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벗, 서 로벨또 신부 추도식
국화 한 송이를 놓으려 줄지어선 이들 앞에 한 외국인의 영정이 놓여 있었다. 고 서 로벨또 신부의 영정이었다. 31일 오전 10시 명동성당, 불과 몇 주전 매향리 철책 앞에서 함께 어깨를 걸었던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믿기 어려운 장례식이 진행되었다. 장례미사 후 성당 들머리,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시 모여 '민중의 벗, 고 서 로벨또 신부 추도식'을 가졌다. 생전에 고인이 자주 찾았던 매향리의 주민들은 관광버스 4대를 타고 와 고인이 매향리 주민들의 든든한 벗이었음을 얘기했다.
문정현 신부(불평등한 SOFA 개정 국민행동 상임대표)는 "미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다 한국 전경에게 붙들려 내동댕이쳐지고, 매향리에 못 들어가게 막자 논두렁에서 전경과 엉겨붙어 '너죽고, 나죽자'며 끝내 원천봉쇄를 뚫고 나타난 당신을 기억한다"며 "당신의 나라 미국의 불의를 깨뜨리겠다"고 조사를 대신했다.
서경원 씨는 "당신은 70년대부터 군사독재 타도 투쟁에 한국민중과 함께 해왔다"고 회고했다. 12년 동안 고인과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한 충남 당진에 사는 정영업 씨는 "신부님은 84년 외방선교회 지부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미국의 정체를 폭로하는데 나섰다"고 말했다. 그 이전에는 드러나지 않게 음지에서 행동했단다.
장례미사와 추도식에 줄곧 참여한 회사원 임윤희 씨는 "30일 매향리에 갔다가 신부님이 돌아가신 것을 알았다. 주민들에게 그 분 이야기를 듣고 망치로 얻어맞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며 "신부님의 뜻을 좀 더 알고 실천하기 위해, 그분의 삶을 더 잘 알기 위해 추도식에 왔다"고 밝혔다. 임씨는 추도식 막바지에는 사회자가 외치는 구호를 자연스럽게 따라 외치기도 했다.
미대사관으로 가는 차안에서 전만규 위원장(매향리 미공군 사격장 철폐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은 "신부님은 매향리 주민들에게 구원자 같은 분이셨다. 매향리에 온 건 몇 번 안되지만 항상 소탈한 웃음으로 우리들을 편안하게 했고, 마음의 평안을 주셨다"고 회고했다. 전 위원장은 "신부님의 유지를 받드는 길은 매향리 사격장을 철폐하는 것"이라고 다짐했다.
서 로벨또 신부가 8월에 들어가고자 계획했던 매향리 농섬에 진입했던 최종수 신부는 "논두렁이로, 개펄로, 세 시간을 달려오던 당신, 당신이 태극기를 꽂고자 했던 농섬에 당신의 정의와 평화가 깃발이 되어 산처럼 일어섰습니다"라고 그의 뜻을 기렸다.
고 서 로벨토 신부는 1935년 미국에서 태어나 1964년 골로반 외방선교를 위해 한국에 파견되어 평생을 한국사람과 함께 했다. 1965년 전남 소록도, 함평에서 사제활동을 시작한 고인은 1984년부터 1988년까지 서울 골롬반 외방선교회 본부 한국지부장을 지내고, 1988년부터 작년까지 충남 당진에서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특히 올해는 지난 29일 직장암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매향리 미군 국제폭격장 폐쇄 범국민대책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