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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정귀순의 인권이야기

어느 사형수 이야기


"사형선고를 받던 순간 나는 몸을 떨며 많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이젠 내가 정말 죽는구나 생각하니 어머니 얼굴부터 떠오르더군요. …그러나 내가 죽는 것만이 유가족에게 위로가 되는 유일한 길임을 느끼며 마음정리를 해왔습니다. 지금도 어머니, 처자에게 필을 들 때면 이 편지가 마지막인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곤 합니다.…"

이것은 지난 96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페스카마호 선상반란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6년째 부산구치소에 수감 중인 중국동포 사형수 전재천 씨가 보내온 편지의 일부다.

피해자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11명의 선원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그는 죽어 마땅할 것이다. 이처럼 살인한 자에 대해 살인으로 그 죄를 묻는 법의 심판은 구약성서를 비롯해 '눈에 는 눈, 이에는 이'로 알려진 고대 함무라비법전에서부터 그 역사를 찾을 수 있다. 동시에 비록 살인의 죄를 엄히 다스리는 것은 필요하나, 결과가 인간을 또 살인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오랜 역사가 있다. 한국, 미국과 달리 이미 사형제도를 폐지한 나라도 98개국에 이른다.

이들 나라에서 사형제를 폐지한 첫째 이유는 사형제도가 범죄억제효과가 없다는 점. 둘째 사형은 법적인 오류에 의해 무고한 희생자를 낳을 수 있으며 그것이 오류인 경우 다시 사람을 살려낼 수 없다는 점이다. 셋째는 사형제가 정치적 반대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에서도 사형제도의 폐지가 적극 논의되기 시작해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사형수 전재천 씨가 사형제도가 폐지돼 목숨을 구하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사형제도와 더불어 페스카마호 선상반란사건은 우리에게 진지한 반성을 촉구했다. 가난한 동포에 대한 멸시와 차별이 빚은 비극이며 고질적인 선상폭력이 빚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91년 국정감사 때 선상폭력 관련 보고에 의하면 90년부터 불과 1년 반 새 해상사고로 인한 사망 실종자가 5백명을 넘어섰다. 당시 '현대판 노예선'이라 불리며 대두됐던 선상폭력문제가 한동안 잠잠해 선원들의 처지가 개선됐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페스카마호 사건은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확인시켰다. 변한 게 있다면 살인적 노동조건 때문에 한국인들은 꺼려하는 자리에 가난한 인도네시아인들이나 중국동포들이 들어와 있다는 것. 동포이긴 하지만, 중국에서 태어나 자란 전재천 씨는 군사문화가 곳곳에 스민 한국사회의 폭력을, 혹독한 선상폭력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며, 가난한 동포를 개처럼 대하는 멸시를 참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의 안타까운 삶을 잘 알고 있는 고향 중국 길림성 휘남현의 2천여 학생과 교사들이 지난 광복절에 김대중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긍정적인 답변은 받지 못했다. 앞으로도 가난한 이주노동자들과 동포들에 대한 멸시와 천대, 그리고 선상폭력이 근절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제2, 3의 페스카마호 사건에 직면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전재천 씨를 만나러 부산구치소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