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것 혹은 '정상'적인 것?
서구사회에서, 특히 미국에서의 HIV/AIDS에 대한 대중의 반응과 그 유행양상, 그리고 질병에 대한 대응은 1990년을 전후로 나뉘어 지는 것 같다. 1980년대 에이즈는 '특별한' 질병이었다.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고, 대중매체들은 이 원인을 알 수 없고 치명적인 질환에 대해 '도덕적인' 주문을 외웠다.
1990년대 이후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감염률이 비교적 안정되고 효과적인 치료제가 생산됨으로써 장기간 생존이 가능하게 되자 에이즈에 대한 반응이 '정상화'된다. 선진국에서 에이즈는 특별한 질환이 아니고 대중의 지나친 관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개발도상국가들, 특히 아프리카와 남미,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HIV감염과 에이즈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혹자는 이를 두고 선진국에서 에이즈에 대한 관심과 경각이 줄어들면서 개발도상국에서의 에이즈 창궐가능성을 경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질병을 특별하게 취급하는 것이 항상 좋다거나, 다른 질환과 다름없는 그저 하나의 질병으로 취급하는 것이 항상 좋다거나 하는 일반론은 성립하기 어렵다. 그야말로 어떤 부분에서는 특별한 것이, 어떤 영역에서는 정상적으로 취급되는 것이 다음에 이야기 하고자 하는 운동의 지향을 위해 좋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에이즈 운동, 어디를 향한?
지역과 국가에 따라 다양한 에이즈의 전개양상 뿐만 아니라, 각 국가의 정치과정, 질병에 대한 인식, 성문화, 산업형태, 보건의료인프라를 포함한 경제성장 정도의 다양성도 AIDS 운동의 주체와 형태에 영향을 미쳤다.
인구당 연간 의료비가 6000원인 국가에서 연간 약값만 일인당 71만2000원이 넘는다면, 그가 약을 먹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부모가 에이즈 치료제를 구할 수 없어 사망하고 나면 남아있는 아이들은 교육의 기회는커녕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매춘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당연히 다국적 제약사의 치료제 폭리와 저가의 임상실험장소로 착취당하는 상황에 대해 저항한다. 기초보건의료를 강화시켜야할 정부의 책임이 거론되는 것은 물론이다.
가난뿐만이 아니다. 에이즈에 걸린 사실자체가 이들의 인생에 치명적으로 작용하도록 사회화된 국가에서 AIDS와 HIV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마찬가지로 위협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차별과 낙인은 감염인이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이러한 국가에서는 감염인들이 이러한 기회를 요구하는 것 자체를 도덕적으로 지탄하기 일쑤다. 이런 객관적 상황 하에서 감염인들이 자신을 드러내기 극도로 어려운 곳에서는 감염인들보다는 다른 인권옹호자들이 먼저, 좀 덜 그렇다면 감염인들이 주가 되어 HIV/AIDS운동이 시작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맥락에 있지만, 각 국의 AIDS 운동이 추구해온 목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질병을 가진 환자, 혹은 질병에 취약한 사람들에게 치료와 예방이 적절하게 공급되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이고, 이들이 건강을 회복하여 일터 혹은 다른 삶의 기회의 장에서 형평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또 하나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것이 HIV/AIDS감염인과 환자뿐 아니라 모든 소수자와 모든 환자들이 마땅히 누려야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호주의 에이즈 운동에서 배운다: 에이즈에 대한 담론의 소유권
(Andrea M. Whittker, 1992, Living with HIV : Resistance by Positive People, Medical Anthropology quarterly, New Series, Vol.6, No. 4, 385-390.에서 상당부분 인용하였음.)
호주에서 HIV에 대한 대응에는 중산층 게이남성들에 의한 많은 조직들이 큰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마약주사사용자, 성노동자, 원주민, 노동계급들이 또한 정치적으로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중산계급남성이 HIV에 의해 영향 받은 공동체의 가장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고, 내가 소개할 저항을 이끈 것도 바로 이들이다.
1. AIDS 은유를 반전시키기
"이것은 단지 동성애자들의 질병이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예요. 나는 내가 절대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무책임한 사람이라고도 생각지 않아요. 나는 단지 불운했던 거죠"
이들에 대한 인터뷰를 시도한 연구에서 인용된 말들 속에서, HIV는 '단순한 하나의 바이러스'로 재개념화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HIV전파를 둘러싼 미신과 낙인을 만드는 연상들을 제거했다. HIV는 다른 어느 질병과 다를 바 없으며, 게이나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닌 다른 누구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는 것과 이것은 하나의 바이러스일 뿐이지 도덕적 잘못에 대한 처벌이 아닌 것임을 강조하고자 했다.
2. 질병과정상의 하나의 단계로서의 HIV
"핵심은 HIV가 반드시 AIDS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간염이나 실제 다른 질환들처럼 중간에서 멈추고 보균상태가 되 거죠."
"비록 양성이지만 모두 AIDS가 되는 것은 아니예요. 어느 정도는 질병이 회복가능하다는 것과 병이 경감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어 왔고, 그래서 나는 내가 적극적 행동을 취하면 상당기간 살아갈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요."
위 인용들 속에서 AIDS는 단지 하나의 질병과정으로서 다수의 단계로 이루어진 연속적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건강이라는 것은 항체양성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고 육체적 증상으로 측정되는 것이다.
3. 적극적 개입
"수년 동안 우리는 정부가 우리에게 하라고 말하는 것을 해왔어요. 우리는 사회복지사와 기관들이 하라고 하는 것을 해왔구요. 의사들은 말하죠. '이게 당신들을 위해 최선 이예요. 그리고 우리는 당신들이 무엇을 느끼는지 잘 알아요' .그렇지만 그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죠. 왜냐하면 그들은 HIV양성자가 아니니까요."
의료인들이 HIV관리를 지배해왔고 People living with HIV(HIV감염인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통칭)들은 '전문가'들에 의해 감시되고 통제되어야 하는 신체를 가진 '환자들'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곧 그들은 자신의 질병과 몸에 대해 적극적 개입을 시도하였고, 의료인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협력하는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러브포원, 세울터, 카노스, 한국감염인협회 등 4개 감염인 단체들이 함께 모여 감염인들의 '정보제공철회'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지금 2006년이 한국의 에이즈 운동사의 첫 장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한국사회도 역시 에이즈에 대해 다양한 맥락을 형성해온 역사와 조건을 가진 곳임에 틀림없지만, 무엇보다도 감염인들과 그 지지자들이 '무력감의 기반'이 되는 HIV에 대한 의미구성에 저항하고, 감염자와 환자들의 수동적 역할을 드러내는 상징적이자 또한 실제적인 문제로 그 첫소리를 모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덧붙임
변진옥 님은 'HIV/AIDS 인권모임 나누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