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고군분투가 안쓰럽다.
의문사위는 지난 7월2일, 1970년대 강제전향 공작과정에서 숨진 비전향 장기수 3명에 대해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위법한 공권력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며 의문사로 인정했다.
비전향 장기수들이 남파간첩, 빨치산이라는 사실은 '예상 가능한' 반발을 샀다. 가장 즉자적인 반응은 보수단체들의 집회였다. 이미 6월30일로 활동을 마친 의문사위 앞에서 의문사위 해체를 주장했고, 분단의 또 다른 '희생자'를 자임하던 북파 공작원들은 "의문사위는 전원 할복 자결하고, 비전향 장기수의 유해를 부관참시하라"는 극언을 퍼붓기도 했다.
보수 언론은 비교적 점잖게 '법리논쟁'을 중계하고 있다. 여러 외부 기고글과 칼럼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들의 주장은 몇 가지로 모아진다. 가장 거친 주장은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국법준수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논리다. "빨갱이는 고문해도 된다"는 1990년대 한 장관의 저열한 인식수준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 의문사위의 논리적 오류를 주장하는 이들은 "비전향 장기수들이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죽임을 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화운동에 기여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이들의 죽음이 가혹한 전향공작에 굴하지 않은 양심적인 죽음으로는 볼 수 있다하더라도, 민주화 운동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민주화운동은 단순히 권위주의 체제에 저항했다는 의미를 떠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핵심요체는 개인이 갖고있는 내심의 자유를 인정하고 관용의 미덕을 발휘하는 일이다. 수많은 비전향 장기수들이 머리 속에 들어있는 생각까지 바꾸려는 야만적인 전향공작에 맞서 죽어갔고, 이들의 싸움 덕에 국제적인 망신을 샀던 사상전향제가 폐지됐다.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다른 일부에서는 "엄연히 실정법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법 테두리 밖에 있는 이들의 활동을 민주화운동으로 간주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다른 체제에서 왔다고 이들의 행위와 목숨에 차별을 두는 이분법이 무섭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과연 완결됐다고 보는지 묻고싶다. 이들에게 민주화 운동은 '권위주의 체제에 저항한 운동'이라는 단순한 의미이며, 이미 과거형이다. 민주화를 '기념'하는 단체가 만들어지고, 민주화운동 관련자의 '명예'를 회복해준다고 해서 민주화가 완성됐다고 보는 것일까.
한총련 학생들은 수배와 구속을 반복하고 있고, 37년만에 고국을 찾은 송두율 교수는 1평 감방에 갇혀있다. 인터넷에 공개된 문건을 보고, 서점에서 팔고있는 책을 사다 읽은 대학생들이 '이적표현물 소지'로 구속되는 세상이다. 내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폭력은 197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군인 독재가 끝나고 삼청교육대가 사라졌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민주화운동을 '제대로' 해석한 의문사위를 공격하는 독선과 아집이 섬뜩할 따름이다.
◎최혜정 님은 <한겨레21> 기자입니다.
- 2608호
- 최혜정
- 2004-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