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감수성
충북도경에 가서 경찰관들을 상대로 인권교육을 하다가 덧붙인 에피소드가 있다. 큰 딸 목인이의 이야기다. '인권의 감수성'에 관한 적합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며칠 전 목인이가 밥을 먹다가 갑자기 신경질을 내며 소리를 질렀다. 학교에 대해 정말 짜증이 나서 미치겠다는 것이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학교에서는 어버이날을 맞이해서 학생들에게 엄마, 아빠에게 보낼 편지를 써서 제출하게 하고, 그 편지를 모아서 부모에게 보내주겠다고 했다. 부모에게 편지를 꼭 쓰게 하려는 뜻으로 이해하고 목인이도 별 거부감 없이 아빠인 나에게 편지를 써서 학교에 제출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으니까. 그런데 학교에서는 편지를 잘 쓴 사람에게 상을 주겠다며 학생들이 제출한 편지를 모두 뜯어본 것이다. 목인이는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왜 남의 편지를 함부로 뜯어보느냐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나 역시 이 말을 듣고는 화가 났다. 중3이면 이미 다 큰 아이인데 무슨 편지 검사를 한단 말인가. 참 한심한 발상이다. 나도 맘 한구석에 켕기는 게 있었다. 목인이가 요즘 사춘기라서 칼 같이 예민해져 있고, 나에 대한 불만도 만만치 않아서 편지의 내용이 예사롭지 않았을 텐데... 결국 그 편지를 뜯어보는 것은 내 프라이버시도 침해한 것이다.
학교장은 이렇게 변명할 것이다. 선생이 학생을 교육하는데 참고하기 위한 것이지 나쁜 의도로 편지를 뜯어보겠느냐. 학생들의 속내를 잘 알아야 제대로 지도하는 것 아니냐. 그리고 선생이 학생들의 글을 읽었다고 해서 그 내용을 누구에게 유포하겠느냐.
나는 경찰관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어 보았다. 이런 에피소드를 바라보는 입장의 차이가 결국 청소년 인권을 바라보는 감수성의 차이고, 그 차이는 또한 요즘 논쟁이 되고 있는 네이스(NEIS)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인권침해가 명백한 네이스에 대해서 교육당국은 학생들에게 족쇄를 채우기 위해 정보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지도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빡빡 우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날의 인권교육은 이렇게 정리했다. '인권운동은 인권의 감수성을 키워나가는 과정이며 학교당국과 교육당국의 시각을 바꿔나가기 위한 싸움도 그 하나이다. 따라서 나는 편지를 뜯어보는 학교당국의 소행을 문제삼아야 한다고 믿는다. 나도 이 문제에 대해 반드시 항의하겠다. 필요하다면 소송이라도 하겠다'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사건의 현장에서 만나는 인권활동가는 바로 이런 인권의 감수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들이다'라는 말로 교육을 끝맺었다.
나는 지금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다. '이 놈의 학교를, 이 나쁜 교장선생을 어떻게 혼내줘야 할까.' 분을 삭히지 못하면서...
(김칠준 님은 다산인권센터 운영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