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경제사범의 사면을 위한 포장지가 된 느낌이다."
지난해 12월 30일 발표된 특별사면의 대상자인 강위원 씨(제5기 한총련 의장)는 이번 사면이 "달갑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법무부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고, TV뉴스에서 자기 얼굴이 나오는 것을 보고 복권사실을 알게 됐다는 강 씨는 "사면권 남용이 문제시 돼온 상황에서 신중하게 논의·결정됐어야 할 사면이 정권 말 선심용으로 졸속·기습적으로 집행된 것 아니냐"며 "원칙 없는 면죄부 사면으로 사면에 대한 국민적 정서만 나빠지고 오히려 새 정부의 양심수 사면에 악조건만 형성했다"고 한숨지었다.
정부의 이번 특별사면·감형 및 복권 조치에 포함된 122명 중에는 옥중 양심수는 단 한 명도 포함돼있지 않는 반면, 각종 부패와 비리에 연루된 전 고위 공직자와 기업인등이 다수 포함돼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 말 선심", "명목 없는 사면", "반부패 공염불" 등 이번 사면에 대한 각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회장은 "7십여 명의 양심수가 옥에 있고 정치수배자가 3백여 명인데 단 한 명의 구속자 석방도 없었다는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부패국민연대 김거성 사무총장은 "부패와 비리를 저지르더라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그를 비호하거나 사면하는 행위는 부정비리와 동일한 범죄행위"라며 "현정권 내에서 부패를 저지른 사람을 부패정권이 사면해 주는 것은 우리 국민의 법 감정을 악화시키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참여연대도 31일 성명을 내어 "사면권도 법치주의 테두리 내에서 행사되어야 한"며사면권 행사의 적정한 기준과 절차적 정당성을 찾기 위한 '사면심사위원회'의 설치를 주장했다.
조양호 전 대한항공 회장, 김선홍 전 기아그룹 회장,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등 이번 사면명단에 오른 인물들의 범죄는 화려하다. IMF 환란주범, 세풍사건, 대우 경영비리사건 등 대형비리 연루자에다 판결문의 잉크도 채 마르지 않았을 10일만에 사면된 고위관리도 포함돼 있다. 이 지경이고 보면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관용을 통한 민주주의 지향'이나 '사회정의와 현실의 법이 충돌하여 빚은 잘못을 돌이키고 법의 경직성을 완화하려는 노력'이라는 사면의 취지는 온데간데없다.
이에 민주노총이 낸 새해 첫 보도자료는 '김대중 정권 5년 동안 구속된 노동자가 892명이며, 이틀에 한 명 꼴로 노동운동과 관련해 노동자를 구속해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해 33명의 노동자가 수감중이며 30여명이 수배상태에 있다. "국가발전과 경제 번영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는 정부의 사면 이유가 궁색하기만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