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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죽음을 기억하라

에이즈 감염인으로 산다는 것

[기획] 죽음을 기억하라 (1) HIV/AIDS 감염인

[편집인주] 모든 죽음은 산 자들에게 안타까움을 남기지만 어떤 죽음은 산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 이런 죽음은 죽은 자가 의도했든 아니든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남긴다. 생물학적 죽음을 수반하지는 않더라도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사실상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사회적 죽음도 있다. 죽음마다 다양한 사연이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죽음을 부르는 한국사회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죽음이 계속되리라는 점이다. <인권오름>은 노무현 정권 시기인 2003년부터 최근까지의 죽음 가운데 점점 잊히고 있지만 산 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죽음을 기록함으로써 한국사회 인권의 현실을 점검한다.


2007년 2월 초 대구의 한 여관에서 쓸쓸한 주검이 발견됐다. 50대 김 아무개 씨가 유서를 남겨놓고 스스로 목을 매 숨진 것이다. 어린 시절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아 고아로 자랐다는 김 씨는 3년 전 HIV 감염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러나 주변에 HIV 감염 사실이 알려지면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외면과 따가운 시선으로 인해 결국 죽음을 선택했다. 유서에는 자신의 시신을 발견하면 조심해서 다뤄달라고 해 주위를 더 아프게 했다.

누가 김 씨를 쓸쓸한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질병 중 하나로 에이즈를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HIV가 알려진지 27년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에이즈에 대한 인식은 ‘공포’와 ‘더러운 병’, ‘문란한 병’의 굴레를 벗어 버리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사회적인 제약과 지원의 미비로 감염인들은 쉽게 양지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05년 연구용역보고서 ‘HIV 감염인 및 AIDS 환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HIV 감염인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자살이다. 감염인의 자살률은 국민 전체의 자살률 보다 무려 10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필자가 일하는 카노스(KANOS)의 상담전화에도 죽고 싶다는 감염인의 상담이 자주 들어온다.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 한쪽이 매우 무거워진다. 홈페이지에 자주 접속하던 회원이 접속횟수가 뜸해지면 괜히 걱정부터 앞선다. 왜 이들은 죽음을 고민하고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2004년 12월 1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HIV/AIDS 감염인 인권 사망 선고 기자회견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2004년 12월 1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HIV/AIDS 감염인 인권 사망 선고 기자회견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차별의 중심, 에이즈에 대한 편견

우리 사회에서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차별의식은 매우 공고하다. 이러한 차별의식은 편견으로부터 비롯되는데, 이는 질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다른 질병과 다르게 에이즈는 질병의 원인을 찾고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알리기 전에 모든 책임을 남성 동성애자들에게 돌리며 출발했다. 그러다보니 동성애자가 아닌 사람들은 에이즈를 나와 상관없는 질병쯤으로 여기고 되고 여기에 ‘성(性)적으로 문란하면 걸리는 질병’이라는 낙인까지 덧씌워졌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다 보니 나와 같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조차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그동안 쌓아왔던 삶에 대한 애착과 나에 대한 자긍심은 쉽게 무너지고 만다. 자신에 대한 혐오는 끝이 없고 혹부리영감의 혹처럼 죽음이라는 단어는 삶이 지속되는 한 떼려야 뗄 수 없는 무거운 짐이 된다.

인권관점이 부재한 정부의 에이즈 예방정책

에이즈에 죽음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하고 감염인조차 자유롭지 못한 편견을 조장하는 데에 한몫한 것으로 정부의 에이즈 정책을 빼 놓을 수 없다. 정부는 에이즈 예방이라는 미명아래 감염인의 인권을 무시한 정책으로 일관해왔다. 대표적인 예로는 1987년에 만들어진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일 것이다. 이후 몇 차례 개정되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이 법은 감염인을 전파의 매개자로 보고 ‘관리, 격리’하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법령과 정책으로 인해 감염인에 대한 불평등한 사회의 인식이 형성되기도 했으며, 편견을 고의적으로 조장하기도 했다. 또한 비감염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명과 안위를 위해 감염인을 차별하는 것이 당연한 조치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다.

HIV/AIDS 감염인은 질병을 알게 된 시기부터 지역보건소와 의료인, 정부의 관리를 받아야 하는 두려움을 겪게 된다. 질병을 추스르기도 전에 정부의 관리 정책 안에서 관리되는 하나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감염 원인을 찾는다는 핑계로 실시되는 역학 조사는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성정체성과 성관계 이력을 모두 밝힐 것을 요구한다. 감염사실을 확인 받는 순간부터 감염인들은 국가 관리를 받게 되고, 내가 감염되었다는 사실이 노출될까봐 전전긍긍하며 살게 된다.

정부의 이러한 관리정책은 과감하게 수정되어야 될 것이다. 그리고 남성동성애자와 같이 이른바 ‘취약그룹’에 대한 집중관리가 에이즈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감염인의 인권증진이 에이즈 예방의 기초’임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한다. 유엔에이즈(UNAIDS) 역시 HIV/AIDS에 대한 적절한 사회적 대책 마련을 저해하고, 확산을 부추기는 주요 요인으로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인권에 기반을 둔 HIV/AIDS 치료 및 확산 저지에 대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는 감염과 동시에 일어나는 인권유린이 감염을 확산시키는 주범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HIV/AIDS는 이제 ‘질병의 위기’가 아니라 ‘인권의 위기’이며, 인권의 시각이 없이는 질병에 대한 예방조차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12월 1일은 ‘세계에이즈의 날’이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는 그동안 그래왔듯이 다시 한번 에이즈 예방과 인권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감염인들에게 12월 1일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 경제적인 어려움과 질병으로부터 오는 고통으로 인해 12월 1일이 누구의 날이든 상관없어 할 지 모른다. 감염인에게 필요한 것은 12월 1일에 외치는 에이즈 편견, 차별 방지의 일회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는 감염인의 권리증진이다. 더 이상 감염인이 이 사회의 차별 속에서 죽어가지 않도록 모두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덧붙임

◎ 강석주 님은 한국 HIV/AIDS 감염인연대 KANOS 사무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