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받이로 전쟁에 동원되는 아이들, 교육은커녕 하루종일 노동에 혹사당하는 아이들, 매매춘과 포르노 시장에 팔려나오는 아이들…. 이러한 착취와 폭력 속에 신음하는 제3세계 어린이의 삶에 비하면 우리 아이들은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 사회에도 점심을 굶거나 부모로부터 학대받고 버림받는 아이들이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고 자위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나머지 아이들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요즘 아이들이 예전보다 많은 관심과 풍요 속에서 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과 풍요로움이 아이들의 행복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무한경쟁은 싫어!
"학교 갔다오면요 바로 보습학원 가야돼요. 학원에선 전과목 다 배워요. 저녁 먹고 또 미술학원 가요. 밤엔 시간이 없으니까 숙제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틈틈이 해야 돼요. 친구들 중에 학원 하나이상씩 안 다니는 애는 없어요." 초등학교 5학년 예슬이는 하루가 너무 힘들다며 아이답지 않은 한숨을 내쉰다. 남보다 잘난 아이, 똑똑한 아이로 만들어내려는 어른들의 경쟁 속에서 아이들이 뛰놀 자리엔 학원만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들은 "그게 다 너희들을 위해서야"라는 말로 아이들의 숨가쁜 현실을 외면한다. 아이들 대신 미래를 설계하면서 그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라고 강요한다. 그 이면에는 자신의 욕망을 아이들을 통해 대리 실현하려는 욕심마저 자리잡고 있다.
어린이신문 '굴렁쇠'의 발행인 김찬곤 씨는 "자본주의 경쟁체제와 내가족 이기주의가 아이들의 삶을 무한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또 한편에선 '동심'을 강조하며 어린 고객을 상대로 거대한 이익을 챙긴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무한 경쟁체제와 내 아이만 생각하는 가족이기주의는 '돈이 전부이며 남의 고통은 등한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아이들을 재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아이들에게 '자기 삶의 주인으로, 더불어 살아가고 배려할 줄 아는 존재로 성장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는지 모른다.
'권리'를 돌려주자!
"어른들은요 우리가 무슨 말을 하면 쪼그만 게 뭘 안다고 대드냐고 그러세요. 선생님이 시키면요 뭔가 잘못된 것 같아도 그대로 따라야돼요." 초등학교 6학년 지원이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존중하는 어른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이러한 성인중심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는 아이들의 권리를 쉽게 무시하고 박탈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장해왔다. 부모의 이혼이나 입양 등 아이들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대사를 결정할 때도 아이들의 의견은 고려되지 않는다. 술 취한 아버지에게 맞고 살아도 제대로 도움을 청할 곳은 없다. 아이의 양육과 성장은 가족의 책임에만 맡겨질 뿐, 밤늦도록 혼자서 부모를 기다려야 하는 아이들에 대해 사회 전체가 책임지려는 자세는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한편에선 과잉보호와 통제가, 다른 한편에선 방임과 학대가 아이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기에 그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에게 자율적 판단과 행동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지금의 아이들은 늘 어른에게 의존하려는 미성숙한 존재로 남아있을 뿐,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고도 "안된다"고 외칠 줄 모른 채 자라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선물
부모들은 선물공세로 아이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어린이날 한몫 잡아보려는 알팍한 상혼마저 부모들의 착각을 부채질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선물만이 아니다. 그들이 기대하는 건 아이들의 의견과 선택에 격려를 보내고 아이들의 소망에 귀기울여주는 어른과 사회의 모습이다.
가족이기주의의 굴레를 넘어 다른 아이의 고통까지 껴안을 수 있는 넉넉함도 필요하다. 비오는 날, 내 아이 만이 아니라 누군가 혼자 비를 맞고 갈 아이를 생각하며 우산을 챙겨 나오는 부모를 통해 아이들은 세상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