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이 37년만에 찾아온 고국에서 거물 간첩으로 몰려 곤욕을 치르고 있다. 수사가 진행중임에도 반공주의를 절대적 가치로 신봉하는 한나라당의 정형근 의원을 위시한 보수정객들과 보수언론들에 의해 그는 이미 '해방 이후 최대 거물 간첩'으로 낙인찍혀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국가보안법 앞에만 서면 최소한의 법적 절차마저도 작동이 정지되는 기이한 현상을 보게 된다. 대한민국의 일반 시민들에서부터 고위급 인사들까지 반국가단체인 북한 땅에 수시로 '잠입·탈출'하고, 그 구성원들과 '회합 통신'하고 있는 이 때, 송두율만은 현재의 행위도 아닌 과거의 '친북적' 행위로 국가보안법의 덫에 걸려들었다.
지금 이 땅은 수십 년 동안 '경계인'으로 스스로를 규정한 한 지식인의 고독과 망명자의 설움을 외면하고 있다. 그가 이 땅의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사실도, 그가 온몸으로 일구었던 학문적 성과마저 쉽게 잊혀졌다. 국정원은 그의 삶 전체를 부정하면서 오로지 그의 '친북적' 행적만을 수집해 놓은 거대한 파일을 그 앞에 내놓았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 잊어버린 사실마저 하나둘 들춰지는 상황 앞에서 그는 공포에 짓눌리고, 절망하는 힘없는 개인일 뿐이었다.
그렇게 무너져버린 그 앞에 공안당국과 보수진영은 '전향서'를 강요하고 있다. 검찰은 사상을 검증한다며 그의 저서와 논문들을 뒤지고 있다. 이미 오랜 세월 반인권성이 지적되어 공식 폐지된 사상전향제도가 송두율 앞에 버젓이 살아나고 있다. 준법서약제마저 현 정부에 들어와 폐지된 마당에 다시 '전향'이 강요된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전쟁을 비롯한 국가비상 시기에도 침해할 수 없는 절대적 자유라는 사실은 당연히 무시된다. 오로지 송두율이 북한 편에서 남한 편으로 넘어왔다고 선언하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승리를 확인하려는 듯이 말이다. 이처럼 거대한 국가기구가 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무참히 짓밟고, 그 개인을 벗어날 수 없는 절망과 치욕에 빠지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야만적인 대한민국의 인권 현실이다.
때문에 우리는 송두율을 처벌하려는 공안당국 앞에, 보수 정객들과 언론들 앞에, 한편에 기죽어 선처를 구걸하는 기회주의자들 앞에 당당하게 국가보안법 폐지의 깃발을 들어야 한다. 이제 송두율의 문제는 아직도 야만의 논리에 짓눌려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로 전화되었다. 그래서 다시 외치자. 그에 대한 사법처리를 중단하라. 그를 국가보안법의 제물로 삼지 말고, 자유롭게 하라.
- 2432호
- 2003-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