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다산인권센터, 민주노동당, 인권운동사랑방, 전교조실업교육위원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지난 14일 '교육이라는 이름의 기만과 폭력 - 간접고용 현장실습 인권실태조사결과 발표회'를 가졌다. 이번 실태조사는 지난 8월부터 5개월 간 이루어졌다. 현장실습 36명을 만나 직접 들은 살아있는 경험담, 실업계고 취업게시판과 교육청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얻어낸 자료가 주요 분석 대상이 됐다. <인권하루소식>은 간접고용 현장실습의 주요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현장실습제도가 실습생의 인권을 담보로 '실습생 장사'에 나선 업체들의 이윤만 불려주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실업계고 고3학생들은 직업교육훈련이라는 명분으로 짧게는 34시간, 길게는 6개월까지 현장실습을 나간다. 특성화학교나 규정을 무시한 몇몇 학교에서는 3, 4월부터 실습생을 산업현장으로 내보낸다. 이 가운데 '간접고용 현장실습'이란 인력파견업체, 용역업체, 사내하청 등 중간업체를 통해 현장실습을 나가는 경우를 말한다.
"어디서 어떻게 일하는지도 몰랐어요"
간접고용 형태의 현장실습생들은 미리 일하게 될 회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조건으로 일하게 되는지 등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갖지 못한 채 실습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간업체들이 업체 성격이나 자세한 조건을 밝히지 않은 채 학교로 실습의뢰서를 보내고, 학교 역시 별다른 검증절차 없이 실습을 내보내기 때문이다.
"학교 직업보도실에서 실습업체로 소개된 (주)대륙테크를 봤어요. 처음에는 제조업체라고 생각했어요. 이름부터 그렇잖아요, ○○테크! 전공이 기계 쪽이니까 관련있는 업체겠다 싶었어요. 나중에 그게 인력파견업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ㄱ전자고, 박○○)
이에 따라 실습생들은 실습을 나가고 나서야 어디에서 어떻게 일하게 되는지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광주 ㄱ공고의 김모 씨는 학교 정문 앞에서 친구들 15명과 함께 '아이웍'(I-Work)이라는 인력파견업체가 보내온 봉고차에 몸을 싣고 경기도 시화공단까지 가서야 자신이 일할 곳이 '삼립식품'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공장 정문 앞에서는 전국 곳곳에서 인력파견업체 버스에 실려온 실습생이 30-40명 가량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주야2교대가 기본 근무 형태라 밤 8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12시간 일해야 하는지도 그때서야 알았다. 충북의 한 실업계고 교사도 학생들이 실제로 어디에서 일하는지도 모르고 연락할 방도가 없어 시험일정조차 전달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약속 위반에 서약서 강요까지
"야간근무를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어요. 담임선생님은 주5일 근무라고 얘기 했었는데, 막상 와보니까 아니었어요. 주야 2교대였고, 일주일에 하루 주야 근무조 바뀌는 날만 쉬는 거예요." (C고, 진○○)
"협약서에는 야간 없고, 하루 8시간 근무라고 되어 있었는데 완전 거짓말이었어요. 잔업도 강제고…. 기숙사라고 갔더니 여관 같은 방 하나에 TV 한 대, 옷장 1개 달랑 있었어요." (L고, 강○○)
이렇게 실습생을 데려가면서도 중간업체들은 현장실습협약서도 체결하지 않았고, 원래 약속을 뒤집기 일쑤다. 말할 때마다 임금 액수가 달라지고, 주5일 근무가 주7일 근무로 바뀌고, "잔업·특근 선택"이 "잔업·특근은 기본"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규제할 방안이 마땅하지 않다. 직업교육훈련촉진법과 교육부 훈령인 '각급학교현장실습에관한규칙'에서는 실습을 시작하기 전에 학생-업체-학교 3자가 참여한 가운데 자세한 실습조건을 명시한 현장실습협약서를 작성하게끔 하고 있지만, 협약서를 쓰지 않거나 약속을 어길 경우 불이익을 주거나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삼성반도체 아산탕정공장에서 청소용역을 담당하는 한 용역업체는 실습생에게 위법한 서약서를 강요하기까지 했다. '실습생의 실수로 다치게 되면 산업재해 보험처리를 못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일단 실습생부터 모아놓고 일자리가 나면 실습생을 내보내는 경우도 있다. 학교 서류상으로는 이미 실습을 나간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 실습생들은 집에서 파견업체로부터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워낙 많은 파견업체들이 실습생들을 '노리고' 있다 보니 일단 선점부터 해놓고 보는 것이다.
얼굴 한번 안비치고 중개수수료만 챙겨
"그 사람(파견업체 직원)이 말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온다고 해놓고 거의 온 적이 없어요. 그러면서도 뭐라고 그랬는지 아세요? 수시로 와서 잘 하고 있나 볼 테니까 조심하라고 그러는 거예요." (○고, 방○○)
학교를 대신하여 '실습업체'가 실습생들의 인권과 교육을 책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간업체들은 실제 사용업체에 실습생을 떠넘기고 나서는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집과 학교를 떠나 낯선 지역으로 처음 실습을 나온 학생들은 보호막이나 지지자는커녕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교육과는 거리가 먼 장시간노동/중노동/위험노동을 강요받으며 생활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이들 중간업체들은 간신히 최저임금 수준에 턱걸이하고 있는 실습생들의 임금에서 꼬박꼬박 중개 수수료를 챙겨가고 있었다.
'서류상 실습업체'와 '실제 사용업체'가 다르다 보니, 실습생들은 부당한 일을 겪고 나서도 어디에다 시정을 요구해야 할지 몰라 혼란을 겪는다. 사용업체에 불만이 있어도 잘릴까봐 얘기도 못하고, 그렇다고 단지 소개만 해준 파견업체에 얘기해봤자 소용이 없으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다.
실습생들에게 눈독 들이는 이유
"한 마디로 팔려가는 거잖아요. 부려먹기 쉽고 말 잘 들으니까. 자를 때도 실습생부터 자르고, 대충대충 해줘도 되고…." (S고, 황○○)
결국 간접고용 형태의 현장실습은 실습생들의 불리한 지위를 악용한 중간업체들의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다. 실습생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사용업체에 실습생을 소개해준 대가로 중간에서 돈을 받아 챙기면서 쉽게 이윤만 불리고 있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간접고용 실습생들은 3중의 취약성 속에 놓이게 된다. 청소년이라는 연령적 취약성,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실습생이라는 신분적 취약성, 그리고 간접고용 노동자라는 신분적 취약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구조적으로 강제된 취약성이야말로 중간업체들이 실습생에게 눈독을 들이는 진짜 이유이다.
실습생 중 최대 절반에 이르러
이처럼 중간업체를 낀 간접고용 현장실습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일선학교 단위에서 실습업체를 걸러내는 여과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학교는 업체들의 성격을 구분조차 하지 않고 있었고, 중간업체를 가려낼 기본 정보마저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간접고용 현장실습이 어느 정도로 확산됐는지를 살필 만한 기초 자료조차 정리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이번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아래 네트워크)의 조사로 부분적으로나마 그 확산 정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네트워크가 전국 실업계 고등학교 713개교 가운데 홈페이지 취업게시판을 운영하고 있고 외부 접근을 허용하고 있는 67개교를 분석한 결과, 2004년 2월부터 올 8월까지 간접고용 형태의 현장실습을 요청받은 학교는 54개교(81%)에 달했다. 업체수로는 61개 업체, 의뢰건수로는 105건에 달했다. 그만큼 간접고용 현장실습에 노출돼 있는 학교가 많은 셈이다.
대표적인 예로 강원도 삼척전자공고와 영월공고의 경우, 지난 한해 간접고용 형태로 실습을 나간 비율이 각각 48.7%와 33.0%에 이르렀다. 전남 순천공고의 경우, 지난해 간접고용 실습생 78명 가운데 단 1명만이 실제 취업으로 연결됐다. 그만큼 중간업체들이 임시 소모품으로 현장실습생을 이용하고, 실습생들도 계속 취업을 바라지 않을 만큼 열악한 조건에 놓이에 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 호에서는 중간업체로부터 실습생들을 넘겨받은 업체들이 강요하고 있는 착취적 수준의 노동조건을 살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