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국민 발의권과 소환권의 보장 요구에는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던 언론이 이러한 요구를 담은 용지를 투표함에 넣는 행위만을 유독 문제삼으며 연일 선정적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을 전제로 용지를 넣는 행위의 불법성만이 부각되는 사이, 발의권과 소환권에 대한 요구가 가진 애초의 의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법치'의 이름으로, '신성한 선거'의 이름으로 지금 언론이 선거만을 유일한 주권 행사의 통로인 양 주술을 되뇌는 것은 확장된 주권의 행사를 꿈꾸지 못하도록 국민들의 의식을 결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우리는 선거권이 수많은 피와 땀을 흘려 얻어낸 소중한 결실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운동도 선거권에 대한 존중에서부터 출발한다. 만약 투표함에 다른 용지를 넣는 행위가 국민의 선거권을 침해한다면 당연히 중지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조작된 투표용지가 투입되거나 다른 이들의 투표용지를 훼손시키지 않는 다음에야 개표와 동시에 분리 폐기될 용지가 어찌 다른 이들의 선거권 행사를 침해하고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는가. 언론의 호들갑이나 선관위, 법무부의 엄포는 마치 시험 답안지와 함께 다른 시험 방식도 가능하다고 제안하는 종이를 한 장 더 제출하는 학생에게 공정한 시험을 방해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용지를 넣는 이 작은 행동에는 큰 의미가 담겨있다. 용지 넣기는 몇 년만에 찾아온 유일한 주권 행사의 순간에 이제 곧 주권자의 자리를 박탈당해야 하는 국민들의 어이없는 처지를 상징적으로 고발한다. 주권은 일상적으로 행사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 용지를 넣는 작은 행동에서부터 주권자에서 통치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악순환에 대한 직접적인 거부가 시작된다. 국민이 주권자임을 드러내는 투표용지는 '수치'로 환산된 후 곧장 쓰레기통에 처박힐 것이지만, 그보다 일찍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이 요구를 담은 용지는 오래도록 남아 정치적 울림을 갖게 되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엄밀히 말해 요구 용지가 투표함에 들어가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격이다. 그러나 이 '잘못 배달된 용지'는 모두가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주권이 국민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행사될 수 있는 제도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용지가 제대로 배달되기를 원한다면 발의제와 소환제를 시급히 도입하면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권리를 해치지 않는 한, 투표함에 다른 용지를 넣는 행위도 표현의 자유의 일환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 2553호
- 2004-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