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영 작품으로 선정한 배경 그리고 그 역사
98년 당시는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정권도 바뀌어 ‘인권’이라는 말이 홍보용일지언정 공공연히 언급되었지만 우리의 초조함은 여전했다. 관계당국의 사찰도 결코 없어지지 않았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영화제를 지키기 위한 진지를 확실히 쌓아야 했다. 먼저 우수한 작품, 다수의 상영작으로 방어막을 쳤다.
제3세계 진보영화의 모범적 사례인 <칠레전투>가 당시의 대표작. 작품은 칠레의 아옌데 민중연합정권의 개혁과 노동자․농민들의 자생적 사회주의 실험을 담은 기록영화이다. <칠레전투>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칠레전투>, 잊을 수 없는 감동
모두 3부로 이루어진 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많은 관객들이 꼬박 3일을 영화제가 열렸던 동국대 학술문화회관으로 ‘출근’했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인권영화제가 ‘환생’시킨 아옌데 대통령과 그의 인민들은 영화제 역사상 가장 인기를 누린 배우들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또다시 보고 싶어하는 ‘컬트’가 되어버린 작품. 20여 년 후 <칠레전투>가 칠레에서 상영되는 과정을 담은 <칠레, 지울 수 없는 기억>은 <칠레전투>를 완결시키는 에필로그. <칠레전투>의 제작과정을 담고 있기도 해 <칠레전투>의 메이킹 필름처럼 감상할 수도 있다.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아이티 투쟁의 현대사를 담은 <레지스탕스>도 98년 대표작이다. 아이티인들은 오랜 착취와 탄압을 견뎌온 사람들일 뿐 아니라 세계 역사상 유일하게 노예 혁명을 성공시키고 최초의 흑인 공화국을 세운 진보운동의 전통을 갖고 있기도 하다. 아이티의 노예 혁명 정신을 되새기면서 90년 이후 아이티의 정치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작품.
해방신학자이며 민주지도자인 전직 대통령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와 그를 지지하고 함께 일한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 앙트완 이즈메리의 투쟁동선이 작품의 큰 축이다. 감독은 이들의 목소리를 앞세워 미국의 제국주의적 만행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즈메리가 암살당하는 현장을 담아 충격을 더해준 이 작품 역시 치열한 역사의 현장을 누비는 카메라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99년 개막작인 <모든 권력을 민중에게>를 통해 미국의 양심수 무미아 아부자말이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미국의 좌파 정치 그룹인 ‘흑표범당’의 흥망성쇄를 기록한 작품. 영화는 무미아를 비롯해 많은 진보운동가들이 감옥에서 사형을 눈앞에 두고 옥살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짐작할 수 있듯이 이들은 모두 흑인이거나 미국 원주민들이다. 99년 영화제에서는 미국 정부에 그의 조속한 석방을 탄원하는 ‘관객엽서 보내기 운동’을 아울러 진행했다.
50년대 매카시의 ‘블랙리스트’로 인해 고초를 당한 흑인배우들의 역사 <모략 당한 나의 이름> 또한 미국의 인종차별이 얼마나 극심한지 보여준다. 이 영화는 미국의 전설적인 배우이자 정치운동가인 폴 로베슨의 불운한 일생을 들려주기도 한다. 영화의 제목을 그의 노래에서 따왔다.
2000년의 대표작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볼리비아 일기>를 다시 상영하게 된 것 역시 이번 영화제의 즐거움이다. 당시 이대 정문 앞 광장에서 상영되었는데, 그 광장을 꽉 채우고도 모자랄 정도였다. 인권영화제 역사상 제일 많은 관객동원이었다. 작품은 게바라 생애 마지막인 ‘볼리비아 빨치산 일지’를 영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뉴멕시코 광산파업을 소재로 한 드라마 <대지의 소금> 역시 ‘인권영화제의 명화’에 값하는 귀한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