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르헨티나에는 거대한 유령이 떠돌고 있다. 바로 '삐께떼로스'(piqueteros=picketers) 운동이다. '반(半)실업 노동자운동'을 일컫는 이 말은 현재 아르헨티나 노동운동의 가장 왕성하고 힘있는 기운을 대변한다.
2001년 12월 아르헨티나 정부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이후, 외신들은 이곳을 혼란과 폭동이 난무한 무정부적인 상황이라고 속보를 송고하기 바빴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를 거스르고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삐께떼로스의 행진에 대해선 무관심하기 일쑤였다. 마치 3∼4년전 아르헨티나가 '신자유주의 경제'의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떠들면서 그 아래 감추어져 있는 빈곤과 저임금, 노동착취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해 오던 태도처럼.
아르헨티나의 현지 노동영상제작 단체인 '노동자의 눈 Ojo obrero'이 제작한 <삐께떼로스>와 미국 독립프로덕션 '빅 노이즈'의 작품 <아르헨티나 리포트>, 이 두 편은 삐께떼로스 운동의 현장을 누비며 아르헨티나를 떠도는 거대한 유령의 실체를 카메라에 담았다. 두 작품을 통해 우리는 주류 언론이 외면한 반실업 노동자운동의 실체를 현장감 있게 접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반실업 노동자운동은 IMF체제였던 지난 수년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며 전개되어 왔다. 이들은 주로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물류를 정지시키는 투쟁을 진행해 정부로부터 실질적인 투쟁의 성과들을 얻어내고 있다. 97년 이래로 지역에 따라 실업률이 30∼80%를 넘나드는 아르헨티나에서 정규직 중심의 노조운동은 이러한 위기에 어떠한 대안도 제시할 수 없었다. 실업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빈민 그리고 한번도 취업하지 못한 청소년들, 가계가 파탄 난 여성들이 중심이 된 이 운동은 기존 노동운동의 한계를 극복할 뿐 아니라 현재의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한 힘겨운 대장정을 시작한 것이다.
[노동자뉴스제작단]
* 두 작품은 오는 19, 20일 아트큐브에서 열리는 '반딧불'에서 상영됩니다. (문의 : 741-5363)
* 두 작품은 2002 서울국제노동영화제 상영작입니다.
- 2276호
- 2003-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