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7일 <인권하루소식>이 창간 10주년을 맞는다. 하루소식은 앞으로 10회에 걸쳐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에 주요한 '인권의 화두'를 던졌던 대표적 사건 10가지를 골라 그 의미와 영향을 되짚어본다. <편집자주> 1988년 시작된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직업병 인정' 투쟁은 우리 사회에 직업병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동시에 경제발전이라는 구호아래 짓밟힌 노동자의 권리, 건강하게 일할 권리에 비로소 주목하도록 만든 사건이었다. 원진레이온은 '직업병의 대명사'에서 '산재투쟁 역사의 증거'가 되고 있다.
구조적 문제로서의 직업병 인식 계기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사무국장은 "원진레이온 사건은 산업재해가 비민주적인 산업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합리적인 결과물이란 인식을 가져다준 사건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88년 원진레이온 사건 이전에도 개별적으로 재해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갔지만, 개별적인 희생이나 비극으로 끝났을 뿐 그 죽음이 사회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알리려고 하지도 않았다"며 "87년 민주화 운동이라는 시대적 영향도 있었지만,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조직적인 직업병 문제제기는 산재를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1959년 설립된 원진레이온은 일본 동양레이온이 폐기처분한 기계를 1966년 들여와 조업을 시작했다. 이 기계는 인조견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황화탄소를 대량으로 배출, 30년 가까이 원진 노동자들을 소리없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개별적으로 회사를 상대로 직업병을 주장하거나 청와대에 진정서를 넣는 일이 있었지만, 이러한 주장이 별다른 결과를 가지오지 못하면서 집단적 행동의 필요성을 느낀 노동자들은 88년 7월 '원진레이온직업병피해자및가족협의회'를 구성, 조직적인 직업병 인정 투쟁에 나서게 된다.
"산업쓰레기로 주저앉을 수 없다"
'산업역군'이라며 경제발전의 주역으로 칭송되다 일순간 '산업쓰레기'로 버려져 온 노동자들은 망가진 몸을 추스르며 대항하기 시작했다. 원진 노동자들과 함께 사회단체들도 원진직업병대책위원회를 결성, 직업병 인정 투쟁을 지원했다. 사회적 여론에 힘입어 88년 35명의 노동자가 직업병 인정을 받은 데 이어, 90년에는 111명의 노동자가 추가로 직업병 인정을 받았다. 91년 직업병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사망한 김봉환 씨 시신을 두고 1백37일간 농성을 벌인 끝에 김 씨의 '직업병 인정'을 받아내고 직업병에 대한 조사와 종합대책 등에 관한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93년 12월 원진레이온 회사가 문을 닫은 이후, 원진 노동자들은 재취업, 원진직업병관리재단 설립, 직업병 전문병원 설립 등을 위해 97년까지 싸움을 이어갔고, 마침내 99년 구리시에 원진녹색병원이 문을 열게 됐다.
한편 원진레이온의 '죽음의 기계'는 95년 중국의 나전모방에서 수입, 국내외 노동인권단체로부터 일본, 한국에 이은 끔찍한 직업병의 역사를 되풀이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고통 계속돼도 재활시스템까지 발전
원진산업재해자협회에 따르면, 지금까지 원진직업병 환자로 밝혀진 사람은 총 824명, 그 중 68명이 사망했다. 원진직업병은 뇌졸중으로 인한 전신마비, 언어불능, 장기손상 등의 합병증을 불러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진레이온 방사과에서 근무했던 이용윤 씨(57, 72년∼85년 근무)는 7년 전부터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다. 원진녹색병원에서 만난 부인 유영례 씨(57)는 "아픈 지 18년이나 됐지. 처음에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녔는데, 이제는 걷지도 못하고 눈도 잘 보이지 않나 봐"라며 말을 못하는 남편을 대신해 설명했다. 유 씨 역시 원진직업병 피해자이면서 중증환자인 남편을 돌보고 있다. 유씨는 "나도 4년 일했는데, 그때 이따금씩 청소하던 젊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기도 했어. 뭐, 그때 죽은 사람은 보상도 못 받았지. 나중에 88년 이후에 사람들이 싸우면서 산재인정이라도 된 거지"라고 회상했다.
옆 침대에서 치료중인 원진직업병 환자 이수남(60) 씨의 부인 윤정순(57)씨도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누가 일했게…"라며 연신 웃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본다. 원진직업병 환자들은 우울증, 극심한 감정 변화로 계속 울고 웃는다는 게 간호사의 설명이다.
원진녹색병원 양길승 원진종합센터장은 "시급한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뿐 아니라 만성 산재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속적인 치료를 위해 오는 9월 20일 개원하는 녹색병원(서울)에 요양병상을 마련하게 됐다"며 "직업병 인정에서 병원 설립까지 이어져 온 원진레이온 투쟁은 직업병 환자에 대한 관리,치료, 재활까지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2의 원진레이온' 계속될 수 있다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사무국장은 "지금은 '과로사'가 일반적인 용어로 쓰이지만, 이것은 5∼6년 전부터 과로사 관련 소송이 제기되고 산재로 인정받으려는 싸움이 계속돼 왔기 때문"이라며 산업재해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설명했다. 그는 최근 청구성심병원 노동자들이 산재로 인정받게 된 사례를 들며 "육체적으로 잘리고 부러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총체적 인격체로서 노동자의 건강문제를 바라봐야 하고 이러한 각성의 시작이 원진레이온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산업재해를 사회보장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기업이 할 일을 대신해준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산재인정을 받는 데 아직도 어려움이 많다"고 주장했다. 사전승인제도 등의 문제는 원진레이온 때나 지금이나 남아 있는 문제라는 것. '장시간 휴식 없는 노동'이라는 산재 발생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산재를 회피하려는 기업과 정부의 태도가 변화되지 않고서는 제2, 제3의 '원진레이온'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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