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에이즈 예방, ‘실패’한 것은 무엇인가
한 남성 HIV/AIDS 감염인(아래 감염인)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여러 명의 여성과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밝혀진 후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다시금 확산되고 있다. 보건소에는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검사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나고 에이즈 예방 체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 와중에도 많은 언론들은 ‘감염인이 성적으로 문란하고 위험한 존재’라는, 에이즈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을 조장하며 사람들의 공포감을 부추기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다. 여성 속옷을 입고 있었다거나 성관계를 가진 여성 중 기혼 여성도 있었다는 등 에이즈와 직접 관련이 없는 특성들을 부각시켰고, 여러 명의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무차별적’이라거나 ‘무분별하다’는 등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데 급급했다. 수백 건의 기사들 중 전염 경로나 감염 확률 등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한 정보나 지식을 전달해, 불필요한 공포와 불안을 제거하려는 기사는 열 건이 채 되지 않는다. 부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공포가 편견에 기대어 번식할 때, 감염인에 대한 차별은 더욱 강화된다. 언론은 한국의 감염인 인권 현실을 후퇴시키는 선동을 그만두어야 한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에이즈 예방을 위한 최선의 길은 감염인 인권 증진이라는 주장을 귀담아 들어야 할 때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에이즈 예방체계가 감염인 인권 보장에 ‘너무’ 치우쳐 감염인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는 언론의 왜곡에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실패’는 감시의 부족이 아니라 감염인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통해 에이즈를 예방하려는 접근 자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감염인이 매우 특수하고 위험한 존재이고 에이즈는 우리의 일상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다루어질 때, 우리는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지식이라는, 예방의 출발선에조차 이를 수 없게 된다.
2007년 질병관리본부와 서울대병원이 수행한 <에이즈에 대한 지식, 태도, 신념 및 행태 조사>에 따르면, 70% 안팎의 한국인들은 키스를 하거나 변기를 같이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감염될 수 있다고 오인하고 있다. 하지만 에이즈의 원인으로 알려진 HIV는 감염경로가 명확히 밝혀져, 일상생활이나 단순한 신체 접촉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국인 네 명 중 한 명은 감염인과 집에서 함께 지낼 수 없으며 직장에서는 사표를 내도록 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인다. 세 명 중 한 명은 격리해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에이즈에 대한 오해와 감염인에 대한 차별이 견고하게 유지되는 동안, 우리는 정작 필요한 대안을 모색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에이즈 예방을 위해 ‘감시’가 필요하다면, 오히려 우리 모두의 지식과 태도, 행태를 ‘감시’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와 유엔에이즈는 ‘제 2세대 에이즈 감시체계’로 지역사회의 예방적 행태와 위험 행태를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에이즈에 대한 지식은 널리 알려지고 있는가, 에이즈에 대한 태도는 어떠한가, 에이즈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민감하며 감염인 인권에 대해서는 얼마나 성찰하고 있는가, 성관계에 대한 태도가 오히려 예방을 위한 조치들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가 등을 바로 우리 자신에게 묻는 것으로부터 에이즈 예방은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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