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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란의 인권이야기] 노동권 박탈의 ‘문’이 되는 에이즈 강제검사

에이즈에 관한 국제노동기준

5월 14일에 ‘HIV/AIDS감염인의 노동권 확보와 ILO(국제노동기구) 대응을 위한 워크숍’이 열렸다. ILO에서 올해와 내년 총회를 거쳐 에이즈와 관련한 국제노동기준 권고안을 채택할 예정이어서 마련된 워크숍이다. ILO는 1988년에 WHO(세계보건기구)와 함께 에이즈와 노동 현장에 관한 합동 자문에 응함으로써 HIV/AIDS에 대한 국제 사회의 노력에 동참하기 시작한 후 2001년 6월에 ‘HIV/AIDS와 노동에 관한 실천 강령(Code of practice)’을 채택하였다.

ILO의 실천 강령은 HIV/AIDS가 노동현장의 문제임을 분명히 하고, 에이즈검사를 구직자를 고르는데 사용해서는 안 되며, 노동현장의 일상적 접촉으로는 감염되지 않기 때문에 HIV감염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되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강화하는 것이 HIV 감염의 확산을 막기 때문에 성 평등을 지향하고, 감염인의 건강과 능력에 맞는 노동환경을 만들 것 등 10가지 핵심원칙을 제시하였다. 회원국들이 이 실천 강령을 따르는 것은 자율적 선택이어서 각국의 법이 실천 강령과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는 반면, 2007년에 ILO가 채택한 어선원 복지에 관한 결의안에서 ‘어선원과 그 공동체의 에이즈예방을 위해 교육’하는 것을 ILO의 프로그램과 예산에 반영하도록 한 것처럼 더욱 구체적인 수준에서의 기준과 그에 대한 책임이 강조될 필요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ILO의 ‘권고안’은 기존의 실천 강령을 더욱 구체화하고, 회원국들에게 실질적인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형식이 되도록 하는데 의미가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차별금지 조항

한국의 상황은 ILO의 실천 강령과 한참 거리가 있다. 1987년에 에이즈예방법이 제정된 후 21년만인 2008년이 되어서야 ‘사용자는 근로자가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근로관계에 있어서 법률로 정한 것 외의 불이익을 주거나 차별대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이 신설되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의 위반에 대한 별도조치가 없어 법적 실효성이 의문시 되고, 직장에서의 HIV검사와 관련된 차별 등 구체적인 금지 규정을 적시하지 않아 감염인의 노동권 보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근로관계에 있어 감염인의 노동권을 침해할 소지가 상당한 경우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이의 위반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마련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국회의장에게 의견을 표명하였으나 반영되지 않아 에이즈예방법 한 귀퉁이에 선언적 수준으로 남게 되었다.

해고와 강제출국으로 이어지는 에이즈검사

감염인의 노동권을 박탈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각종 검사에서 HIV양성여부를 드러나게 하여 고용상의 차별을 가하는 것이다. 에이즈예방법에서는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에이즈 검사결과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였으나 이를 어길시 사업주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을 뿐이다. 설령 차별구제를 신청한다하더라도 사업주가 노동자의 감염사실을 인지한 후 HIV감염이 아닌 다른 직무상의 이유를 들어 고용차별행위를 가한 경우, 노동자는 자신의 감염사실을 공개하면서 이를 근거로 국가인권위원회나 노동부에 차별시정절차를 밟는다는 것은 사회적 사망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에이즈예방법에서는 군인, 성매매여성, 이주민 등에게 에이즈 강제검사, 집단검사를 허용하고 있다. 실제로는 ①징병검사, 입영검사(군대) ②채용신체검사, 병적증명서(채용시) ③직장검진(채용후) ④성병강제검진 ⑤비자신청 등의 과정을 통해 ‘자발적 동의가 없는 상태로’ HIV양성여부가 밝혀지게 될 가능성이 있으며, HIV양성으로 밝혀지면 출입국관리소, 질병관리본부, 국방부로 신고, 통보된다.

징병검사와 입영검사시 에이즈검사에서 양성으로 판정되면 병역면제되거나 전역조치되는데,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장 또는 사업주가 채용시 병적증명서 제출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질병으로 인한 병역면제는 취업, 직장생활로까지 연결이 된다. 공직자를 제외하고는 병역면제사유에 질병명이 기재되지는 않지만, 취업사이트나 인터넷상에는 군면제 사유에 해당하는 질병을 사업주가 묻지나 않을지, ‘언젠가는 들켜서’ 불이익을 당하지나 않을지 우려를 하거나 자포자기심정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주민에게 에이즈강제검사를 하는 이유는 출입국여부를 판가름하기 위해서이다. 현재 법적으로 회화지도비자 (E2), 예술흥행비자(E6), 내항선원비자(E10), 산업연수비자(D3) 신청시에 에이즈검사결과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으며,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비전문취업비자, E9)에게도 법적 근거없이 에이즈검사를 하고 있다. 감염사실이 확인되면 비자발급이 되지 않아 입국할 수 없게 된다. 입국한 후에 에이즈감염사실이 확인된 이주민은 비자의 종류와 상관없이 강제 출국되어 치료권, 노동권 등 모든 것을 박탈당한다. 그리고 성매매여성에게 6개월마다 에이즈강제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감염인은 유흥업소 등의 성병검진업소에 취업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2008년말 에이즈감염인의 인권을 지지하는 페이스 선언을 홍보하고 있다.

▲ 2008년말 에이즈감염인의 인권을 지지하는 페이스 선언을 홍보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에이즈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전염병예방법과 산업안전보건법상에서 ‘공중과의 접촉이 빈번하여 전염병의 전파가 우려된다고 시장·군수·구청장이 인정하는 직업‘, ‘전염의 우려가 있는 질병에 걸린 자, 노동부장관이 정하는 질병에 걸린 자’에 대해서는 근로를 금지하도록 하는 규정의 포괄적이고 모호함 때문에 그 질병의 범위가 임의적이고 확대될 여지가 많다. 이 모호한 규정은 자격이나 직종별로 규정된 각종 법들에 반영되어 ‘전염병환자’, ‘전염의 우려가 있는 질병에 걸린 자’ 등은 면허를 받을 수 없거나 취업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염병 환자는 조리사 또는 영양사의 면허를 받을 수 없다.(식품위생법 제38조), ‘전염성 질환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지거나 의심되는 보육시설종사자는 즉시 휴직시키거나 면직시키는 등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영유야보육법 시행규칙 제33조)’, ‘유효적절한 치료를 받지 아니한 법정전염병으로서 전염성이 없어지지 아니한 자는 공무원으로 채용할 수 없다(공무원채용신체검사규정 제5조)’와 같은 식이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낙인은 노동을 금지시켜야할 질병의 범위에 에이즈를 포함시키는데 주저하지 않게 만들고, 의료기관에서는 건강검진항목에 에이즈를 포함시켜 이득을 보고,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돌볼 수 있는 기회가 제대로 마련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항목을 검사받기를 원하는 등 복합적 이유로 인해 채용신체검사나 직장건강검진에서 자신이 에이즈검사를 받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필요하지도 않은’ 검사를 받게 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실효성도 없고 인권도 없는 에이즈 강제검사

에이즈 강제검사와 집단검사는 검사를 받는 사람이 검사의 필요성을 충분히 숙지하는 것을 가로막고, 정서적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며 그 자체로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감염사실을 아는 것은 에이즈예방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HIV검사에 대한 강조는 커지고 있다. 그러나 무조건 검사를 많이 하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상담 및 치료서비스와 연계되지 않은 채 검사‘만’을 강요하는 것은 잠재적 감염인에게 절망만을 안겨주는 것이고, 또한 강제적 검사는 당사자의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는 감염인에 대한 색출과 격리의 의도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더군다나 강제검진이 에이즈예방에 있어 실효성이 없음을 국제사회는 강조하고 있다. UNAIDS/WHO는 HIV 검사에 대해 ‘3Cs' 원칙(Confidential, Counselling, Consent) 즉, 비밀이 보장되어야 하고, 상담이 수반되어야 하며, 수검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준수되어야 함을 명시하고 자발적 검사가 HIV감염을 막는데 훨씬 효과적임을 강조한다. 1994년에 WHO의 동아시아지역사무소(SEARO)가 발간한 “HIV 검사 정책과 지침(HIV Testing Policy & Guidelines)”에서도 모두에게 HIV 검사를 시켜서 모든 감염인을 확인해야 하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취약 그룹에게라도 검사를 다 시켜야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사람들의 우려에 대해 마약 사용자, 임신한 여성, 성 노동자, 이주민 등에게 강제 검사는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뿐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더 나아가 검사결과에 따라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고, 그 기록이 평생 국방부와 질병관리본부, 출입국관리소에 남는 것 자체가 심리적 압박을 갖게 하며, 정책의 변화에 따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에이즈강제검사를 폐기하는 것이 ’실효성 있는‘ 에이즈예방을 위한 것이자, 감염인의 노동권의 ’문‘을 여는 길이다.
덧붙임

권미란 님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