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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자의 눈> '국보법 폐지 반대'의 어두운 그림자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원한이여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때아닌 군가가 서울시청 앞에서 울려퍼졌다. 십만 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도심에서 소리 높여 부르는 군가에 기억의 한 귀퉁이에서 끄집어낸 흑백필름 같은 '반공궐기대회' 한 장면이 떠올랐다.

4일 서울시청 앞에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아래 한기총)가 주최한 '대한민국을 위한 비상구국기도회'와 반핵반김국민협의회가 주최한 '국가보안법 사수 국민대회(아래 국민대회)'가 잇달아 열렸다. 비상구국기도회에서는 '국가보안법(아래 국보법) 폐지 반대'와 '한미동맹 강화' 발언들이 쏟아졌다.

한기총 조용기 회장은 "국보법이 폐지되면 간첩들의 천국이 되고 공산화된다"며 "목숨 걸고 국보법을 지켜야 한다"고 선동했다. "국보법은 잘 모르겠고, 그냥 경제가 어려워 구국기도회에 참가했다"고 밝힌 한 참가자는 이러한 조 회장의 발언에 연신 성조기를 흔들어댔다.

대형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등장함으로써 시작을 알린 국민대회에서는 '국보법 폐지'에 대한 더욱 강도 높은 비난의 발언들이 이어졌다. 이상훈 재향군인회장은 "국보법이 싫으면 북한으로 넘어가라"고 월북을 '고무·선동'했고,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는 "인권은 간첩과 불순분자들의 편리를 위한 것일 뿐"이라며 "오히려 국보법을 현실에 맞게 강화해야 한다"고 '마녀사냥'을 주문했다.

집회에서는 보수언론들의 보수대중 '장단 맞추기'도 빠지지 않았다. 자유시민연대 조남현 대변인은 <자유시민저널>을 통해 "차라리 유신으로 돌아가자"고 독재체제로의 회귀를 부추겼고, <월간조선>도 "우리도 무기를 들어야 한다"는 선정적인 문구로 '봉기'를 선동했다. 남·북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나눈 <월간조선>식 '진실의 무기' 선동에 일부 참가자들은 경찰들 앞에서 '무기 약탈'을 외치며 화답하기도 했다.

집회참가자들은 '청와대 진출'이 경찰들로 인해 좌절되자 경찰력과 노무현 정부에 대한 적개심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북파공작원(HID)'은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경찰저지선을 교란시켰고 군복을 입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목숨 걸고' 싸우는 듯 했다. 경찰들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은 '진짜 사나이'를 연신 부르며 강하게 저항했고, 곳곳에선 "(경찰들) 총으로 다 쏴버려" "노무현 죽여라" 등의 살기등등한 외침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한 참가자는 "전경들도 모두 '주사파'라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수 만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대며 한 목소리로 군가를 부르는 모습에서는 민주주의의 원칙인 '다름과의 공존'을 허용하지 않는 파시즘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