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환자들, 이틀째 인권위 점거농성
23일부터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11층에서 농성에 돌입한 백혈병 환자들이 24일 기자회견을 갖고, "글리벡 약가결정 철회와 약가인하, 보험적용 확대"를 거듭 촉구했다.
백혈병 환자들은 "보건복지부가 글리벡 약가를 한 캅셀 당 23,045원으로 결정한 것은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과 마찬가지"라며, "정부는 결국 환자를 외면하고 제약사 노바티스의 손을 들어줬다"고 규탄했다. 백혈병환우회 강주성 사무국장은 글리벡 4알을 꺼내 "이게 10만원 어치"라며, "환자들은 죽음의 벼랑 끝에 서 있고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다"고 말했다.
글리벡 약가가 한 캅셀 당 23,045원(생산원가의 30배)으로 결정됨에 따라, 보험을 적용 받지 못하는 백혈병 초기 환자들은 한 달에 2백76만5천원(하루 4캅셀 복용기준)씩을 부담해야 한다. 현재 백혈병 초기 환자는 전체 환자의 70~80%를 차지하고 있다. 또, 보험이 적용되는 중기, 말기 환자의 경우엔 각각 74만6천원에서 124만4천원(하루 6-10캅셀 복용기준)씩을 부담해야 한다. 나라별 경제수준을 고려할 때, 이 가격은 영국 환자들이 부담하는 가격의 9배에 해당한다.
백혈병 말기 환자인 최종섭씨는 "하루에 10알을 복용해야 하는데, 하루 8알까지만 보험 적용이 되기 때문에 한 달에 무려 240여 만원을 부담해야 한다"며 "이제는 그냥 죽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험적용이 안 되는 백혈병 초기 환자와 GIST(위장관기저종양)환자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아버지가 GIST 환자인 양현정 씨는 "한 달에 3백만원씩 하는 약값을 더 이상 부담할 수 없어, 올해 들어 아버지는 약을 더 이상 못 드시고 있다"고 토로했다.
GIST 환자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보험적용을 허가했지만, 보건복지부에서 이를 승인하지 않아 보험적용을 못 받아왔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한 관계자는 "식약청이 승인결정을 통보하지 않아 처리가 누락됐던 것"이라며 "지금부터 보험적용에 대해 검토할 것"이라고 변명했다.
백혈병환우회와 GIST환자모임은 "약값을 인하하지 않으면, 최근 인도 제약회사가 개발한 글리벡 복제약을 들여올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복제약은 한알 당 1,200원으로 글리벡 가격의 약 1/57에 해당하며, 성분이 거의 같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직 부작용 여부가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한편, 오후 4시께 환자들은 국가인권위에 "보건복지부, 노바티스, 보건의료단체와 환자들이 참석해 해결책을 논의할 수 있는 토론회를 개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해 3월 백혈병 환자들은 '비싼 약가, 초기환자 보험적용 제외'등이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바 있으나, 인권위측은 아직까지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인권위원회 차별조사국장은 "지난해 9월 1차 심의를 끝내고, 외국사례를 수집하는 중"이라며 "담당 조사관이 한 달간 호주로 연수를 다녀오는 바람에 더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현재 인권위에서는 20여 명의 투병 환자들이 농성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들은 약가 결정이 철회되고 보험적용이 확대될 때까지 무기한 농성을 벌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