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권, 양심수, 사형문제 여전
국제앰네스티는 97년 한해 남한의 주요인권문제로서 노동법 개정, 양심수, 경찰폭력, 국가보안법 적용, 고문, 그리고 사형제도 등을 꼽고 있다. 이는 과거의 연례보고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으로, 한국의 이러한 문제가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관심의 대상임을 보여준다<편집자주>.
국제기준에 어긋난 노동법 개정
1월 초에는 민주노총의 지도하에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개정 노동법에 반대하는 파업을 단행했다. 당국은 '불법' 파업을 조직한 노조 지도부 20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지만, 전국적으로 대중적인 항의집회가 이어짐에 따라 체포영장을 철회했다. 지난 3월 재개정된 노동법은 여전히 교사와 공무원이 노조를 결성하고 노조에 가입할 권리를 금지하는 등 국제 기준에 어긋나는 조항들을 포함하고 있다.
4월 북한의 한 고위관료가 남한으로 망명함에 따라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었다. 안기부는 망명자로부터 얻어낸 정보를 바탕으로 남한내 북한 동조자들에 대한 수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이 정보가 악용돼 평화적으로 정치활동을 해온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7월, 헌법재판소는 96년 12월에 개정된 안기부법이 헌법에 위배되지는 않지만, 날치기로 통과됨으로써 입법가들이 새 법안을 검토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평화적인 정치활동 탄압
650명 이상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있으며, 대부분이 국보법 제7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고무·찬양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중에는 북한에 동조하는 사상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사민청' 회원 20명(양심수)과 비공식적인 통로로 북한에 기아구제기금을 전달한 '범민련' 회원 5명이 포함되어 있다. 대학생 양현주 씨도 방북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지난 7월과 8월에는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된 숫자가 총 249명으로 최고조에 달했다. 수백명의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폭력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고, 이적단체 가입 혐의를 받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들의 폭력시위에는 동조하지 않지만, 한총련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이 평화적인 활동을 전개해 온 학생들이나 시민들도 구속하는 사태까지 불러온 것에 대해서는 우려한다.
11월 인권활동가 서준식 씨(양심수)가 인권영화제 개최를 비롯, 친북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고, 다른 5명의 인권영화제 집행위원도 체포되었다 풀려났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인권영화제 상영작품에 대한 당국의 검열을 거부해 왔다.
남한당국은 허가없이 북한을 방문해 "국가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김하기 씨에게 3년6개월 형을 선고했고, 진관스님에게도 국보법 위반죄로 똑같은 형을 선고했다. 5월 남한 정부는 국제앰네스티에 보낸 답신을 통해 김하기 씨에 대한 형 선고를 정당화했으며, 국보법이 세계인권선언에 기초해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96년에 컴퓨터통신 게시판에 "위험한" 의견을 올렸다는 혐의로 구속된 윤석진 학생은 4월 무혐의로 석방되었다.
고문, 열악한 수형생활
수십 명의 정치범들이 여전히 수감되어 있다. 이들 중에는 일본에서 북한 동조자들에게 "국가기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3년6개월 형을 선고받은 박창희 교수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구속후 안기부 수사과정에서 고문을 당했다. 77살의 양심수 강희남 목사는 친북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후 2년6개월 동안 징역을 살았는데, 건강이 악화되어 있는 상태다. 7, 80년대에 간첩죄로 장기형을 선고받은 정치범 가운데 최소 20명이 여전히 수감되어 있다. 그들은 고문으로 인한 자백내용을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한 불공정한 재판을 받았다. 이들 중 강희철 씨는 86년 무기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데, 고문과 오랜 독방생활로 인한 정신적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 같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조상록 씨도 19년간의 감옥생활로 육체적·정신적 건강상태가 모두 좋지 않다.
경찰폭력, 사형집행
학생들과 시민들이 구속, 수사받는 과정에서 경찰과 안기부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경기대 학생 조영준 씨는 체포된 후 경찰서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경찰 20명으로부터 구타당했다. 한양대 학생 김혜전 씨는 신분증 제시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구타당했고, 연세대 학생 김선일 씨도 체포되는 과정에서 3명의 경찰에 의해 구타당했다.
12월에는 친척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23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고, 사형수도 여전히 36명에 이른다. 이들 중 조선족 선원이었던 전재천 씨는 11명의 선원을 살해한 죄로 96년 12월 사형선고를 받았다. 함께 사형을 선고받았던 다른 5명의 선원들은 고등법원에서 다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국제앰네스티는 남한정부에 대해 양심수의 석방과 국제적 기준에 일치하는 노동법과 국보법의 개정을 계속 요구해 왔다. 또한 과거 정권 아래서 불공정한 재판을 받고 수감된 장기수들의 문제를 재검토해줄 것, 고문과 부당대우를 종식시킬 것, 사형제도를 폐지할 것 등을 요구했다. 국제앰네스티는 5월 『남한: 감추어진 희생자, 장기수』라는 책을 출판했고, 10월에는 대통령선거 후보자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인권을 보장하고 증진시킬 수 있는 공약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