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일하다 다쳐도 쉿!

근골격계 직업병 승인받기 어려워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산재신청 괜히 했어요. 수개월 치료받았는데 몸은 좋아지지 않고, 관리자에게 미운 털 박히고, 동료와는 서먹하고… 다시 현장에서 일한다는 생각을 하니 막막하네요."

근골격계 직업병을 앓고 있는 노동자의 말에서는 산재노동자들이 치료에서 작업장으로 복귀하기까지 겪게 되는 어려움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결국 지난 5일에는 이러한 정신적 고통과 어려움에 시달리던 한 노동자가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든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근골격계질환 업무 관련성 인정기준 처리지침(안)'(아래 처리지침)은 뼛골 빠지게 일하다 병든 노동자들에게 산재 치료조차 어렵게 만들고 있어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해 왔다. 12일 '근골격계직업병 인정기준 폐기와 산재보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아래 투쟁위)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는 노동계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근골격계질환센터 임상혁 소장은 "정부의 처리지침은 근골격계 직업병을 인정하는 기준이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권을 제한하는 기준"이라고 비판했다. 처리지침에 따르면 '퇴행성 근골격계질환'은 직업병 인정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근골격계질환은 단순반복작업을 지속적으로 하다 생기는 누적된 질환으로 질환 자체가 '퇴행성 질환'이라는 것이다. 또한 근골격계질환이 올 수 있는 업무의 범위를 과도하게 축소하고 있어 노동자들이 아파도 산재 인정을 받기 쉽지 않다. 지난 7월 도시철도 공사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 3명이 근골격계질환을 호소, 산재 신청을 했지만 노동부가 고시한 '11개 근골격계 부담작업'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0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또한 근골격계질환자에 대한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아 요양 기간이 장기화되고, 이로 인한 우울증 등으로 심리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정부의 처리지침은 오히려 치료기간을 일괄적으로 산정하고 있다. 민주노총 금속연맹 박세민 산업안정국장은 "산재 보험료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병 상태나 치료방법과 상관없이 부위에 따라 치료기간을 정하는 것은 근골격계질환을 앓고 있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욱이 정부의 처리지침이 산재보험의 민영화라는 경총의 시나리오 속에서 진행되고 있어 노동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에게 처리지침에 대한 문제점을 교육하고 지역별로 근로복지공단 항의 방문을 진행해 왔으며, 전국노동자대회 전날인 14일에는 정부의 처리지침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할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참석하지 않았다. 노동부는 "내부지침으로 마련한 것인데 공개적인 토론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근로복지공단은 "노동부가 불참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참석하겠냐"며 토론회 참석을 거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