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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실체 없는 편견과 혐오를 걷어내자

<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OO부대 의경 당뇨병 의심 소견, 병원 후송’이라고 신문에 기사가 나온다면 어떨까? 코웃음을 칠 일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다른 게 있다면 질병의 이름 정도였다.

2016년 5월 24일, ‘OO부대 의경 에이즈 양성 반응, 병원 후송’

보도에 따르면 의무경찰 부대가 단체로 헌혈하는 과정에서 한 의경의 피검사 결과가 HIV바이러스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해당 부대에서는 ‘긴급’후송 조치를 실시했으며, 나머지 부대원들도 전원 HIV바이러스 검사를 강제하고 내무반을 소독시켰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UNAIDS(유엔에이즈)는 HIV바이러스 검사에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먼저 에이즈 검사는 자발적인 동의가 우선되어야한다. 에이즈 환자의 건강관리 수준은 초기에 대응에 따라 일상 생활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사회적 차별은 당사자 스스로 HIV바이러스 감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심각하다. 따라서 자발적 동의가 없는 HIV바이러스 검사는 드러나지 않은 HIV 바이러스 검사가 필요한 사람들의 검사를 가로 막을 뿐만 아니라 피검사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검사자의 상태에 맞춰 검사 전 상담과 검사 결과에 따른 상담이 행해져야 하다. 검사 전/후의 상담은 피검사자의 심리적 안정과 동시에 HIV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서도 필요한 절차다. 왜냐하면 편견으로 점철된 에이즈에 대한 의학적 이해를 도모하는 과정이자 사회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행동들의 전제는 비밀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전염성 질병에 대해서 알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제쳐두더라도, HIV바이러스가 전염력 측면에서나 건강관리 측면에서 모두 관리가 안 되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알권리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다시 경찰의 대응으로 돌아가 보자. 경찰은 의경 대원이 HIV바이러스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고 호들갑을 떨어대며 대처했다. 문제는 이 호들갑떠는 행위는 기존의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차별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앞서 말했듯 HIV바이러스는 건강관리 측면에서 이런 요란한 대처가 어울리지 않는 질병이다. 게다가 이 바이러스 검사는 애초에 거짓 양성이 적지 않다. 실제 양성이 아님에도 검사의 한계로 인해 양성판정이 나오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에 2차, 3차 검사를 거쳐야만 병의 여부를 판단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초 양성판정을 받은 의경에 대한 상담 과정은커녕 부대를 소독하고 같은 부대원들을 강제검사한 행위는 부대원 전체의 인권을 침해하고 HIV/AIDS감염인에 대한 낙인을 상기시키는 행위였다. 결정적으로 비밀을 유지하지 않았다. 헌혈을 통해서 검사 결과가 알려졌다 하더라도 피검사 결과는 당사자에게만 공개되며, 에이즈예방법에 따라 군부대의 경우에는 검사의 결과를 그 부대장에게만 알릴 수 있고 부대장 역시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지속된다. 하지만 ‘긴급’후송되었다는 불필요한 보도까지 되었다는 것 자체가 개인의 질병 정보를 비밀로 유지할 생각이 없는 경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어느 모로 봐도 경찰의 대응은 총체적으로 편견에 기댄 차별적인 행위였다.

하지만 이 후 경찰은 무대응으로 일관하며 사과 한 마디 없는 형편이다. 이런 편견이 어디 경찰만의 문제일까. 에이즈 양성이라는 보도가 나오자마자 대부분의 언론사는 필터링 없이 문제를 확대 재생산했다. HIV바이러스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 의경이 실제 어떤 진단을 받을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 시작된 보도는 보호되어야 할 개인 정보가 어떻게 언론에까지 유출되었는지는 다루지 않고, 오로지 해당 사건의 의경이 어느 부대였는지만 쓰기 바빴다. 그 사이에 바이러스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온 당사자와 HIV/AIDS 감염인은 모두 이 사회에서 격리해야 할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HIV바이러스는 좀비 바이러스가 아니다. 그럼에도 언제까지고 ‘에이즈’라고만 하면 내용도 상관없이 무지로 점철된 보도들을 보아야만 할까?

한국에 에이즈라는 질병이 등장한 지 30년이 넘었다. 이제는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해서 동성애자들만 혹은 신체적 접촉만으로 감염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 사실만으로 과연 한국 사회의 편견이 줄어들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변화의 역사는 만들어지고 있다. HIV/AIDS 감염인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가 자살이었던 현실에서부터 에이즈예방법을 부분적으로나마 개정시키고, HIV/AIDS감염인 연합단체가 만들어온 감염인 인권 운동이 있기에 가능했던 역사다.

이에 반해 한국사회의 편견과 혐오조장은 맥락이 없이 등장한다. 2016년 5월 17일 강남역에서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경찰은 조현병 환자들을 강제 입원시키겠다고 말하고, 이에 한 술 더 뜬 새누리당은 법 개정을 하겠다고 나선 판국이었다. 강제 수용과 다름없는 방식을 서슴없이 꺼내는 것도 문제지만, 행정부, 국회의원 상관없이 조현병의 실제 위험성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않고 편견에 기댄 대책들을 내놓는 것도 무척 심각한 문제다. 실재하는 여성혐오에 대응하자는 목소리든, 에이즈에 대한 차별을 걷어내자는 목소리든 또 다른 혐오, 또 다른 편견으로 대응하는 꼴이다. 혐오든, 편견이든 실체와 상관없이 정치적 수사로 활용하며 자신들의 정치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내는 한국의 차별 현실은 실재하고 있다.

이제는 저들의 실체 없는 혐오와 편견에 기댄 시야를 거부하고 실재하는 현실의 차별을 직시해야 한다. 2015년 보라매병원에서는 에이즈 환자에 대한 스케일링 치료를 거부했고, 2014년에는 원주 세브란스 병원에서 중이염 치료를 거부했고, 2011년에도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인공관절 수술을 거부했다. 의학적인 근거들은 당연히 없다. 사례는 더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외국인 장학금 프로그램은 HIV바이러스 검사를 의무로 만들고 양성반응이 나온 사람은 장학금을 받을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 이에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에서는 차별금지 정책에 위배되는 한국 정부의 장학 프로그램을 더 이상 안내하지 않는다고 밝혀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번 보도와 같은 현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2016년에는 UNAIDS 주관하에 전 세계 공통으로 시행하는 HIV/AIDS 감염인 낙인지표 조사를 한국에서도 시작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100명이 넘는 감염인들을 설문 조사하고 심층면접을 실시해 올해 가을쯤에는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전국에서 에이즈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유일한 요양병원이었던 수동연세요양병원에서 HIV/AIDS감염인들이 탈출해 자신들의 처지를 폭로한 지 2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해결책 마련은 여전히 요원한 감염인의 현실이 이번 조사를 통해 정면으로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길 기대한다.
덧붙임

디요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