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긴급진단] 위기의 국가인권위원회(下)

인권위 전면쇄신, 위원장이 결단할 때!

"국가인권기구 공대위의 상임집행위원장으로 입법투쟁을 3년 간 이끌었을 뿐 아니라 인권단체의 추천과 국회의 선출, 그리고 대통령의 임명이라는 3중, 4중의 국민적 대표성과 정통성을 가진 인권위원으로서 나의 양심과 양식으로는 도저히 이처럼 입법정신과 거리가 멀어지고 실질적으로 관료제화 한 인권위(그것도 위원장의 권위의식에 의해 부채질되고 위원들의 무책임성에 의해 관철되고 있음)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13일 곽노현 교수는 '인권위원 사임의 변'에서 △위원장의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제적인 운영철학 △(상임)위원 배제형 사무처중심 운영구조 △전략과 기획 마인드가 결여된 업무수행 방식 등 그 동안 인권위의 폐쇄성으로 인해 공론화되지 못했던 문제들을 고발했다. 하지만 인권위에 대한 고민의 정도와 이해득실 여부에 따라 인권단체는 '분주', 인권위원은 '관망', 사무처는 '함구'의 형상을 그리고 있는 가운데, 곽 교수의 문제제기는 여전히 공론화되지 않고 있다.


인권단체, 대책 논의 분주

먼저 곽 교수가 인권위원직을 사임한 데 대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발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인권단체들이다.

새사회연대 이창수 대표는 곽 교수의 사임에 대해 "한 인권위원으로서의 좌절이자 인권운동 차원에서 공대위 질서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한다"라고 진단했다. 이 대표가 말하는 '공대위 질서의 완전한 단절'이란 인권위 설립 투쟁을 했던 인권단체들의 목소리를 인권위에서 대변할 수 있는 통로가 아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뜻한다.

곽 교수 이외에 정강자 위원, 최영애 사무총장, 남규선 공보담당관 등도 과거 공대위 시절 인권위 설립투쟁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곽 교수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지난 1년 간 인권위의 운영 등과 관련해 인권단체와 적극적으로 협의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현 인권위가 과거 공대위 투쟁의 성과를 이어받고 있다'는 인권위 스스로의 주장은 곽 교수의 사임을 계기로 도덕적 명분을 상실했다.

이 대표는 또 "현 인권위는 기대할 게 별로 없다"라며, 「국가인권위 전면 쇄신을 요구하는 인권시민사회단체 모임」을 제안했다. 이 대표는 또 "총체적 개혁을 위해 인권위 내 새로운 주체가 형성돼야 한다"며, 민간출신 직원들의 결단을 촉구했다. 이제 위원장의 보필로는 인권위를 바로 세울 수 없다는 판단이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무엇보다 인권위의 책임있는 답변을 촉구했다. 오 국장은 "곽 교수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인권위는 '그렇다', '아니다', 아니면 '그런 비판을 수용해서 고치겠다'는 등의 답이 없다"며, "이는 책임있는 기관의 태도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인권위가 현안을 피해가고 문제제기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 "다른 것은 따져볼 수준도 안 된다"라고 힐난했다.

오 국장은 인권위의 쇄신책에 대해 "자기들 업무와 행정을 공개하는 것은 기본"이고, "인권지킴이로서 인권현장에서 뛰어다니는 인권위원, 사무총장, 인권위 직원들을 봤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끊임없이 인권현장과 호흡하고 인권현장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인권위라면 인권단체는 물론 언론과 시민들도 언제든 환호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 오 국장의 충고다.


위원회는 관망·함구

인권단체의 발빠른 논의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생산적인 토론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데에는 인권위원들과 사무처, 무엇보다 위원장의 책임이 크다. 먼저 유현 상임위원은 전화통화에서 "곽 위원의 말에 동감한다", "내부적인 문제이지만 기본적인 방향은 잘 짚었다", "저희도 반성할 점이 많이 있겠다"라며 원칙적인 말만 되풀이할 뿐, 문제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의견은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정강자 비상임위원도 곽 교수의 문제제기가 공론화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원론적으로 동의를 하면서도,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서 기사로 나가는 것이라면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라고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어렵게 전화연결이 된 인권위 사무처의 한 민간출신 직원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인적·구조적 쇄신 절실

곽 교수의 사임은 인권위원들의 자질 문제를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올려놨다. 인권위원들의 발상과 태도가 혁명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인권위원들의 물갈이는 불가피하다. 사무총장도 법 형식주의와 효율성을 앞세워 단일한 집행체계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최영애 사무총장이 한때 몸담았던 공대위의 문제의식도 결코 사무처가 집행을 독점하는 구조가 아니었다.

인권위원들을 배제하는 현재의 운영구조는 혁신돼야 한다. 인권위에서 가장 열성적이었던 곽노현 교수가 좌절 끝에 인권위원직을 사임한 역설적인 상황에서, 인권위원들의 소극적 활동을 인권위원들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전원위의 형해화, 소위간 업무불균형 등도 극복돼야 한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은 무엇보다 위원장 자신이다. 김창국 위원장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이유를 다른 데서 찾기보다는, 건전한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지 못했던 자신의 권위주의에서 찾아야 한다. 김 위원장은 또 자신이 인권위에서 1/11밖에 안 된다는 변명 뒤에 안주하지 말고, 곽 교수가 제기했던 문제들에 대한 과감한 혁신안을 제시해야 한다.

인권위 전면쇄신, 위원장이 결단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