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이 만든 조작간첩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에 따르면 조작간첩사건 피해자는 지난 7월 15일 재심 무죄판결을 받은 함주명씨를 포함해 83명에 달한다. 청문회에서 다뤄진 이른바 '진도가족간첩단 사건'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진도에서 농협 예금계장으로 일하던 박동운 씨는 1981년 3월 일가족 7명이 남산 안기부에 끌려가 60일 동안 몽둥이세례, 잠 안 재우기, 성기 고문 등을 받았다. 연행당시 가족 누구도 구속영장을 제시받거나 구속의 이유, 범죄사실의 요지, 변호인 선임권에 대해 고지받지 못했다. 이들은 구속영장이 발부된 같은해 5월까지 63일간 불법구금을 당한 채 수사 받았고 변호인 접견권은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결국 박씨는 고문에 못 이겨 5살 이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만나 북한에 다녀온 후 간첩활동을 했다고 허위 자백하고 간첩 혐의로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그는 98년 광복절에 가석방되기까지 18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의 어머니·동생·숙부·고모부 또한 징역형을 받았다.
간첩조작의 가해자, 국가
박 씨와 함께 끌려간 삼촌 박경준 씨는 7년 형을 받고 1988년 만기 출소한 후 쓴 호소문을 통해 "죽을 방법만 있다면 숨을 끊어서 이 극한적 절박한 고통을 잊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당시 수사관들이 "이번에 큰일을 하고 실적을 올렸으니 누구는 표창을 받고 누구는 승진하고 포상금을 타고, 위로금으로 화전놀이를 가는데 누구누구의 차를 동원하고 누구는 무엇을 준비하라"고 말했다며 "무고한 국민은 죄를 뒤집어 씌워 쇠고랑을 채워서 감옥으로 보내고 가해자는 영광과 명예를 한 몸에 안고 꽃놀이를 간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법원은 박 씨가 안기부에서 검찰로 송치된 후 담당 검사(주임검사 안강민) 앞에서 모든 혐의사실을 인정한 점을 들어 고문조작 호소를 외면했다. 하지만 박 씨는 "안기부 수사관들이 '국가를 상대로 재판하는데 부인할 생각은 하지 말아라…또다시 불러다 조사할 수 있다'고 협박했고 검찰 수사를 받을 때도 검사실 내에 당시 고문했던 안기부 수사관들이 들어와 진술을 지켜봤다"며 "검찰에서 결백을 주장하면 안기부에 다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다가 죽을 것만 같다는 공포감에 허위자백했다"고 밝혔다.
법원 또한 사건의 공모자였다. 사건 초기 안기부는 증거물로 난수표, 무전기, 권총을 발견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하지만 박 씨가 난수표와 무전기의 개념도 몰라 사실조작이 어려워지자 망치의 일종인 '자귀'로 난수표와 무전기를 부셔버렸다면서 증거물로 제출했고 법원도 이를 증거로 인정했다. 아버지의 사진이 들어 있는 사진첩조차 '아버지를 흠모하면서 그 업적을 가족들에게 설명하였다'는 취지로 간첩죄의 증거가 되었다. 1심 공판 중 박 씨가 일관되게 고문에 따른 허위자백임을 호소했으나 재판장은 "안기부와 검찰에서 자백해 놓고 왜 이제와서 딴소리냐"고 할 뿐 이들의 주장에 전혀 귀기울이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도 고문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신체감정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안법이 남긴 것
청문회에 참석한 박 씨는 "국가공권력이 반공교육을 얼마나 시켰으면 아내까지 나를 간첩으로 의심한다"며 "국가를 원망하지 아내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씨는 출소한 후 생활비 등으로 인한 빚으로 아내와 아이들이 신용불량자가 되어있어 모든 빚을 자신 앞으로 옮겼다. 그러나 박씨는 "출소하고 아이들과 함께 자고싶어 옆에 이불을 폈더니 아이들이 독벌레가 온 것처럼 황급히 이불을 걷더라"고 말했다.
박동운씨와 장시간 면담을 가진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씨는 박씨가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 대해 부적절한 죄의식을 갖고 있으며 그로 인해 스스로 자기를 비난하는 심리가 작동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피해자가 오히려 죄의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국가 공권력의 가장 잔인한 점이라는 것. 또 "박 씨는 18년간의 부당한 옥살이로 인한 극단의 억울함과 그러면서도 어찌해볼 수 없었던 좌절감, 현재까지도 대인관계에서 '저 사람도 앞에서는 아니라고 해도 뒤돌아서면 나를 빨갱이로 생각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기도 모르게 생겨나 대인기피증세 등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박씨는 수년동안 혼자 생활하고 있으며 아직까지 당시 사건을 알던 사람들에게 "빨갱이 새끼 지나간다"는 말을 길거리에서 듣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국가를 '사이코 패스'로 만든 보안법
정 씨는 "특정집단의 정권유지를 위해 국가보안법이라는 미명하에 반도덕적, 반사회적인 방법으로 수많은 개인들의 몸과 마음을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잔혹하게 짓이겨놓고 아직까지도 국가보위와 법률의 엄정성을 큰소리로 되뇌이는 대한민국 공권력은 사이코패스와 무엇이 다르냐"고 주장했다. '사이코 패스'란 겉으로는 일상생활도 잘 하고 멀쩡해 보여 심지어 가족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제심, 양심, 도덕성 등 통제기제가 미약해 순간적인 충동으로 반도덕적 반사회적 행위를 저지르는 '정신병질자'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