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HIV/AIDS 운동을 하면서 많은 국내외 행사에 참여했지만 이번 아이캅 참가를 위해 부산으로 가는 고속철도 안에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내심 흥분이 되었다. 아이캅이 가지고 있는 여러 한계들이 많았지만, 국내에서 개최하는 최초의 HIV/AIDS 국제행사라는 점뿐만 아니라, 아-태지역에서 온 2천여 명의 활동가들의 모습은 어떨지, 에이즈운동에 대한 방향과 논쟁은 어떻게 진행될지, 인도 및 태국의 급진적이고 활동적인 활동가들의 분위기는 어떨지 등의 생각으로 내내 들떠 있었던 것 같다.
들뜬 마음으로 향한 제 10회 아이캅
그도 그럴 것이 아이캅을 준비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을 만나게 되었고, 국내에서는 에이즈 이슈로 성소수자는 물론 빈곤, 성노동자, 청소년, 이주노동자 등 취약계층의 활동가들과 함께 에이즈와 관련된 서로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고 에이즈문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으며 해외 활동가들과의 워크숍 등을 통해 그들의 활동의 경험을 나눌 수 있었다. 아이캅을 빌어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들을 만나 에이즈 이슈를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나뿐만 아니라 국내의 에이즈 인권 활동에 있어 큰 성과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의 감염인과 소수자,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 제 10회 아시아 태평양 국제 에이즈 대회 참가단을 꾸리고 이번 아이캅의 기조인 “다양한 목소리, 하나 된 행동”을 함께 할 아시아 태평양과의 연대를 통해 아-태지역에서 에이즈가 보여주는 사회적 문제를 다시 드러내고,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 자리를 바탕으로 한국 참가단은 아-태지역에서 에이즈 치료를 필요로 하는 에이즈 감염인의 에이즈치료제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위하여, 특허 강화를 강요하는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고, 아-태지역에서 오래 동안 에이즈에 취약한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청소년, 여성, 성노동자와 이주민, 미정착 소수민족, 마약사용자 그리고 남성동성애자들을 예비 범죄자로 취급하며 취약그룹을 차별하는 법을 개정하고, 에이즈의 중요한 원인과 결과로 빈곤을 지목하고 현재의 개발 전략이 에이즈 확산의 구조적 주범임을 알리는 활동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정부의 후진적인 인권상황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후진적인 인권상황이 여실히 드러나다
대회가 시작하기 전부터 아시아 태평양의 감염인들을 초청하는 자리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에이즈 감염인, 성노동자, 마약사용자, 트렌스젠더는 입국부터 입국비자를 거부당하고 임국심사과정에서 몇 시간 억류되는 경험을 겪어야 했고, 한 트랜스젠더는 공항직원으로부터 당신의 성기형태는 무엇이냐는 모욕적이고 반인권적인 질문을 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26일 감염인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아이캅 공동행동 한국참가단은 급진적인 활동을 해온 액트업 파리(ACT-UP PARIS, 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와 에이피엔플러스(APN+, 아시아태평양 감염인 네트워크)와 국내의 감염인들과 함께 우리의 입장과 참가이유를 밝히는 선언대회를 진행하였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유엔에이즈(UNAIDS)의 에이즈 전략 “제로로 만들기(Getting to Zero, 신규감염 제로, 에이즈 관련 사망 제로, 차별을 제로로 만들기)”에 “진짜 제로를 위한 더 큰 목소리, 더 강한 행동(louder voices, stronger actions for ‘Real Zero’)”을 위한 입장을 밝혔다. 지속적인 치료와 감염인의 인권 증진만이 에이즈를 진짜 제로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위해 국제사회와 각국 정부의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사회적 취약그룹들이 빈곤과 질병의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 사회의 불평등을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된다고 이야기 하였다.
아시아태평양성노동자네트워크(APNSW)의 한 활동가는 아-태 회의 참가를 제한하는 한국의 입출국문제와 공항직원의 반인권적인 태도를 규탄하는 발언을 하였고, 이주노조 미셸 위원장은 입출국문제 뿐만 아니라 에이즈강제검진을 강요하고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등 이주민에 대한 한국정부의 정책은 매우 ‘후진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선언대회 참가자들은 개막식장에서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개막식 참여자들에게 환영한다는 인사를 할 때 감염인들을 차별하고 성노동자, 마약사용자 이었다는 이유로 입국금지와 비자 취소를 한 한국의 인권상황을 비판하는 배너와 팻말을 들었다. 그 과정에서 진수희 장관은 연설을 마치지 못하고 연단을 내려왔다. 우리가 개막식장을 나올 때 많은 활동가들이 큰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내주어 우리를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또 27일, 한국참가단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반대하는 평화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때 경찰은 활동가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하려 들었고 그 중 인권변호사를 연행하면서, 우리의 아이캅 활동은 경찰폭력대응에 초점이 맞춰졌다. 물론, ‘감염인들과의 만남의 밤’, ‘감염인 증언대회’, ‘질병관리본부 규탄’ 등을 통해 많은 감염인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였고 많은 감염인들이 우리의 활동을 지지해주었다.
더 큰 목소리, 더 강한 행동
제 10회 아이캅은 “다양한 목소리, 하나된 행동”이었다. 자유무역협정처럼 감염인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정부나 국제사회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를 억압하는 것이 다양한 목소리일 수 없다. 한국참가단은 HIV/AIDS 감염인을 비롯한 인권활동가들의 목소리를 감시하고 연행하는 한국정부의 행위를 비판하였다. 외국의 활동가들은 다른 나라에서도 보장된 행동과 목소리가 왜 한국에서는 억압되는지, 감염인을 비롯한 인권활동가의 입을 막고 어떻게 인권정책이 가능한지 되물었다.
이날 경찰폭력으로 한국참가단들은 국제 활동가들과 함께 경찰, 아시아태평양 에이즈학회(ASAP), 유엔에이즈, 아이캅 조직위에 감염인 인권과 참가자들의 인권 보호를 담은 요구안을 만들어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조직위와 유엔에이즈, 아시아태평양에이즈학회는 공개 사과와 함께 추후 참가자들에게 어떤 불이익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다음 대회부터는 경찰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제 10회 아-태 국제 에이즈 대회는 부산에 오기까지 갖은 인권적 굴욕을 당한 해외 참가자들과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평화시위에서의 경찰의 불법 채증 및 참가자의 강제연행의 상황들로 한국의 감염인 인권 현실을 말해주는 ‘반인권 컨퍼런스’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활동 속에서 감염인들과 국제 활동가가 함께 자유무역협정, 빈곤,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다양하고 하나된 행동과 목소리를 냈고 이 불평등한 사회를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목소리를 내면서 싸워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소중한 기회였다.
덧붙임
김정숙 님은 제 10회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대회 한국 참가단이며 나누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