부의 공공사업장에 대한 가이드라인 철폐와 통신시장 대외개방 반대를 내걸고 준법투쟁에 돌입한다. 그러나 이를 김영삼 대통령은 ‘체제전복 기도’라고 매도하고, 한국통신 노조원들이 농성 중이던 명동성당과 조계사에 경찰력을 투입, 대거 연행하였다. 이에 종교계는 정권퇴진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박홍 서강대 총장은 다시 “한국통신 노조가 북한의 조종을 받았다”는 근거 없는 발언을 해 주사파 시리즈를 이어갔다. 노조는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여 이후 수천만 원의 벌금을 물게 했다.
이외에도 공권력을 앞세운 노동탄압은 현대자동차 양봉수씨, 대우조선 박삼훈씨의 분신, 병역특례해고노동자 조수원씨의 자살 사건 등을 야기하게 된다. 정부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위한 근로자파견법 제정을 기도하다 노동운동 진영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당하기도 했다.
절박한 도시빈민의 생존권 지키기
서울 금호지구의 박균백씨 분신사건, 봉천동 전철순씨 성폭행 사건, 인천 아암도 이덕인씨 사망 사건은 도시빈민들의 생존권 지키기가 절박한 상황이었음을 드러내 준 사건이다. 이들 사건들은 대부분의 언론들이 외면했던 것으로 인권하루소식은 이들 사건 현장을 지속적으로 취재, 폭로하면서 적준 등의 철거용역업체의 폭력성을 꾸준히 추적, 보도한다.
고문피해배상 등 의미있는 진전들
그 해 의미있는 인권의 진전도 있었다. 고문방지조약 가입 절차를 마쳤고 고문피해자 문국진, 김종경 씨가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았다. 황석영씨 등에 대한 자의적 구금 결정,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유엔인권위 여성폭력 특별보고관의 방문조사, 국가보안법 국제심포지엄,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권고, 북경여성인권대회 참가, 어린이․청소년 권리 연대회의 출범 등은 민간인권단체들의 국제연대운동이 일궈낸 결실이었다.
유례없는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 이주노동자들의 농성, 동성애자들의 연합단체 구성 등으로 새로운 지평을 연 해였지만, 여전히 공안세력에 의한 인권탄압이 지속되었던 힘겨운 나날로 점철되었던 한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