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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아시아 민중의 인권현장] 가난과 분쟁이 삼켜버린 미래

네팔의 아이들 2

공포와 절망의 세계에 들어와보라.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악몽에 사로잡혀 수많은 어린이들이 아동노동의 최악의 조건들을 견뎌내고 있다. 아동노예, 아동매춘, 아동납치, 아동군인. 이런 것들은 단지 단어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의 한 단면이다.<최악의 아동노동 형태에 관한 세계 보고서>

몇 시간을 까멜(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여행자 거리)에서 서성여봤지만 결국 인터뷰는 실패하고 말았다. 혼자 물건을 파는 아이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았고, 의사소통이 될 것 같은 아이들의 곁엔 몇 마디를 나누기가 무섭게 누군가 나타나 자기 물건을 사라고 흥정을 부치거나 무엇을 하냐며 아이들의 입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네팔의 아이들은 하루 1천원도 되지 않는 돈을 벌기 위해 하루 10시간에 달하는 중노동을 감수해야만 한다. [출처] CWIN

▲ 네팔의 아이들은 하루 1천원도 되지 않는 돈을 벌기 위해 하루 10시간에 달하는 중노동을 감수해야만 한다. [출처] CWIN



두 명 중 한 명이 아동노동자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를 가진 신들의 나라로 관광의 중심지로, 최근에는 국왕이 계엄을 선포하고 의회를 해산시키면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나라 네팔. 하지만 인권, 노동단체들의 관심이 몇 십년 동안 네팔을 떠나지 못함은 아동노동 때문이다. 총 인구 중 1/10인 2백 6십만명이, 즉 두 명 중 한 명의 아이가 네팔에선 아동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네팔의 아동노동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최대 최빈국의 가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땅이 없고 아동과 여성에 대한 차별이 오랜기간 지속돼 오면서 아무리 어린 아이라고 하더라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사회적 관행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 또한 도시 중심의 산업발전은 보다 많은 이윤 창출이라는 어른들의 장사셈 아래서 아이들을 노동자로 전락시켰다.

네팔노동조합연맹(GEFONT)에서 아동노동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만주타파 활동가. 그녀는 과거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며 이주노동자 권익 쟁취를 위해 투쟁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 네팔노동조합연맹(GEFONT)에서 아동노동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만주타파 활동가. 그녀는 과거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며 이주노동자 권익 쟁취를 위해 투쟁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의 일터는 공장과 드넓은 농장, 광산. 네팔노동조합연맹(GEFONT)의 만주타파 활동가는 아이들은 하루에 1천원도 안되는 돈을 벌기 위해 하루 최소 9시간에서 14시간씩 일하고 있다며 이들은 좁고 더럽고 컴컴한 공장에서, 숨이 막힐 듯한 무더위의 들판에서 그리고 하루 종일 제대로 허리도 펴지 못한 채 돌멩이 무더기 속에서 쓸만한 돌을 골라내기 위해 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네팔의 옷과 비누, 담배와 카페트, 사탕수수와 티, 보도블럭 하나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아이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또 다른 일터는 거리.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행상을 하거나 상점 종업원으로 일한다. 버스 안내원 역시 아이들의 몫이다. 카트만두 시내의 버스 안내원으로 일하던 12살 소년은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그래도 동냥하는 것보다는 낫다. 나는 하루에 세끼를 먹을 수 있고, 수도에서 일한다라고 답한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버스 안내원(조수)으로 일하고 있는 아이. 아이는 그래도 동냥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 수도 카트만두에서 버스 안내원(조수)으로 일하고 있는 아이. 아이는 그래도 동냥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시골의 아이들은 포터로 일한다. 트래킹을 떠나는 이들의 짐꾼이 되는 이들은 자신보다 무거운 짐을 머리와 등에 짊어지고 몇 날 며칠 산을 오르고 내려야 한다. 고되더라도 수도 카트만두에서 그리고 네팔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외곽지역의 많은 아이들은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서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건 또한 어른들에 비해 열악하다. 네팔 아동노동자들에게 임금체불과 학대, 위험한 환경에서의 노동, 보장되지 못하는 잠자리와 불충분한 휴식은 욕설과 뭇매 등과 함께 아동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만든다. 노동에 지치고 노예처럼 살아가는 아이들은 교육의 기회는 물론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도, 꿈도 꾸지 못한 채 삶을 살아간다.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소녀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여아들이 처한 환경이다. 많이 변화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네팔 사회에서 여아는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다. 아들만이 가족의 성을 계승하고 노년을 책임질 수 있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형성된 불평등은 일생을 통해 지속된다. 여아들은 교육을 받고 충분히 먹고 쉬는 것에서는 항상 부족하지만 일거리는 차고 넘친다. 유니세프의 통계에 의하면 70%의 여아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여성에게 교육은 불필요하다는 전통적 가치관과 여자 아이들을 남녀공학에 보내면 안되며, 결혼이야말로 여성 최대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정통 힌두교 신앙이 결합되면서 여아들은 학교에 가는 것 대신 동생을 돌보거나 가사일을 돌보는 등 5~6살 때부터 집안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없거나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여아들은 채 10살이 되기 전에 공장으로, 가정부로 팔려나간다. 칸크치(kanchchi)로 불리는 이들에겐 교육도, 월급도 없다. 주인은 이미 그들의 가족들에게 선금을 지급했다며 이들에게 하루 두끼의 식사와 창고와 같은 잠자리를 제공할 뿐이다. 주인의 학대는 예사고 강간을 당하는 일도 허다하다. 아침 5시에 시작한 노동은 밤 12시까지 계속되고 아이들은 각종 가사 노동에 시달리며 하루를 보내고 일년을 보낸다. 부모가 죽은 뒤 삼촌 손에 이끌려 5살 때부터 남의 집살이를 시작했다는 한 소녀는 한 네팔 인권단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다면서 칸크치로 살다가 죽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신매매 등으로 인해 팔려나가는 소녀들의 운명도 가혹하기는 마찬가지다. 많은 수의 네팔 소녀들이 인도와 네팔 국경지대에서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꾀임 등에 빠져 인도의 성매매 시장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인도의 INDIAN HEALTH ORGANISATION에 따르면, 1989년에 인도 내에 있는 성매매 산업 종사자 중 35%가 인신매매범들에 의해 팔려온 네팔 여성들이었다. 인신 매매범들은 카트만두에서 신부를 구하러 온 것처럼 속이거나 도시에서 좋은 직장을 알선해주겠다고 사람들을 현혹시킨 뒤 소녀들을 인도로 팔아 넘기고 있다. 아이들의 몸값은 3만원에서 10만원선 (1,700∼8,000루피). 인신 매매범들에 의해 납치된 아이들은 음식이나 의복이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며칠 동안 어두운 방안에 갇힌 뒤, 인신매매범들로부터 매를 맞거나 담뱃불로 지짐을 당하거나 집단 강간을 당한다. 그렇게 20여 일에서 한달 동안 갇혀 있게 되면 소녀들은 완전히 망가져버리게 되고 그 후 아이들에게 새 삶이란 찾아오지 않는다. 한해가 지날수록 인신매매범들의 표적이 되는 나이는 점점 낮아져 현재는 10세부터 14세 소녀들이 집중 표적이 되고 있다. 이렇게 홍등가에 서게 된 소녀들은 치유 불가능한 질병에 걸려 그곳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평균 10년에서 15년 동안 성노예로서의 삶을 강요당한다.

네팔의 대표적 아동인권단체인 CWIN 중앙사무실 전경

▲ 네팔의 대표적 아동인권단체인 CWIN 중앙사무실 전경



어른들은 나의 미래를 빼앗을 권리가 없어요!

아동노동과 소녀 인신매매에 대한 국내외의 비난이 빗발치자 네팔정부는 지난해 12월 2014년까지 네팔 내에서 아동노동을 전면 뿌리뽑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정부 계획에 대해 아동인권단체들은 한결같이 마오이스트들과의 분쟁이 끝나지 않는 한 아동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인구의 70%가 농업인구인 네팔 사회에서 분쟁은 많은 네팔인들을 그들의 삶의 터전인 땅에서 내몰고 빠져나올 수 없는 가난의 수렁으로 그들을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아동노동자 권익보호센터(CWIN)의 쿠마리는 아이들과 가족의 생존을 고려했을 때 당장 네팔에서 아동노동을 완전히 뿌리 뽑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선적으로 위험한 사업장에서 아동노동을 금지시키고, 아동노동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빠른 분쟁의 종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난 11월 20일 국제아동의 날을 맞아 열린 기념식에 참석한 네팔의 한 어린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어른들은 정치적 힘을 얻기 위해 싸우고 있을 뿐인데, 왜 그속에서 우리들의 미래가 파괴돼야 하는 것인가요? 어른들이 우리에게 안전한 미래를 제공할 수 없다면, 어른들은 우리의 권리를 파괴할 권리가 없습니다." 어린아이들도 알고 있는 해답을 어른들만 모르는 세상에서, 보다 좋은 세상을 위해서라는 미명 하에 수행되고 있는 어른들의 싸움은 가난과 더불어 네팔 아이들의 미래를 삼켜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