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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17일째 ‘장애인이동권’ 쟁취 단식 농성중인 최재호 씨를 만나…

“성과 못 내더라도 후회 없이 싸울 생각”


국가인권위 점거 단식농성 17일째, 최재호(38·지체장애 3급·장애인실업자종합지원센터) 씨는 걷기가 힘들만큼 몸이 쇠약해졌다. 처음 9명의 동료들과 함께 단식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박경석 대표와 단둘이 남아 있다.

이번 농성의 직접적 계기가 됐던 '발산역 리프트추락사고'에 대해 서울시측은 여전히 공식적인 사과를 거부하고 있다. '사고원인이 사망한 장애인의 부주의'라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속내는 '책임을 인정할 경우 뒤따를 문제'에 대한 고려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서울시의 완강한 태도는 농성자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앞이 안 보이는 게 답답하기도 해요. 메아리 없는 아우성이니까요." 그러나 서울시의 무반응이 농성자들의 결의를 꺾지는 못하고 있다. "처음엔 좋은 결과를 내고 나가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성과를 못 내더라도 끝까지 할 생각입니다. 추후 이 투쟁에 대한 '평가'는 평가대로 진행하되, 지금은 단식투쟁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최 씨의 결의에선 자못 '여유'가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서울시의 사과를 받아야만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그날그날 최선을 다한다면 성과가 없더라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정당하다면 다 우리편이 되지 않겠어요? 우리가 다시 투쟁에 나설 때 그들은 또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그는 '미래를 위한 준비'로써 이번 투쟁을 받아들이는 듯 했다.

단식을 진행하는 동안, 최 씨에겐 개인적인 '사건'도 하나 벌어졌다. 단식 15일째였던 26일은 아버지의 생신이었다. 그는 하루 전에 미리 선물을 들고 집에 다녀왔다. "단식한다고 말씀드리니까 어머니가 '죽을 먹으라'며 1시간 동안 저와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부모님께, '나 자신과의 약속이니까 평생 후회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설득했습니다. 괜히 어머님 가슴에 멍을 지운 것 같아 마음 아프지만 가족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나니까 누구보다 이 일에 대해 자신감이 생깁니다."

단식농성까지 진행할 만큼, 이동권 문제가 심각하냐는 질문에 최 씨는 "장애인에게 이동권과 접근권은 교육, 노동, 사회통합 등에 앞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입니다. 좋은 시설만 만들면 뭐합니까. 시설이나 공공기관까지 갈 수가 없는데…. 이 문제는 사실 '배려'의 문제입니다. 조금만 신경쓰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만들자면 어차피 돈이 드는데, 이왕이면 장애인이 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부나 비장애인들 모두 '장애인과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답했다.

1년 사이 두 차례나 경찰서 신세를 질 정도로 최 씨는 빠짐없이 이동권투쟁에 참석해왔다고 한다. "당당한 장애인활동가로 서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그는 이미 전투적인 장애인활동가였다. 이제 그가 서둘러 단식을 끝내고 편한 잠을 청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서울시가 '책임'만 인정한다면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