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은 김대중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지난 1년간의 인권상황을 되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오늘 ‘사상의 자유와 국가보안법’ 부문을 시작으로 2. 사회권(노동권을 중심으로) 3. 공권력 남용 실태와 인권의 제도화 4. 인신구속 실태(감옥의 인권) 5. 김대중 정부 1년 인권상황 평가 좌담회를 차례로 연재합니다<편집자주>.
이른바 국민의 정부 출범 1년. 비록 일제잔재, 외세의존 등 부정적 요인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새 정권은 분명히 민주주의와 경제가 함께 발전하는 사회를 이루겠다며 개발독재의 해독을 주장하고 민주개혁과 인권개선을 국정지표로 내세웠다. 그렇다면 새 정부 출범 1년이 되는 지금, 민주개혁과 인권개선의 국정목표는 과연 어디에 와 있는가?
준법서약의 도입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선거 때부터 타 후보와는 달리 양심수의 존재를 인정, 사면을 약속했다. 따라서 양심수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대한 기대는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진행된 3․13, 8․15 양심수 사면조치는 실망을 넘어 배신감마저 갖게 했다.
박상천 법무부장관은 ‘체제전복세력과 사상전향을 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사면불가 입장을 표명했고(3․13), 8․15에 시행된 준법서약은 양심수 사면의 필수조건이 됐다. 그리하여 건국이래 최대 규모라는 3․13 사면 당시 양심수 석방은 겨우 5%인 74명에 그쳤고, 8․15 사면에서도 455명 구속 양심수 가운데 94명만이 가석방 또는 형집행정지로 석방됐을 뿐이었다.
이 같은 사면조치의 문제는 ‘몇 %의 양심수를 석방했느냐’하는 수치의 문제가 아닌 석방기준과 내용, 양심수를 공안사범시하는 인식태도의 문제였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사상전향제도를 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준법서약제를 도입한 것이었다. 이로써 양심수 개념도, 대통령 사면권의 본래 의미도 훼손되었다.
또한 양심수 사면은 적을 굴복시킨 후 은전을 베푸는 식이 되고 말았다. 즉 노태우 정권 당시의 조건 없는 양심수 대사면은 그만두고라도 사면에 가장 인색했다는 김영삼 정권 수준에도 못 미치는 사면으로 이른바 신공안정책의 실상을 드러내고만 것이다.
양심수 양산 신기록
현 정부는 양심수 만들기에도 새 기록을 세웠다. 정권 출범 이후 지금까지(1월 15일 현재) 708명의 양심수가 양산됐는데, 김영삼 정권 출범 후의 동일 기간과 비교한다면 4배가 넘는 수치다. 또한 구속 양심수 708명 중 미결로 남아 있는 188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기소유예나 집행유예로 석방됐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구속 남발이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이렇게 많은 양심수 양산은 국가보안법이란 무소불위의 폭압장치 때문에 가능했다. 708명의 양심수 중 55.5%인 393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로 구속된 영남위원회 사건을 비롯해 이적단체구성 혐의의 국제사회주의자사건, 북부노동자회사건 등은 국가보안법에 의해서만 가능한 사건들이었다.
상식이 범죄로 둔갑
무엇보다도 양심수 양산의 결정적 요인은 한총련에 대한 이적규정이었다. 전체 양심수 중 학생 양심수는 403명. 이중 대부분이 한총련 불탈퇴 혐의로 구속됐다. 초등학생도 반장을 뽑고 학급 자치회를 구성하는 때에 대학생들이 스스로 학생회라는 대중조직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이러한 상식도 국가보안법에 대입시키면 엄청난 범죄로 둔갑되는 것이다.
80년대 이후 민족․민주운동의 과제로 정립된 용어인 자주, 민주, 통일은 국가보안법에 대입되는 순간 자주는 반미자주 미제축출로, 민주는 인민민주주의로, 통일은 고려연방제 등으로 규정받는다. 이렇듯 50년간 국가안보․사회안전의 명분아래 인권침해와 독재강화, 분단고착에 결정적 악역을 다해 온 국가보안법은 이제 사라져야한다. 이는 대체입법이나 조문 몇 개 없애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존립근거를 상실한 국보법
국가보안법은 더 이상 존립할 기반도 실효성도 상실해 버렸다.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했지만, 남과 북은 7.4남북공동성명을 통해 북이 반국가단체가 아님을 선언했고, 국제연합에 함께 가입(92.9.24)해 이를 법적으로 확인했다. 또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발효(92.2.19)해,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해 공동이 노력할 것을 합의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국가보안법은 그 존립근거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또 국가보안법은 헌법이 보장하고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조약이 규정한 인간의 사상․양심․표현․결사의 자유 등을 침해하고 있다. 한국은 국제연합에 가입했고, 세계인권선언을 지지하고 여러 국제인권조약에 가맹했다. 이러한 인권조약은 도덕적 권위를 지니며 가맹국은 반드시 조약을 지켜야할 의무를 갖는다. 따라서 이러한 의무에 반하는 국가보안법의 철폐는 불가피한 일인 것이다.
이제 범국민 국가보안법철폐 상설기구 등을 설치함으로써 국민들의 국가보안법 철폐 요구를 모아야하고,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에 대한 재판이 끝나는 대로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소하는 방법 등을 모색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위해 민주적 제 단체들이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야 할 때다.
권오헌(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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