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누구의 질병인가?
전 세계 에이즈 감염 인구 3천 3백만 명. 에이즈만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질병도 없을 것이다. 에이즈는 죽음의 질병, 부도덕한 질병이라는 오명으로 발병 초기부터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다. 그 후 의약품의 발전으로 죽음의 질병에서 만성질환으로 변모했고 사실상 일상적 접촉을 통해서는 전혀 전염 가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공포는 현재까지 감염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 붙어 사회적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에이즈는 빈곤의 질병이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많은 인구들이 에이즈로 치료받지 못하고 의약품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으며 이런 국가들의 에이즈는 국가경제에 악 영향을 미칠 정도의 수준이다.
에이즈는 특히 사회취약계층들을 공격하는 질병으로도 악명이 높다. 질병 자체가 취약계층에게 많이 발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어떤 사회취약계층을 에이즈위험집단으로 여긴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한국사회에서는 남성 동성애자, 성노동자, 이주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에이즈와 성소수자
한국에서 에이즈 감염은 90% 이상이 성 접촉에 의한 것이다. 감염인의 절대 다수가 남성들이고 감염 경로 중 동성 간 성접촉이 많아 정부나 연구자들은 남성동성애자들을 에이즈 감염 위험이 높은 집단으로 보고 있다. 이에 에이즈관련 공공기관들은 남성동성애자를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콘돔을 배포하는 사업이나 업소를 상대로 한 예방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예방에는 매우 미흡한 수준이며, 동성애와 에이즈를 부도덕하고 공포스럽게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차별을 더욱 조장하는 영향을 미친다. 그 단적인 예가 지난해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 대해 보수우익단체들이 항의하며 낸 신문광고면의 카피다. ‘<인생은 아름다워>보고 게이 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며 SBS 책임져라!’라는 신문광고는 동성애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런 복합적인 차별은 동성애자-감염인들을 사회에서뿐만 자신의 동성애자 그룹 내에서조차 배제시키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동성애자와 에이즈 감염인 대한 사회적 차별들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에이즈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에이즈와 성노동자
에이즈감염이 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할 당시, 한국 정부는 에이즈감염이 우려되는 집단으로 외국인과 성노동자를 꼽았다. 특히 성노동자들은 외국인과의 성 접촉이 잦아 감염 위험이 매우 높다고 여겨졌고 이전부터 성병검사를 정기적으로 그리고 강제적으로 진행하고 있어 에이즈검사도 어렵지 않게 진행했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초기 감염인에는 여성-성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성노동자들의 성병을 비롯한 에이즈감염은 성구매자에 의해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성노동자는 성병과 에이즈 전파자로 낙인 찍혀 있으며 감염과 동시에 공포와 죽음의 질병을 전파하는 가해자(법적용어로는 ‘전파매개자’)로 여겨져 처벌받게 된다. 이에 언론에서도 성노동자-감염인을 의도적이고 상습적으로 에이즈를 전파하는 ‘범죄자’ 취급하는 기사들을 접할 수 있다. 또한 성노동자는 성매매특별방지법으로 인해 ‘범죄자’ 혹은 ‘피해자’ 이 두 가지 지위 외에는 가질 수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성노동자에 대한 에이즈검사는 가능하겠지만 예방은 불가능해 보인다. 성판매를 둘러싼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건강권을 비롯한 다양한 권리들이 보장될 때, 비로소 성노동자들의 성병과 에이즈에 대한 예방도 가능할 것이다.
에이즈와 이주민
에이즈는 외국에서 유입된 질병으로 특히 외국인에 의한 감염공포로 이어진다. 이는 특히 이주민들에게 HIV(에이즈) 검사서를 강요하거나 감염인에 대한 입출국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에이즈감염 외국인 600명을 출국조치 시켰는데, 이는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거주이전의 자유,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한 것이다.
에이즈와 빈곤
에이즈감염인을 대상으로 한 2005년도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를 보면, 에이즈감염인의 소득이 월 50만 원 미만인 경우가 64.4%나 되고 현재직업을 묻는 질문에 ‘무직’이 44%다. 이 조사 결과는 에이즈 감염이 경제적 빈곤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일상적 접촉으로는 전염성이 없는 질병임에도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공포가 매우 높아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로 이어진다. 이런 사회적 차별은 자발적이든 아니든 기존의 직장을 그만두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노출 위험에 대한 공포나 타인에 의한 노출 때문에 가족이나 사회적 관계망으로부터도 멀어지게 된다. 이로 인한 심리적 고립감이나 자책감으로 자기파괴나 자살을 하는 경우들도 있다. 이처럼 감염인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지 확대 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별에 대한 개선, 사회적 관계망의 복원/재구성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린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8월 24일~30일, 부산 벡스코에서는 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n AIDS in Asia-Pacific: ICAAP, 아이캅)가 열린다. 유엔에이즈와 아시아․태평양에이즈학회가 주최하고 보건복지부가 후원하는 이 국제학술대회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에이즈관련 학자들과 다양한 취약계층 관련 사회운동단체, NGO들이 함께 모여 진행하는 학술대회로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방식이다. 에이즈 감염인 당사자 그룹을 비롯해 관련 취약 계층인 LGBT, 성노동자, 이주민, 청소년, 빈곤계층 그룹들이 함께 한다.
그렇다고 이 대회의 모든 발표내용들이 에이즈감염인의 권리 신장에 좋기만 한 것 같지는 않다. 국가들이 민감해 하는 이슈들인 인권, 빈곤, FTA, 의약품접근권 등과 같은 이슈들은 적극적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다양한 소수자 그룹들이 이번 대회에 참여한다. 대회의 안팎으로 국내외 소수자 그룹들과 에이즈라는 이슈를 함께 논의하는 자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에이즈감염인, LGBT(성소수자), 성노동자, 이주민, 청소년, 여성, 빈곤 부문의 사회운동 단위들이 함께 만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에이즈’라는 공통의 고민꺼리를 통해 에이즈 대회의 본 무대가 아닌 무대 뒤편에서 이들은 처음으로 만나 소통의 가능성을 펼치고 있다.
* 한국의 LGBT(성소수자), 성노동자, 이주노동자, 청소년, 여성 부문의 사회운동그룹 등 다양한 소수자운동그룹들은 함께 연대하여 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 기간 동안 에이즈 감염인을 비롯해 다양한 소수자들의 권리를 요구하며 다양한 목소리로 다양한 행동들은 계획하고 있다.
덧붙임
슈아 님은 제10회 아이캅 공동행동 참가단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