삔 발목 때문에 한동안 걷는데 매우 고통스러운 적이 있었다. 어리석게도 내가 아파 봐야 남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는지, 우리사회에서 '이동권'을 향유하기 어려운 사람에 대한 관심이 통증에 비례하여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하철에 있는 그 무수한 계단들, 높디높기 만한 버스 승차대를 마주하면서 '무표정' 한 사람들의 시선 속에 감춰진 '폭력'을 읽는다면 지나친가?
며칠 전, 행사준비로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현수막 가게를 가던 중 어처구니없는 경험을 했다. 계단을 이용하기 힘들었던 나는 당연히 현관 1층에서 승강기로 발길을 옮겼다. 아뿔사! 승강기에는 '절전을 이유로 2층은 운행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는 게 아니던가. 할 수 없이 그 건물 2층에 위치한 현수막 가게를 가기 위해 계단 손잡이에 몸을 의탁해 계단을 오르고 내렸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2층은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미덕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편으로 에너지 절약을 이유로 승강기 2층 운행을 금지하는 것은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가 '비장애인'임을 전제로 한 발상이어서 씁쓸해진다.
건축법에 따르면, 지상 6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때는 반드시 승강기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승강기는 비장애인들이 쉽게 건물을 오르내리도록 돕기도 하지만, 장애인을 비롯해 노인, 임산부 등 흔히 이동약자라고 불리는 사람이 이동할 수 있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 수단에 자의적인 용도변경이 쉽게 이루어진다면, 애초 승강기는 자기 역할의 반쪽만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승강기는 2층까지 거뜬히 걸어 올라갈 수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1층부터 승강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건물 앞 계단 옆에 깍아질듯한 급경사로 만들어 놓은 길이 '조형물'인지 '휠체어 이용길'인지 햇갈리는 상황, 절전한다고 운행하지 않는 승강장 옆에서 계단만 멀뚱멀뚱 쳐다봐야 하는 현실. 편의시설은 장식물이 아니다. 폼으로 만들어 놓은 편의시설 앞에 다시금 '이동권'이 무색할 따름이다.
- 2618호
- 최은아
- 2004-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