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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베트남? 입 다물어!"

고엽제 전우회 한겨레 난동, 베트남 캠페인 위축 우려


27일 오후 7시경 만리동 한겨레 사옥 앞, 길바닥은 온통 짓이겨진 한겨레신문과 구독료 청구 지로용지로 뒤 덮혀 있었다. "베트콩이 양민이면 한겨레 기자는 빨갱이다"는 붉은 글씨의 피켓이 눈에 확 들어왔다. 전투복 차림의 중년 사내들이 얼굴이 벌건 채 곳곳에서 경찰을 상대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30만 명의 참전이 잘못된 보도로 물거품이 됐어", "몸 아파도 보상도 못 받고 있는데 양민학살 했다고 까발리면 어쩌겠다는 게야", "그렇게 써대지 못하게 정부하구 국방부가 나서서 자제를 시켰어야지, 국가명예에도 문제가 있다구"

무전기를 든 경찰 지휘관들끼리 말을 주고받았다. "술들을 원체 마셨어요. 그러니 어쩔 수가 있었어야지", "길바닥에 앉아서 계속 마시더라구"

7시 50분, 길이 뚫리면서 신문수송트럭이 사옥에서 빠져 나왔다. 언뜻 보이는 1면 기사 제목은 '고엽제 전우회, 본사서 난동'.

남아있던 몇몇 시위대가 전경버스로 연행되고, 경찰대열 일부가 철수되자 드러난 한겨레 사옥 곳곳에선 '힘의 과시'로 인한 상처가 입을 벌렸다.

마포서에 낸 고엽제전우회의 집회신고에는 원래 '80명'만이 집회를 할 것으로 신고되어 있었다. 하지만 "저기 고개 위부터 큰길가까지 꽉 차게 와서는 군가를 부르더라구. 2천명은 됐을거야"라며 경비원이 유리가루를 털어 내는 수위실은 뼈대만이 남아 있었다. 주차장엔 유리가 박살나고 지붕과 문이 찌그러진 차량들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서있었고, 그 앞에서 불에 탄 한겨레신문을 쓸어내는 작업이 시작됐다. 오후 2시경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고엽제 후유의증 전우회(회장 양상규)'의 시위는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전쟁의 광기를 느꼈다"라고 현장에 있던 한 인권단체 활동가는 몸서리쳤다. 꽤 규모있는 베트남 문화제를 준비중인 그는 똑같은 일이 공연장에서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베트남전에 관한 기사를 썼던 한겨레 21 기자는 급히 가족들을 대피시켰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까지처럼 과감한 어조로 베트남 문제를 발언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어느 정부든 '용사'들에게 '정의의 전쟁'을 독려하면서 전쟁터로 내몬다. '정의의 전쟁'이라는 허구는 국가가 전쟁시대의 가장 비참한 피해자들이 그 상실감과 죄의식을 견뎌 나갈 수 있도록 그들에게 부여하는 '신앙'이다. 그들은 그 '신앙'에 매달리며 살아간다.

물론 그들에게도 그런 '신앙'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기 위한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있다. 그러나 이날 벌어진 상황은 분명 언론의 횡포에 맞서는 약자의 자기 표현도 아니었거니와 당당한 주장의 개진도 아니었다. '냉전시대의 주인공'은 '정의의 전쟁'을 비웃는 '방자한 언론'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것은 테러였다. <한겨레>에 대한 테러가 아니라 오랜 냉전시대를 통해 죽은 듯 엎드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약자들의 가녀린 목소리에 대한 테러에 지나지 않았다.

고엽제 전우회의 폭력은 바로 약자의 희망인 언론 자유의 싱그러운 나무에 뿌려진 '고엽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