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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매향리에 처음 가보았다


그 많던 집회에도 가보지 못한 매향리, 기사로만 보던 매향리, 그 매향리에 집회 없는 날을 골라서 다녀오라는 말을 듣고 6일 정오 매향리를 찾았다. 여느 농촌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벼가 익어 가는 들판을 한가로이 훑던 눈이 어울리지 않게 늘어선 철조망에 닿는 순간 번쩍 뜨인다. 폭격장이다! 버스에서 내려 '미군 나뻐!'라는 글귀가 쓰인 매향리 주민 대책위원회(위원장 전만규, 주민 대책위) 사무소로 향했다.

"황색기가 걸렸어. 좀 있다 쏴대겠지" 전만규 위원장이 옥상에서 고추를 말리다가 맞이한다. "종합 대책 후에도 달라진 게 없어. 여전히 비행기는 떠다니고, 기총 사격도 계속하고" 지난 8월 18일 국방부는 종합 대책을 발표하고 육상 사격장에 대한 기총 사격을 중지하겠다고 했다. 그 말은 해상에 대한 사격은 계속한다는 거였다.

잠시 후 2대의 비행기가 공중을 선회하는가 싶더니, 매향리 코 앞의 작은 섬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무인도, 농섬이다. "저 섬에 하도 총을 많이 쏴대서 크기가 3분의 1로 줄었다니까" 미군이 유일하게 인정한 매향리 희생자도 농섬 근처에서 사망했다. 임신 중인 아낙이었다. 주민 대책위는 지금까지 폭격으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사망한 사람이 12명이라고 밝힌다.

전만규 씨를 따라 들어간 사무소. 이상하게도 문이 아닌 옆 창문으로 들어간다. "경찰이 건물 주인에게 계고장을 보내 정문을 막아버렸어" 원래 창고 용도였던 건물을 불법전용을 했다는 거다. 6년 동안 쓰이던 사무소가 폐쇄된 지 사흘 째. "경찰이나 미군이나 다른 게 없지?" 라는 그의 물음 속엔 서글픔이 고여 있다.

"8월 말, 비가 많이 와서 폭격장 벼가 모조리 쓰러졌거든요. 그래도 땅 주인이 일으키러 들어가질 못해요." "미군도 국방부도 믿지 못해요. 13년 동안 '해준다, 해준다' 하고 실제로 해준 게 없거든요." 국방부의 종합 대책에 대한 불만은 연속극처럼 이어진다. "당국은 소음문제만 거론해요. 본질적인 것은 그게 아닌데." 사격장이 폐쇄되고, 농민들과 어부들이 땅과 어장을 찾을 때야 비로소 매향리의 평화가 온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에 어느 덧 해는 떨어지고, 밀레니엄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는 뉴스도 끝났다.

갑자기 천둥 치는 소리가 들린다. "꽈과과-광-, 우우우-웅" 밤 10시에 난 소리다. "F-16이구나" 엔진 소리만으로 비행기를 구별할 줄 아나보다. "반드시 저 사격장은 없애버려야 해. 우리 애들을 위해서라도" 전 씨의 아들 국이가 갯벌일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다 소파에 잠들어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국이가 잠이 깨어 "아빠! 이상한 꿈을 꿨어요. 우리 마을에 미군들이 들어와서 전쟁놀이를 했어요. 근데 왜 딴 데도 아니고 우리 마을일까 꿈속에서도 이상했어요"라고 재잘대지 않을까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