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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정치가 왜곡한 돌봄 부정의

-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논쟁에 부쳐

전례 없는 저출생 쇼크 속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임금 ‘월 38만~76만원 수준’과 ‘월 100만원‘ 사이를 오갔던 논란은 낯부끄러운 한국사회의 차별 종합세트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소멸’에 대한 정치권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방식은 여러 면에서 저출생 대응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제안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저출생 쇼크에 “모든 것을 다 바꾸겠다”며 절박한 심정을 호소했고, 최저임금 없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법안(「가사근로자법」개정안)을 꺼내든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다 소용없었다”며 파격을 외친다. 게다가 과감하고 확실한 저출산 대책을 주문했던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섰다. 물론 현재 구체화되고 있는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사업’은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고용허가제(E-9 비자)를 통해 시행한다는 방침이어서 ‘값싼 노동력 활용’ 방향과는 선을 긋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뿌리 깊은 성차별과 인종주의로부터, 출산파업과 돌봄공백을 경유한 인구절벽 위기로부터 성큼 멀어지게 될까. ‘어떻게든’ 멀어지는 것이 방향이 될 수는 없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은 비단 여성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돌봄으로 사회적 가치를 전환시키는데 계속 실패해 온 한국사회 노동․젠더체제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사회 돌봄 사슬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돌봄노동을 가족 내 구성원이 아닌 제3자에게 외주화하는 전형 중 하나다. 돌봄노동이 보다 가난한 국가 출신의 이주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상을 미국의 사회학자 혹실드는 '전지구적 돌봄 사슬'(Global Care Chain)로 규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일본 사회학자 오가와 레이코는 동아시아의 경우 지역 및 국내의 젠더, 계급, 민족에 따라 돌봄 사슬이 구성되는 독자적인 전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짚으며, 이를 '지역적 돌봄 사슬'(Regional Care Chain)로 바라본다. 이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논쟁을 현 정권이나 몇몇 정치인들의 저열한 수준을 지적하는데 멈추지 않아야 할 단초를 준다. 한국사회 역시 돌봄공백의 시기마다 주변화된 특정 여성 집단에게 돌봄노동이 외주화되었지만, 성별분업체계는 고착되거나 새로운 형태로 강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국가가 농촌-도시 격차, 빈곤층-중산층 계층화, 노동시장-가족 갈등 사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1960~70년대 산업화 시기 빈곤한 농촌 지역의 저연령․․비혼 여성들이 담당했던 ‘식모’는 한국사회에서 초기 외주화된 가사노동자였다. 이 여성들이 공장 노동력으로 유인되고 기혼여성들의 취업 역시 계속 증가하면서 1980년대부터 돌봄노동의 수요는 ‘파출부’라 불린 중년의 도시 빈곤층 기혼여성의 시간제 노동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비공식 가사노동자의 존재를 통해 여성은 유급노동 시장에 참여하고, 남성은 가족 내 성별노동분업 압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는 ‘돌봄의 젠더화’가 구조적으로 자리 잡는다. 더구나 1990년대는 한국사회가 복지국가를 채 경험해보기도 전에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외환위기를 겪은 때다. 여성들은 돌봄을 포함한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로 대거 진입함과 동시에 불안정해진 가족 내에서 증가한 재생산노동을 이중으로 감당해야 했다. 경제위기는 ‘가족위기’가 되었고, 국가의 복지 및 사회서비스 체계가 지연되면서 돌봄이 다시금 가족화된 것이다.

 

일-가정 양립, 돌봄의 외주화가 여성의 보편적인 욕구인가

무엇보다 1990년대는 이주여성의 이동과 함께 돌봄노동이 ‘외국인’에게 외주화된 형태로 확장된 시기이기도 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증가한 결혼이주여성은 가족경제 내에서, 재중동포는 비공식 돌봄시장 내에 자리를 잡아갔다. 2002년 재외동포 취업관리제와 2007년 방문취업제 시행, 2010년 재외동포 취업 제한 완화까지 돌봄서비스 시장에 ‘의사소통 가능’한 ‘조선족 이모’들이 대거 자리한 배경에는 비자 정책을 통해 외국인 인력을 수급․배치․관리해온 정부 정책이 있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보육 및 노인 돌봄에 대한 국가 차원의 사회서비스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돌봄시장에서 보조적인 노동력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내국인․빈곤층․중장년 여성들은 저임금 돌봄시장에, 같은 민족이지만 내국인과 차등화된 ‘외국인’으로서 재중동포는 보다 더 주변화된 돌봄시장에 배치된다. 그리고 대다수의 내국인 여성들이 이들의 돌봄노동에 의존하며 여성 내부의 ‘계층화’ 또한 재구성되고 구조화되었다.

돌봄 사슬이 구축되어온 과정은 정치권이 주도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이 저출생 대응 및 여성의 경력단절 방지를 위한 ‘사회적 요구’로 탈바꿈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게 해준다. 일-가정 ‘양립’은 언제나 도시 거주, 고소득․중산층, 이성애 핵가족, 내국인이라는 특권화된 소수 집단이 실현할 수 있는 이상에 가까웠다. 하지만 저출생 대응 논리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 성평등 정책을 대체해온 역사, 이분법적인 공사 영역의 구분 속에서 작동하는 일-가정 ‘양립’ 프레임의 한계 속에서 반복되어왔다. 일-가정 양립을 모든 여성의 보편적인 문제로, 타자화된 돌봄노동을 모든 사회구성원의 보편적인 욕구로 등장시키려는 시도를 이제는 중단시켜야 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노동시장 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제고 및 지위 향상이라는 ‘성평등 가치’와 성별분업체제의 재생산 및 강화라는 ‘돌봄 부정의’를 동시에 옹호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이게 할 뿐이다.

 

돌봄의 가치가 중심이 될 수 있는가

젠더, 지역, 계급, 민족에 따라 당대의 가장 취약한 여성 집단을 비공식 돌봄시장에 끊임없이 유입시키면서 돌봄을 전가하거나 배분해올 수 있었던 이유에는 돌봄을 ‘가치 없는 노동’으로 취급해온 돌봄 부정의가 있다. 이러한 돌봄 부정의가 ‘돌봄공백’으로 가시화되는 과정은 사회구성원들이 ‘가치 없는’ 노동과 지위로부터 탈주하거나 회피하도록 하는 사회적 추동이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무급이건 유급이건,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건 노동시장에서 이루어지건,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생산중심 자본주의 하에서 돌봄노동은 비공식 영역으로 주변화된 채 언제나 집요한 저평가 속에 놓여왔다.

이러한 조건을 변화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앞서 투쟁한 주체들은 가사돌봄서비스 노동자들이었다. 한국사회에서 그동안 부불 혹은 저임금으로 가치가 매겨지고 평가절하된 돌봄노동을 전면화하며, 돌봄노동을 집에서 누구나 하는 ‘별 것 아닌’ 일이 아니라 사회유지와 재생산에 필수적인 ‘노동’으로 만들어갔다. 돌봄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중적 인식, 국가가 권리 보장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조직해낸 역동적인 과정이기도 했다. 2021년에서야 제정된 「가사근로자법」은 노동시장 내 공식-비공식 돌봄노동의 간극을 온전히 없애지는 못했으나, 69년 동안 근로기준법이 배제해왔던 가사노동자의 법적 ‘노동자’ 지위를 확보한 결정적 계기였다. 표준화된 고용관계는 가사노동자를 노동법의 적용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논리를 약화시키는 주요한 기제이자, 돌봄노동이 저평가되어온 구조 속에서 돌봄노동자가 자신의 일에 대한 가치를 의미화하고 정치적 주체로서 나서는 토대다. 이러한 기본적인 권리 토대가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돌봄노동자에게도 필요하다는 감각이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 삭감되는 것은 외국인의 임금이나 권리에 국한되지 않으며, 지금까지 변화시켜 온 필수노동으로서의 돌봄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돌봄의 가치를 후퇴시키려는 정치에 맞서

사실 먼 과거까지 거슬러 갈 필요도 없었을지 모른다. ‘돌봄정의’, ‘돌봄국가’, ‘돌봄사회’로의 전환 요구로 뒤덮였던 지난 3년 코로나 팬데믹을 떠올려보자. 돌봄은 사회재생산에 필수이며, 돌봄의 순환을 가로막는 장시간․저임금․불안정 노동구조와 젠더불평등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말 그대로 폭발한 시기였다. 총체적인 사회재생산의 실패가 우리가 놓인 결과라면, 지속가능한 사회체제는 돌봄의 가치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재편하고 제도화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놓을 수 없다. 그 질문을 지운 채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몫으로 떠넘기려는 지금의 정치와 단절한, 사회적 요구를 재조직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현재 윤석열 정부가 사회적 문제제기가 누적되어온 과정과 구조를 삭제하면서 돌봄노동자들이 쌓아올린 돌봄의 가치를 퇴색시키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올해 발표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정책 과제, 선진복지 국가 전략에서는 ‘성평등’이라는 단어 자체가 실종됐다. ‘주 69시간’ 노동시간 개편 시도는 노동환경 개선이라는 명목 하에 노동자에게서 자기돌봄 권리조차 빼앗는다. ‘고용허가제 2.0’은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는 직종을 확대하며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제한된 저임금․불안정 일자리에 외국인 인력을 배치하려 한다. 하지만 정주의 권리는 차단한 채로 폭력적인 미등록 합동단속으로 ‘법치’를 실현한다고 주장한다. 구조적 차별을 부인하는 대통령의 정치 속에서 돌봄이 핵심인 저출생․노동․복지 전략이 성․인종차별, 젠더불평등, 돌봄 부정의가 지워진 가운데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2021년 「가사노동자법」의 제정과 가사노동자의 권리보장 운동의 역사 한 가운데 있었던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는 가사노동자 문제를 “여성운동의 문제이자 이주노동자의 문제, 가사에 대한 홀대 인식이 모두 복합적으로 엮인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돌봄노동이 ‘여성’ 혹은 ‘이주여성’의 무가치한 노동으로 평가절하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일 테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사회에서 돌봄이 사회적으로 조직될 때 기존 제도화의 한계를 성찰하며 돌봄을 사회변혁의 원리로 만들어갈 필요를 제기한 것이기도 하다. 돌봄이 관계를 생산하고 유지하는 원리가 되어야 한다고 요구해온 이들이 이미 돌봄의 의미를 재구성하면서 싸워온 자리에서부터, 함께 사회전환의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