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ㄹ' 하나의 차이
상신: 두발자율화는 크게 학생회가 결정하도록 하자와 학생/학부모/교사의 의견까지 반영해 결정하자는 의견으로 나뉘고, 강제 규정을 둬선 안된다는 두발자유화 주장이 있어요. 제 입장은 완전 자유에요.
웅용: 깊이는 고민 못했지만 학생, 부모, 교사 3주체에게 맡기자는 건데, 현재 조직은 어용이니까 안되고 법제화해서 조직을 강화한 후 자율로 결정하게 하자….
아라: 학생회가 학생 의견을 수렴해서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 규제를 원하는 친구도 있으니까 두발자유를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야죠.
누리: 자유화가 원칙인데 섬세한 접근이 필요해요. 그치만 학생회에서 결정하게 하는 건 부작용이 있어요. 오히려 두발규정을 부활시키자 이런 결정도 나올 수 있으니까.
#두발자유 뭐가 두렵지?
상신: 얼마 전 온 국민이 분노한 ‘노예 할아버지’를 보면, 일상적으로 기본권을 빼앗겨 왔기 때문에 무감각해져 있어요. 학대와 폭력에 방임되어 있으면 판단이 무감각해지는 거죠. 학생들이 두발자유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이 이 할아버지와 흡사해요. 자유가 두려운 거요. 이런 상태에서 학생회에 위임하자는 거 안돼요. 5.14처럼 대중조직화가 필요해요. 그러고 나서 그 친구들이 학생회에 진출해야 해요.
경내: 맞아요. 두발규정을 없애는 데 대한 대중적 공포가 있어요. 마산 합포고도 그렇잖아요. 선생님들이 교칙에 대한 인권적 분석도 하고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건 좋은데, 학생 간부수련회에서 결국 두발규정 존치를 결정했어요. 무엇이 두려웠을까?
아라: 학교 질 떨어진다고 주의 시선을 의식하니까….
누리: 두발규제 풀리면 학교 무너진다, 교사보다 학생 머리가 길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어요.
아라: 아예 어떤 선생님들은 자기도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니고 염색도 안해요. 학생들이 선생님도 머리 길잖아요, 그러니까.
#학생회가 두발규정 정하자고?
웅용: 많은 사람들을 설득시켜야 하는데, 방법적으로 어떻게 할 거냐가 문제겠죠. 선명하게 하느냐 유연하게 하느냐는 차이…. 완전 두발자유는 선명하지만 많은 이들을 설득하기 어렵죠. 학생회 강화해서 학생 설득해 나가야죠. 학생조차 설득 못하면서 교사 설득? 물 건너간 거죠.
상신: 신체, 종교 자유는 기본권인데 학생회가 다수결로 정할 수 있나요? 학생회 자치권도 중요하지만….
아라: 학교 밖에서의 운동도 중요하지만 학교 안에서 이렇게 바꿔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학생회에 권한 주면 학생들이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주위 친구들에게 문제제기 하지 않을까요? 대중운동도 필요하지만 학교 안에서 밖으로 나오기 힘들거든요.
경내: 학교 안밖의 운동 모두 중요하겠죠. 누구에게는 학교 안이 편할 테지만 누구에게는 학교 안이 더 천리만리 멀게 느껴질 테니 개인차도 인정해야 하구.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결혼하기 전에 연애는 몇 번 해야 한다, 뭐 이런 걸 정해놓는 법률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머리모양, 색깔, 길이를 다른 누군가가 결정한다는 거 자체가 너무나 웃긴 거 아닌가? 이건 다수결에 맡길 게 전혀 아니라는 거, 결정의 테이블에 올라가서는 안될 사안이라는 거죠.
웅용: 핵심은 방법이 뭐냐,는 거죠. 상신씨는 기존 학생회를 부정하는 것 같은데…, 학생회를 이용하는 게 더 영리한 것 아닌가?
상신: 학생회 버리자는 게 아니라, 신체의 자유는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는 권리잖아요? 조정할 수 있는 부분과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가정폭력을 가정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내버려둘 수 없는 것처럼, 두발규정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학생회가 두발규제를 침해라고 해놓고 자기가 조정해서 규정을 만들면 스스로에 대한 모욕이죠.
웅용: 교사, 학부모 설득시키려면 이들을 회의테이블로 끌어들여야 해요. 그들을 설득시키는 게 험난하긴 하지만, 학생회, 교사회, 학부모회 이렇게 점진적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누리 : 글쎄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한다는 게 너무 지리멸렬하지 않나. 1명이 8-9명을 상대할 수 있나요? 오히려 학교 밖으로 나와서 전교조나 교총을 설득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상신: 모든 사람들을 설득해야 변화가 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변화가 와도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요. 설득도 중요하지만요, 변화를 만들어내는 걸 미뤄선 안돼요.
#다수결과 인권의 출동
경내: ‘교육 3주체’라는 덫이 학교 변화의 발목을 너무 오래 잡아왔다고 봐요. 그들이 결정할 수 없는 것까지 결정해왔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많이 쏟아져 나와야 해요. 두발문제도 학생회가 정할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몫이라고 말해야죠. 완전 자유를 강하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야 두발자유운동에도 불이 붙을 수 있어요. 마산 합포고만 해도 그래요. 학생들이 두발규정을 정한 괜찮은 학교로 추앙됐는데, 그 학교에도 만약 두발자유를 원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이 규정을 따를지 말지 갈등이 생기겠죠. 이런 갈등을 어떻게 처리할 거냐, 여기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긴장이 있어요. 학교는 당연히 소수가 다수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고 하겠지만….
아라: 맞아, 교칙이 있으니까 따르라고 할 거예요.
누리: 시민불복종까지 생각할 수 있는 거 같은데…. 이상주의자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학교에서 그런 거 가르쳐야 되지 않나요? 그런 거 하나 거부할 수 없는 사람들이 큰 질서는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
웅용: 다수결과 소수의 인권 중 하나를 택하라면 민주주의를 택해야겠죠. 일단은 다수결로 교칙도 못 정하는 상황인데 순서상 소수 인권 얘기하는 게 힘들지 않을까요?
상신: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거든요. 학생들이 원하는 건 내 머리까지 규제하던 권력관계를 깨는 거예요. 여럿이 살더라도 서로 침범하면 안되는 영역이 있거든요. 그런 기본적인 영역을 다수결로 침범한다? 이건 안 되거든요.
#학생들 사이의 힘의 질서
경내: 동성고 오병헌 씨가 1인시위에 나서는 순간 비로소 꿈쩍하지 않을 것 같던 학교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어요. 그런데 만약 동성고에서 학생 의견을 수렴해 보니 두발규정 존치 결정이 나왔다, 그럴 경우 어쩌나 걱정이 돼요. 병헌씨는 계속 저항하겠다고 그러는데, 쟤는 원칙론자다, 이상론자다, 혼자 나대는 사람이다 하는 취급받지 않을까…. 그래서 주위 친구들부터 설득해야 한다고 말하게 되지만, 그게 병헌씨에게는 너무 가혹한 짐을 떠넘기는 것 같더라구요. 학교에서 발언력이 큰 학생이 아니라면 지지를 얻기도 어렵잖아요? 진선생님, 학생들 중에 누가 발언력이 크죠?
웅용: 공부 잘하는 학생이 아무래도….
경내: 입시사회니까 아이들도 성적이 나쁜 아이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이런 상황에도 주변화된 학생들이 진정성을 갖고 두발자유를 원한다고 해도 학교 안에서 어느 정도 발언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공부 못해도, 친구 관계 원만치 못해도 그 발언이 깎여선 안되는데…, 생양아치도, 모범생도 다 두발자유를 말할 수 있는데 학교 안에서는 이런 게 고르게 평가되지 않잖아요? 학생회를 통해 토론을 통해 서서히 변하는 것도 좋지만, 더군다나 대의제기구인 학생회를 통해 이런 차이를 한순간에 없앨 수 있을까 고민이 들어요.
웅용: 공부를 못하거나 대중적 인기가 없는 학생들과 대광고 강의석처럼 그런 조건을 다 갖춘 아이들과의 차이를 어떻게 없앨 것인가도 고민해야지만 이용하기도 해야 해요. 역이용할 수 있다 이거죠. 두발 반대로 대학가자는 주장도 있을 수 있어요. 대중성 확보가 필요해요.
#교육적이라고 제한해도 되는 거니?
웅용: 그나저나 저는 환경보호 때문에 염색, 파마는 안된다는 입장인데 어때요? 상업자본은 계속 너의 변화를 강조하고 소비를 강조하잖아요?
상신: 따지고 보면 교복도 그런데 왜 두발만 그래요? 저도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지만, 그것 때문에 학생들의 결정권을 빼앗아야 한다고는 생각 안 해요.
경내: 나도 환경파괴 때문에 염색, 파머 될 수 있는 한 안하려고 하지만, 그걸 강제할 수는 없다고 보는데….
상신: 종교 강요랑 마찬가지에요. 강제는 반발심만 초래해요.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내부적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웅용: 그래도 좋은 정체성은 강제로라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상신: 그런 염려가 보호주의로 가게 되죠.
누리: 맞아요. 교육이 결코 일방적 가르침이 아니거든요. 규제가 아니라 대화와 소통으로 가야 해요.
경내: 할머니도 하고 어린이도 하는데 왜 유독 청소년들에게는 강제하는가 질문이 필요해요. 염색, 파머 약 만드는 과정을 공적으로 규제할 수도 있고, 자발적 실천을 이끌어내는 것도 필요하죠. 자본주의 축산업 구조를 비판한다고 모든 사람에게 비육식을 강제하는 규정을 만들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학교를 바꾸는 전략
경내: 학교안의 변화가 워낙 더디고, 학교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가진 불만은 어디다 분출해야 하느냐 고민이에요. 지난 5.14처럼 학교 밖 단체들이 이런 아이들에게 분출의 장을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상신: 아수나로에선 학교 안에 뿌릴 유인물을 만들어서 학생들 설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래도 우리의 주요 대상은 학교, 선생님이 아니라 교육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 양동중학교에서 학내 시위 있었잖아요. 별로 변한 게 없어요. 의식 개혁된 선생님이 있어도 재량이 없으니까.
웅용: 다양한 스펙트럼이 오히려 힘이 될 수 있어요. 예수는 자살을 했고, 베드로는 3번 배신했는데 재미있는 건 베드로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널리 전파됐어요. 재미있게 표현하면 둘이 짠 거다. 달리 갈건 가돼 서로 역할 분담하고 큰 틀에서 움직여야겠죠.
아라: 큰 틀과 목표 안에서 각자 서로의 위치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토론하고 뭉치면 좋겠어요. 함께 할 수 있는 거 같이 하면서 말이죠.
누리: 공동의 목적이 정해졌는데 방법의 차이 때문에 배척하고 막말이 나오는 거 같아요. 갈등이 있지만 대화의 틀을 깨트리지는 말아야 할 거 같아요. 그러면 둘 다 자멸하는 길이거든요.
경내: 서로 원수진 것도 아닌데 대화를 안 할 필요는 없겠죠. 역할 분담을 잘 하면 좋은데 안타깝게도 운동사회 내에서도 그렇게 되지 않죠. 속내를 감추면서 모호하게 가니까. 저는 두발규정 같은 교칙이 계약사항도 아니었고, 계약사항이 될 수도 없는 학교의 횡포라고 강력하게 얘기하는 세력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학교 밖에서 학교를 자꾸 귀찮게 하고, 치고 가는 게 많이 필요해요. 학생인권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는데, 전교조가 조직적 입장 정리해라고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학교에 개별적으로 맡겨둘 사안이 아니니까요.
상신: 교육부가 우리를 물로 보지 않게 투쟁의 물꼬를 유지시켜 교육부 책임론을 물고 늘어져야 해요.
경내: 청소년들이 처음 인권에 대해 고민할 때 학교 안에서 변화를 꾀할 거냐, 밖에서 외칠 거냐를 전체 판을 그리며 판단하기는 어려워요. 다양한 경로를 선택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해요.
누리: 청소년 인권운동 역사를 연구하다 보면 89년에 고등학생들이 16세 선거권, 두발자유를 요구했어요. 교사들도 민주화선언에서 두발자유 외쳤구요. 그런데 지금은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거 아닌가 싶어요. 전교조가 입장을 정해야 해요.
웅용: 따로 또 같이 영리하게 같이 해야죠. 모두가 예수가 될 수는 없고 예수가 다 한 것도 아니에요. 뒤치다꺼리는 제자들이 다 했어요. 제 역할을 생각해 보면, 힘들지만 전교조 내부에서 네이스 그런 것만 얘기하지 말고 학생인권 관심 갖자고 얘기해야겠어요. 두발문제부터.
경내: 한 사람의 불복종이 여러 사람의 불복종을 이끌어 냅니다. 규정에 불복종하는 학생들 많이 나와야 하고 그걸 부채질(?)하는 역할을 우리는 학교 밖에서 하려고 합니다. 올해를 두발자유 원년으로 만들어 보자구요.