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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고등법원, '증명할 수 없다'며 구치소 폭력책임 기회 놓쳐

손배소송, '수감자 가족인계의무 소홀히 한 점'만 책임물어


'구치소 측의 성명불상자에게 상해를 입었다'는 주장은 배척하고, '건강상태가 나쁜 수감자를 보호자에게 인계하지 않아 수감자가 가족의 간호권을 박탈'한 것에만 책임을 묻는 판결이 나왔음이 뒤늦게 확인됐다.

지난 11일 서울고법 민사합의8부(재판장 채영수)는 지난 98년 성동구치소에서 사망한 박 모씨의 유가족들이 낸 손배소송 선고공판에서 "수감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수감자를 가족들에게 인계해야할 의무를 소홀히 해, 가족들의 간호를 받다가 사망할 수 있는 기회마저 상실했다"며 "국가는 유가족에게 4천7백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박씨 유가족들이 1심 때부터 "구치소 직원들이 박씨에게 폭행을 가해 박씨가 사망에까지 이르렀다"고 주장하며 당시 함께 재소하던 양모씨 등을 증인으로 내세웠으나 1·2심 재판부는 "이를 증명할 수 없다"며 구치소 측에 책임을 물어 폭력행위에 제동을 걸 기회를 놓친 것으로 보인다.

유가족들은 △정신질환자로 분류된 과정이 석연치 않은 점 △수감생활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구치소 직원들이 박 씨를 구타했다는 동료재소자의 증언이 있는 점 △신원과 주소가 분명한 박 씨를 직원의 폭행사실을 숨기기 위해 무연고자로 조작했다는 점 등을 들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주장했으나, 법원은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배척한 것이다.

박 씨 유가족은 박 씨가 지난 97년 벌금 70만원을 납부하지 못해 성동구치소에 노역 유치됐다가 57일 후 뇌경막하혈종 등으로 사망하자 98년에 국가를 상대로 손배소송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