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동성애자를 에이즈 전염 위험 집단으로 지목하는 기사를 실어 동성애자 인권단체들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문제가 된 기사는 지난 8일자 <한겨레>에 사회부 안종주 기자가 "여성동성애 에이즈감염 첫 확인", "남성동성애자 28% 헌혈 경험"을 제목으로 쓴 두 건이다. 안 기자는 한국에이즈퇴치연맹과 남서울대 이주열(보건행정학) 교수팀이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고위험군 성행태 및 에이즈 의식조사"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동성애자의 28.3%는 에이즈 검사를 목적으로 헌혈을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홍보교육이 더 철저하게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됐으며 "최근 3년 동안 에이즈 검사를 한번도 받지 않은 비율이 51.4%"라고 쓰는 등 동성애자를 에이즈 전염 위험이 높은 집단으로 전제하고 있다.
또 안 기자는 에이즈 감염인 258명을 대상으로 한 같은 팀의 조사결과를 인용하면서 "여성 감염인 2명이 동성애 관계로 에이즈에 감염됐다"며 "특히 여성 감염인 3명은 많은 여성과 자주 동성애 관계를 맺고 있다고 밝혀 여성동성애 관계를 통한 에이즈 전파가 우려되고 있다"고 썼다.
동성애자=에이즈 전염 위험 집단?
이에 대해 동성애자인권연대,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 한국앰네스티 성적소수자 그룹 등은 잇따라 비판 성명을 내고 기사 내용을 강력 비판하고 있다.
동성애자인권연대(아래 동인련)는 8일 낸 성명서에서 "기사는 동성애자가 '고위험군'이라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HIV의 감염확률을 높이는 것은 기본적으로 체액에 노출되기 쉬운 성관계 등의 '위험행동'이지 위험집단의 문제가 아니"라고 밝혔다. 실제로 에이즈 바이러스인 HIV는 체액과 혈액을 통해서만 전염되므로 동성애자들의 성관계만이 에이즈의 감염 경로는 아니라는 지적인 것이다.
국립보건원도 해명자료를 내 기사는 "여성 감염인 2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하여 '본인이 생각하시기에 어떻게 감염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한국인 동성'으로 응답한 여성 2명의 자료를 인용한 것"으로 응답자의 주관적 답변을 담고 있을 뿐이어서 과학적인 근거로 사용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 국립보건원은 "사례가 있다 하더라도 공중보건학적 문제가 될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아 전파가 우려되고 있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일반인에게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고 경계했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 권관우 사무총장도 해명서를 통해 <한겨레>의 해당 기사를 인터넷 판에서 삭제할 것을 요구했고 추후 신문사와 안 기자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주관적 답변이 과학적 근거로 둔갑
이에 대해 안 기자는 "가장 중요한 인권인 건강권을 위해서는 에이즈 확산을 막는 안전한 성행위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에이즈 감염인 중 동성애자의 비율이 높은 것이 사실이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채윤 부대표는 "정확한 통계도 없고, 국립보건원의 감염경로 조사도 해당자에게 '어떻게 감염되었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는 수준"이라고 반박하며 "동성애자를 에이즈 전염위험이 높은 위험집단으로 볼 것이 아니라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위험에 처해 있는 집단으로 보는 시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동인련도 "스스로 보건복지전문기자라고 밝혔다면, 편견을 조장하는 기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염인들의 인권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에 대해 우선 보도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 조장 안돼
한편, 애초 비공개를 전제로 설문지가 작성되었으며 연구팀의 보도 만류에도 불구하고 안 기자가 기사를 낸 점도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자문위원인 안 기자는 지난해 12월 15일 최종보고서 작성 전에 열린 비공식 자문회의에서 조사 결과를 입수했다. 조사를 담당한 이주열 교수는 "회의 막바지에 안 기자가 언론보도를 권했지만 언론보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며 "보도 후 안 기자에게 항의하여 '사전에 협의하지 않은 것은 언론보도를 반대할 것 같아서였다'는 해명과 사과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동인련 정욜 대표는 "조사 결과가 동성애자들에 대한 오해를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왜곡될 가능성 때문에 비공개를 전제로 했는데 기자가 특종에 현혹돼 기본적인 윤리의식도 버렸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안 기자는 "비공개를 전제로 설문조사가 시행됐다는 것은 몰랐다"라면서도 "사실보도 기사이므로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측도 아직 어느 쪽으로부터도 공문을 받지 않아 답변할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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